• [빈섬 이상국의 파르헤시아]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貓鼠同處에 움찔했을 이들이, 그 쥐 그 고양이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묘서동처(猫鼠同處)'. 정상옥 전 동방문화대학원대 총장 작품사진=교수신문 제공]



도둑을 잡을 자가 도둑과 함께 있네

낙주(洛州)에 고양이와 쥐가 함께 사는 일이 있었다
쥐는 숨어기어드는 놈으로 도둑질을 일삼고
고양이는 그놈을 깨물어 잡는 일을 하는데 도리어 쥐와 함께 있다니
이 꼴은 도둑을 잡을 자가 제 직무를 잊고 나쁜 짓을 허용하는 것과 같구나

洛州貓(猫)鼠同處 (낙주묘서동처)
鼠隱伏象盜竊 (서은복상도절)
貓職捕嚙而反與鼠同 (묘직포교 이반여서동)
象司盜者廢職容奸 (상사도자폐직용간)

이것들이 실성했구나, 재상의 탄식

송나라 때 나온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등장하는 스토리다. 당나라 시대 어느 군벌(번진)에 소속된 병사의 집에서 발견된 기이한 풍경이었다. 특히 구당서에는 이 이야기와 함께, 고양이 젖을 빠는 쥐까지 있어서 신하들이 상서로운 일이라 하여 황제에게 바쳤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일을 두고 최우보(崔佑甫, 덕종 때의 재상)는 “이것들이 실성(제 본성을 잃음)하였구나(此物之失性也)”라고 개탄하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당나라 덕종시대의 정치는 그야 말로 묘서동처(貓鼠同處)의 요지경이었다. 덕종은 왕자로 있을 때부터 이미 전공(戰功)을 세우며 태자로 낙점받은 전도유망한 리더였다. 제위에 오른 뒤 양염(楊炎)을 재상으로 삼아 나라의 재정을 굳건히 했다.

그런데 양염은 자신의 패거리를 중심으로 인사를 전횡했고 그 와중에 국가 재정난의 해결사였던 경제전문가 유안(劉晏)을 반란죄로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군벌을 제어하는 정책을 펴다가 절도사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를 맞는다. 내란을 평정하는 와중에 재정까지 고갈되고 만다. 정치는 무질서해졌고 간신들을 중용하고 충신을 내치는 인사가 잦아졌다. 안으로는 부패하고 밖으로는 전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나라가 엉망이 된다. 나중에 덕종은 지역의 강력한 군벌에 쫓겨 섬서성 봉천(奉天)으로 탈주한다. 

덕종은 중국 뿐 아니라 이 나라에서도 '쥐같은 고양이'들 때문에 국정을 망친 황제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한국전쟁 와중에 장택상, 조봉암, 신익희는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전쟁이 발발한 무렵에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뒤 부산으로 피난 간 일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이승만은 발끈하며 그들에게 대답했다. "내가 당나라 덕종이요?"

봉천 파천을 했던 덕종은, 전쟁이 끝난 뒤 전란의 책임을 자인하는 죄기조(罪己詔, 죄가 과인에게 있음을 고합니다,라는 의미의 조서)를 쓴 바 있었기에 그걸 상기한 것이다. 나라 망친 수많은 리더들을 돌아보면, 스스로의 잘못을 덕종만큼이라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신랄해 헛웃음이 나오는구나

12일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묘서동처’를 꼽았다. 한국 정치의 상황을 신랄하고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말인지라 듣자마자 가히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적실(適實)한 느낌이 있다.

사자성어는 추천위원단 추천과 예비심사단 심사를 거친 6개의 후보 ‘성어’ 중에서 전국 대학교수 880명이 각각 2개씩 뽑아 선정했다. 묘서동처는 모두 1760표 중에서 514표(29.2%)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1주일간 엠브레인(온라인 조사기업)에 의뢰해 이메일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다. 

묘서동처를 추천한 최재목 교수(영남대 철학과)는 “각처에서 또는 여여 간에 입법, 사법, 행정의 잣대를 의심하며 불공정하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국정을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것을 감시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 통속이 되어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고 그 근거를 밝히기도 했다. 

움찔하는 놈이 도둑이다

이 낱말은, 묘하게도 이 나라의 한 특정상황이나 정치집단을 꼬집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움찔할 수 있는 ‘다탄두(多彈頭)’의 풍자를 실었다는 점에서 절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우선 임기말을 맞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와 정책행보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드러내는 말로 보일 수 있다.

최대 실정으로 꼽히게된 부동산 정책은, 시장(市場)을 이기겠다는 규제 만능의 믿음이 빚어낸 참사에 가깝다. 이 와중에, 개인적인 부동산 실리를 챙기거나 염두에 두는 권력 핵심들이 드러나면서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윤석열 현 야당 대선후보가 여기에까지 이르게된 경위 또한 ‘묘서동처’의 기이한 변형스토리다. 전정권의 실정과 그 책임을 파헤쳤던 그가 이 정부의 신뢰를 받으면서 검찰총장이 되었을 때, 전정권의 부패와 흠결에 적용했던 잣대의 강도(强度)를 그대로 살아있는 정권을 향해 겨누면서 권력의 난감함이 빚어졌다.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 황급히 동원했던 수단들이 오히려 정권이 지녀야할 품위를 떨어뜨렸고,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민심이 이반하는 결과를 빚었다. 검찰총장이던 그가, 옷을 벗고 정권을 교체하겠다며 나서서 야권의 제1후보가 되어있는 모양새는, 누가 고양이고 누가 쥐든 간에 쥐와 고양이 스토리의 가장 희화적인 버전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대선 앞두고 있는 한국의 진풍경

그뿐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잡아야할 공기업 직원들이 투기 세력으로 암약한 것이 적발된 일 또한 기이하고, 검찰이 지금 수사(修辭)인지 수사(搜査)인지 알기 어려운 속도와 성과로 진행하고 있는 대장동 게이트 또한 그렇다. 누가 고양이인지 누가 쥐인지 밝혀야 하는 수사인데, 검찰 스스로가 고양이인지 쥐인지 의심을 받는 꼴이 되었다. 그 안에 들어가 개발이익에 공조한 법조인들 또한 고양이 완장 떼고 쥐 노릇으로 갈아탄 혐의들이 자욱하다.

또한 대선 유력후보가 저마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와중이니 당선이 아니면 사법처리가 될 운명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것 또한, 묘서(猫鼠)의 운명을 놓고 한 자리에서 경쟁하는 형국이다. 이 또한 잠정적이지만 기구한 동처(同處)가 아닐 수 없다.

도둑과 경찰이 뒤섞이고, 법을 세우는 사람과 법을 어기는 사람이 뒤엉키고,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 나라의 어두컴컴한 데서 나라를 말아먹는 일을 꾸미는 일이, 과장이 아닌 리얼리티로 느껴지는 현상이야 말로 이 나라의 비정상적인 현실태(現實態)다. 이런 와중에도 쥐가 된 척한 고양이에 줄을 서는 이가 있고, 고양이가 된 척한 쥐에 줄을 서는 이들로 들끓는다.

쥐와 고양이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는가. 다만 도둑질과 감시가 서로 흥정하고 실리를 챙기며 세상과 규범을 문란하게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 무섭기 때문이다. 뺑소니 치는 참담한 권력의 모습이 어찌 당나라에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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