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 "탈시설 국가들, 인권에 대한 관심 높아"
  • "탈시설 욕구 있는 장애인 자립기반 마련해줘야"
장애인이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 수 있도록 하는 로드맵이 마련됐다.

국무조정실은 최근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확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일부 수용한 조처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2019년 8월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을 구성하고, 탈시설 정책방향과 추진일정, 예산 등 11개 요소를 포함한 로드맵을 마련토록 정부에 권고했다.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3만693명···"정부 로드맵 후속 필요"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달 6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인권위 제공]


인권위에 따르면, 정부 로드맵에는 권고안 중 정책방향과 목표 수립, 탈시설 전담 기구·부서 설치, 지역사회 전환주택과 복지서비스 확대 등 내용이 담겼다.

다만 탈시설 정책 모니터링 체계 구축, 지방자치단체 탈시설 계획 수립 원칙과 지침 마련, 노숙인 시설·정신요양시설 등 다른 유형의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전략 등은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미비한 부분에 대한 정부의 후속대책이 조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로드맵 이행 여부를 지속해서 점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 권고는 스웨덴, 미국 등이 1970년대부터 지역사회 중심의 장애인 자립생활 정책을 지향한 데서 기인한다. 인권위가 권고안에서 언급한 해외 사례를 보면, 유럽 국가들은 정상화 이념에 기반해 1960년대부터 시설환경 개선, 탈시설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시설·병원 중심 서비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2009년 397곳에서 2017년 618곳으로 약 56% 증가했다. 그 사이 거주시설 범주에 포함된 '단기·공동생활가정'을 더하면 2009년 1019곳, 2017년 1517곳이다.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수도 같은 기간 2만3243명에서 3만693명으로 32% 정도 늘었다.

이와 관련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10월 우려를 표명하며 효과적인 탈시설 전략을 개발하도록 권고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당시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맞춤형 사회복지' 국정과제 중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실천과제로 선택했다.

실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에 탈시설 정책이 포함됐으며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 계획(2019~2022)'에는 자립지원 모델 개발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이를 견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인권이 판단이다.

◆"지역사회, 취약한 사람들과 함께하도록 다양한 시도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물론 해외 국가들도 2006년 유엔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채택하기 전에 이미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완료한 곳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에 의해 관련 정책이 진행 중인 곳도 있다.

대표적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은 1980~1990년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서비스 지원·확대를 거쳐 1997년 '특수병원 및 요양시설 폐쇄법'을 통해 모든 장애인 수용 특수병원·요양시설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계기로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로 전환했다.

영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탈시설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1997년 제정된 '지역사회돌봄(직접지불)법'을 통해 장애인에게 서비스 대신 현금을 지급하는 것을 허용했다. 장애인 당사자의 복지 서비스 통제와 결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뉴질랜드는 공동생활가정 등이 급증하면서 거주시설 이용자가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이에 따라 1985년 커뮤니티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고, 2006년까지 거주시설을 폐쇄했다.

반면 미국은 장애인 차별 소송에 의한 사법부 판결이 탈시설을 가속화했다. 미국 동캘리포니아 지역에 설치된 '펜허스트 주립학교·병원'에 격리된 아이들이 인권을 침해받는다는 이유로, 지역 주민들이 폐쇄를 요청한 사건이다. 법원은 1977년 격리자들이 적정한 주거를 제공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판결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면서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전환 동기는 다르지만, 탈시설 국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인권위는 분석했다. 우선 거주시설 장애인의 삶과 인권상황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갖고, 시설 중심 서비스에서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로 변경하는 국가 차원의 결단을 했다는 점이다. 탈시설을 위해 관련 법률·제도를 제·개정하고 정책 계획도 수립·시행했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장애인 거주시설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면서 예산 또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연착륙했다.

탈시설이 부진했던 유럽연합(EU)은 2012년 시설에서 지역사회 돌봄으로의 전환에 관한 유럽공동기준 및 시설로부터 지역사회 돌봄으로의 전환에 관한 유럽연합 자금 사용법 가이드를 채택했다. 개별 국가가 탈시설 전략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아울러 일본은 '장애복지계획 기본지침'에서 탈시설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행하고 있다.

인권위는 "탈시설이 완료된 국가에서는 장애인이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강조되고 있고, 최근에는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기회도 확대하고 있다"며 "지역사회가 취약한 사람들과 함께하도록 촉진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커뮤니티 케어' 핵심 내용으로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성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거주시설 장애인이 처한 인권침해적 상황 개선 노력이나 장애인 개개인의 성장,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민간시설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했다"며 "지역사회 기반 부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탈시설 욕구가 있는 장애인을 무한정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는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기반 마련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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