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성평등 기획] 볼벤 스웨덴대사 "성평등은 제로섬 아닌 모두를 위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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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1-12-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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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에게 준 동등한 노동의 기회 '지속가능한 사회' 만드는 초석

성평등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을 달구는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최근 수십 년간 한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선진국 진입을 달성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여전히 취약한 부분도 남아 있다. 성평등 문제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실시한 유리천장지수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앞서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3월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2021’에서도 한국의 순위는 세계 156개국 중 102위에 그쳤다. 

성평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특정 손가락 이미지가 '남혐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곳곳에서 퇴출돼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여름 올림픽에서 양궁 선수 안산의 짧은 머리를 두고 페미니스트 논쟁이 일어 외신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영국 방송 BBC의 로라 비커 한국 특파원은 "한국에서는 어떤 이유인지 '페미니즘'이 더러운 단어가 됐다"고 꼬집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교제살인 등 문제로 페미니즘 논쟁이 한창이다. 곳곳에서 불거지는 논쟁과 갈등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강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주경제 국제경제팀은 한국 사회의 주요 갈등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성평등 문제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장기 프로젝트로 '글로벌 성평등 기획'을 마련했다. 오랫동안 성평등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한국의 현재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아주경제는 글로벌 성평등 기획의 첫 인터뷰 주자인 다니엘 볼벤 주한 스웨덴대사와 지난 11월 17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스웨덴대사관저에서 만나 1시간여 동안 성평등과 관련한 스웨덴의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청취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유럽​​젠더평등연구소(EIGE)가 발표한 2021 성평등지수(Gender Equality Index 2021) 1위. WEF 조사 '글로벌 성 격차 2021’ 정치·경제·교육·건강 분야의 성별 격차 현황 상위 5위. 복지 선진국으로도 잘 알려진 스웨덴의 현 주소다. 아주경제는 글로벌 성평등 기획의 첫 인터뷰 주자로 다니엘 볼벤 주한 스웨덴대사를 만났다. 스웨덴과 한국은 지난 2019년부터 성평등 관련 정책에 관련한 양해각서를 맺고 협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여성가족부는 12월 2일 이를 갱신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7일 서울시 성북동에 위치한 스웨덴대사관저에서 만난 볼벤 대사는 1시간여 동안 성평등과 관련한 스웨덴의 현재 상황과 경험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볼벤 대사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평등은 어느 한 성별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가치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참여 가능하게 한 제도···양육은 남녀 모두의 것"
볼벤 대사는 스웨덴이 성평등 지수가 높은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한 구조를 꼽았다. 그는 "오늘날의 스웨덴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무래도 1970년대의 구조적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평등 달성을 위해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늘리는 방향에 중점을 뒀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대사는 △취학 전 아동을 위한 보육시스템 강화 △양부모 육아휴직 △부부 분리과세 등의 제도는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참여를 독려했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져 있듯 스웨덴은 남녀 모두에게 육아휴직을 보장해준 세계 첫 국가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총 16개월의 육아휴직이 있으며, 이 중 최소 3개월은 아빠와 엄마가 사용할 수 있고, 이는 서로에게 양도되지 않는다. 남녀 모두를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방책이다. 

스웨덴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는 것도 이런 제도 덕분이라고 대사는 강조했다. 볼벤 대사도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6개월 간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스웨덴은) 직장에 대한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도 아이를 갖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도 반년의 육아휴직을 썼지만, 이는 제 경력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육아휴직을 했던 제 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부인도 현재 자신의 직업에서 활발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 볼벤 대사는 스웨덴의 직장 문화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짚었다.  "스웨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직장에서 매우 오랜 기간 일합니다. 아마 40년 정도, 그보다 더 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 1~2년 정도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떠나는 것은 인간과 직업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생활 주기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양육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는 많이 배우고,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평등은 사회 주류의 가치···모두가 혜택받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이런 성평등 중심 구조에 대해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은 없을까? 볼벤 대사는 스웨덴 역시 성평등 국가 달성을 위해 이미 먼 길을 걸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의 성과가 단시간에 얻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스웨덴은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스웨덴은 2014년부터 페미니즘 정부를 표방하고 있으며, 이 점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과거에 페미니즘은 좌파적이라는 인식도 있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 페미니즘이 진정한 평등을 위한 것이라는 부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성평등은 여성과 남성 모두 얻는 게 많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스웨덴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스웨덴은 현재 대부분의 남성이 성평등은 남성에게도 좋은 것임을 인지하는 단계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논쟁은 '평등'에 대한 것입니다. 여성이 지면 남성이 이기고, 남성이 이기면 여성이 지는 그런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남성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스웨덴에서 지금보다 남성에게 더 나은 시기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남성에게 대부분 지워졌던 전 가족의 생계 책임 부담도 완화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조가 바뀌면서 성평등에 대한 토론 모습 역시 변했습니다. 이게 스웨덴에서 일어난 변화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상징적인 움직임들도 있었습니다. 스웨덴 (남성) 재무장관이 먼저 나서서 육아휴직을 쓰거나 각종 사회적 캠페인을 벌이는 것 같은 일입니다. 이런 시간이 쌓여서 이제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일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또한 이는 커리어에 도움을 주지도 않습니다. 고용주들은 아마 그냥 "대체 이 사람은 뭐지? 왜 육아휴가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라고 할 것입니다. 육아휴가는 이미 사회구조의 일부로 통합되었으며, 여성과 남성에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스웨덴 방식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이 특별하게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물었지만, 성평등은 이미 교육 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가치라는 답이 돌아왔다. 

"성평등과 관련해서 교육에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스웨덴 교육 전체에서 성평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과 과정 전체에 통합돼 있다고 보는 편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별도의 수업이나 교과 과정이 있지는 않지만, 수학이나 체육 등 다양한 과정에서 성평등 가치가 모두 반영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굳이 따로 가르쳐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기본적 가치로 갖춰지도록 하는 것이 스웨덴식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역사 수업이 이뤄지는 시간 동안 교사들은 성평등 문제를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식입니다. 물론 어려울 수는 있지만, 성평등은 따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스웨덴에서 성평등 가치는 주류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여기에 논쟁이 없다거나,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당연하고 좋은 가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이에 대해 높은 성평등 지수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볼벤 대사는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답했다. 

"다른 요소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성평등 사회를 갖췄기 때문에 더 높은 출산율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사례만 봐도 아이를 가지는 것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스웨덴에서는 두 자녀 가정이 매우 흔한 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에게 직장 경력에 있어서 남성과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고, 노동시장에서 활발한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웨덴은 여성의 경제참여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스웨덴 정부는 많은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합니다. 경제가 자랄 수 있게 돕고, 가족들에게 건강한 환경을 만들며, 상당히 높은 출산율을 이끌어 냈기 때문입니다." 

볼벤 대사는 마지막으로 스웨덴은 '완벽한 성평등' 국가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볼벤 대사는 "스웨덴도 아직은 완벽한 사회가 아닙니다. 최근 스웨덴에서 크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폭력이며, 정부는 교육이나 사법체계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됐던 미투 역시 중요한 논쟁 이슈 중 하나이며, 여전히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라고 했다. 이어 "(스웨덴은)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여성이 충분히 안전하고 적절한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스웨덴에서는 계속 많은 토론을 이어가면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봅니다"라고 지적했다. 
 

아주경제는 글로벌 성평등 기획의 첫 인터뷰 주자인 다니엘 볼벤 주한스웨덴대사와 지난 11월 17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스웨덴대사관저에서 만나 1시간여 동안 성평등과 관련한 스웨덴의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청취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다니엘 볼벤(Daniel WOLVÉN) 주한스웨덴대사 약력>

2021.9~     주한 스웨덴대사
2019~2021 스웨덴 총리실 국가안보실 차장 및 안보정책회의 사무처장
2018~2019 스웨덴 외교부 아프리카국 심의관
2016~2018 스웨덴 총리실 외교·안보·EU정책실 안보정책관
2012~2016 주인도 스웨덴대사관 참사관 및 공관 차석
2007~2012 주프랑스 스웨덴대사관 일등서기관(참사관)
2006~2007 스웨덴 외교부 유엔국 서기관
2004~2006 주콩고 스웨덴대사관 이등서기관
2003~2004 스웨덴 외교부 아프리카국 사무관
2002~2003 스웨덴 외교부 임용 및 교육과정 이수
2001         스웨덴 룬드대학교 정치학 석사
1999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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