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바람 앞 촛불 신세…위태로운 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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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11-1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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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기 정부의 개편 1순위는 여가부? 이재명·윤석열 모두 "여가부 개편할 것"

  • '여가부=혈세 낭비' 폐지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20만명 넘게 동의

  • 장혜영 정의당 의원 "두 후보의 여가부 개편은 성 평등 토양을 해치는 공약"

선서하는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10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여성가족부의 모태인 여성부 폐지 시점을 이같이 정의했다. 성별에 따른 차별이 사라지고 양성평등이 실현될 때 여가부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년 3월에 치르는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이 일제히 여가부 개편 카드를 꺼내면서 폐지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가부 개편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후보는 "모든 사람은 차별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정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며 여가부 이슈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인사말을 하는 이재명 대선후보. [사진=연합뉴스]

윤 후보는 그보다 강도 높은 '여가부 폐지론'을 들고나왔다. 윤 후보는 지난달 21일 청년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 여가부 폐지 공약을 꺼낸 뒤 "여가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관련 업무와 예산도 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두 대선후보 모두 여가부를 손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차기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 1순위는 여가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윤석열 대선후보. [사진=연합뉴스]

여가부는 김 전 대통령이 1998년에 신설한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출발했다. 3년 뒤인 2001년에는 여성부로 승격되면서 공식 정부 부처가 됐다. 당시 여성부는 여성 권익 증진, 차별 개선을 통한 양성평등 등 여성 정책 전반을 맡았다.

여성부는 정권을 거치면서 확대와 축소를 반복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에는 보건복지부의 가족정책 업무를 넘겨받으면서 여성가족부(여가부)로 몸집이 커졌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가부를 여성부로 축소했다. 가족·보육 관련 업무도 보건복지부로 다시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여가부의 권한과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2005년 176명 정원(1실 4국 2관 19개과)이던 여가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 100명 정원(1실 2국 13과)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2년 뒤인 2010년에 청소년과 다문화가족 등 가족 기능이 여성부로 이관되면서 여성부는 지금의 여가부 체제를 갖추게 됐다.
 

여가부를 항의 방문한 야당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개편을 거듭하며 명맥을 유지해오던 여가부는 최근 바람 앞 촛불 신세가 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문제에 뒷북 대응과 침묵으로 일관하면서다.

그 사이 여가부가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지면서 여가부 폐지론에 힘이 실렸다.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시대착오적인 여성가족부는 해체해야 한다'는 글에 따르면 청원인은 "여가부가 박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에 눈감아준 일만 봐도 여가부는 정치권 입맛에 맞춰 정치 놀이를 하고 있다"며 여가부가 이념·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고 비판했다.

또 청원인은 △여가부가 남녀평등을 가로막는다 △급진 페미니즘 이념 실행에 앞장선다 △행정력과 혈세를 낭비한다 등을 근거로 여가부 폐지를 요구했고, 해당 청원엔 26만3550명이 동의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여가부 비판 여론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7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14명을 대상으로 여가부 폐지 찬반을 물은 결과 국민 10명 중 절반 가까이(48.6%)가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59.1%, 여성은 38.3%가 여가부 폐지에 찬성했다.

정치권에서도 여가부 폐지론이 꾸준히 제기되자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반성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달 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여가부 폐지 여론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정 장관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우리나라엔 성 평등·평등과 같이 포용과 배려가 필요한 집단이 있고, 이들에 대한 여가부의 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여가부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답변하는 정영애 장관. [사진=연합뉴스]
 

한편 대선후보들의 여가부 개편 카드가 오히려 양성평등을 해친다는 의견도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두 후보가 남성 표를 의식해 여가부의 성 평등 해소 기능을 축소해 기계적인 중립을 가져가겠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 의원은 "두 후보가 사회의 성 평등 토양을 해치는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내고 있다"고도 쓴소리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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