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위원]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왜 철회했을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재난지원금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물러서자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옳다고 판단되면 밀어붙이는 이재명 스타일을 잘 아는 이들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가 여의도 경험이 없는데도 집권여당 후보까지 오른 데는 “이재명은 합니다”로 상징되는 강한 추진력이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재명이 철회했다? 더구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후보 선출 이후 처음 내놓은 공약이자 상징성을 갖고 있기에 캠프 내부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분분하다. 이유야 어떻든 뒤늦게라도 철회한 것에 대해 현명한 판단이라는데 한 표를 주고 싶다.

경제학에 ‘매몰비용(sunk cost)’이란 개념이 있다. 이미 지불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뜻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의사결정을 할 때 매몰비용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흔히 매몰비용에 집착하다 의사결정을 그르치곤 한다. 더 이상 득 될 게 없는데도 그동안 투입한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 고집하다 더 큰 화를 자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적인 투자는 물론이고 정책추진 과정에서도 흔히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를 범하는 이유다. 그만큼 매몰비용을 떨쳐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잘 아는 콩코드 여객기와 코닥필름은 매몰비용 사례다. 영국과 프랑스는 1960년대 당시 돈으로 10조원을 들여 초음속 콩코드 여객기 개발에 성공했다. 콩코드는 종전 6~8시간 걸리던 런던과 뉴욕을 3시간으로 단축해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동체를 슬림하게 제작하다보니 다른 여객기에 비해 탑승객 정원을 3분1로 줄여야 했고 이는 채산성 악화로 이어졌다. 두 나라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누적적자를 인지하면서도 이미 투자한 돈이 아까운데다 중단할 경우 돌아올 비난을 우려해 운항을 계속했다. 결국 콩코드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은 채 2003년 운항을 중단했다. 카메라 필름의 대명사 ‘코닥 필름’도 마찬가지다. 과거 명성과 투자비에 연연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외면하다 망했다. 콩코드와 코닥은 과감하게 손절했다면 손실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재명 후보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강행할지 철회할지 놓고 적지 않은 고민을 했을 게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매몰비용에 얽매이지 않고 손절함으로써 국면 전환을 시도한 건 바람직해 보인다. 그는 18일 “전 국민 재난지원금, 고집하지 않겠다. 여야 합의 가능한 것부터 즉시 시행하자”며 물러섰다. 지난달 29일 전 국민에게 1인 당 30만~50만 원가량 재난지원금을 추가 지급하자고 제안한지 20여 일 만이다. 그동안 기획재정부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는 강행 의지를 꺾지 않았다. 오히려 여당은 기재부를 압박하며 이재명표 재난지원금 지급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은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꼼수 논란으로 확대됐다.

기획재정부가 기를 쓰고 반대하고 나선 건 위법 소지 때문이다. 국가재정법과 국세징수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지급하는 건 무리하다는 판단이었다. 납부 유예 또한 명분 없고, 내년으로 초과 세수를 이월하더라도 지방교부세와 교부금부터 정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역시 “재정 원칙과 기준을 견지하는 건 기본 소명”이라며 곳간지기로서 원칙을 강조했다. 야당 또한 “초과 세수 납부유예는 꼼수이자 범법행위다”면서 “기재부를 포함해 공직자들이 동조한다면 법적 책임을 묻고 고발 조치하겠다”고 압박했다.

부정적 여론도 높았다. ‘지급 가능한지’를 떠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확대됐다. 코로나19 때문에 국가부채가 급증했는데 빚을 갚는 대신 재난지원금으로 나눠 갖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하느냐는 의문이었다. 반대론자들은 설령 초과 세수를 사용하더라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우선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상식론을 폈다. 여론조사는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 응답자 가운데 60.1%는 ‘반대한다’고(한국사회여론연구소‧5~7일) 답했다. 반면 ‘찬성한다’는 32.8%에 그쳤다.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또한 ‘공감하지 않는다’ 67.9%로, ‘공감한다’ 29.3%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결국 ‘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데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지급하려는 의도가 무엇이냐’로 논점이 모였다. 이재명과 여당은 대선을 앞둔 매표행위라는 공격에 딱히 반박하기 어려운 궁색한 지경에 처했다. 여론을 등에 업지 못한데다 ‘당정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강행은 매몰비용을 더 키울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이재명은 “아쉽다”고 했지만 추가 매몰비용 없이, 또 더 큰 논란으로 확대되지 상황에서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굳이 손익계산을 하자면 득이라는 자위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이재명은 이를 계기로 장점으로 내세우는 ‘강한 추진력’이 때로는 매몰비용을 키우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산대교 무료화 논란은 좋은 사례다. 그는 주민 교통권 확보를 명분으로 일산대교 무료화를 강행했지만 원점으로 돌아감으로써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재명은 도지사직을 사퇴하는 마지막 날, 일산대교 무료 통행을 결재했다. 경기도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일산대교(주)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 반대를 무시한 채 밀어붙였다. 그러나 법원은 경기도 행정처분에 문제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운전자들은 무료로 바뀐 지 22일 만인 18일부터 다시 통행료를 납부하게 됐다. 경기도의회는 “성급한 정책 발표와 안이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일산대교 무료화 논란은 강한 추진력이 초래하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과 폐단을 경계하는 사례로 남게 됐다.

지도자에겐 강한 추진력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유연함이 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뛰어난 철인 한 사람보다 평범한 집단지성이 훨씬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최고 지도자라면 옳은 결정일지라도 반대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조선 왕 27명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은 재임기간 신하들과 1500회가 넘는 경연(토론)을 통해 오류를 최소화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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