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 기고
국내에 성냥공장이 들어선 건 1886년의 일이다. 인천에 첫 성냥 공장이 세워진 후 1980년대까지 성냥 산업은 전국에 300여개의 성냥 공장이 가동될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당시 성냥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UN표, 아리랑표, 비사표, 기린표 성냥 등이 있었다. 성장 일로에 있던 성냥 산업은 라이터의 보급과 중국에서 저가 성냥들이 수입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성냥 산업의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위기를 외쳤지만 변화된 수요에 맞춰 근원적인 해결책을 준비하는 사업자는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중국산 수입을 통한 가격경쟁뿐이었다. 저가로 공급하면서 명맥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결국 주요 성냥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성광성냥공업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국내에서는 성냥 생산의 맥이 끊겼다.

편성을 전문으로 하는 PP(방송채널사용) 사업자 역시 성냥 산업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편성전문 PP의 비즈니스 모델은 직접 제작은 하지 않고, 특정 장르의 콘텐츠를 외부에서 수급하며 이를 통해 광고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편성전문 PP는 지상파나 종편, tvN 등이 제작한 콘텐츠를 일정 기간 이후에 수급하여 재방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부 PP의 경우 한 프로그램을 매일 다섯번, 여섯번씩 방송하는 곳도 있다. 이들의 경우 IPTV나 SO(종합유선방송) 사업자가 주는 프로그램 사용대가를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인포광고 영업에 치중하고 있다.

문제는 변화되고 있는 방송환경에 편성 전문 PP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성냥 산업이 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요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인데, 편성 전문 PP 사업자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글로벌 OTT가 진출하면서 이용자들의 콘텐츠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다.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콘텐츠, 문화적 다양성 등이 높아졌다. 그런 현실에서 편성전문 PP는 어떠한가? 오래전 콘텐츠를 값싸게 수급하여 지속적으로 재방하고 있다. VOD와 OTT가 활성화되어 재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편성전문 PP에 대한 필요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현재 '플랫폼 사업자에게 콘텐츠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사업자는 누군가'라는 질문에 편성전문 PP는 과연 어떤 대답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사업 규모이기 때문에 투자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은 중소 PP를 보호하기 위해 편성의 자율권을 어느 정도 양보해 왔다.

콘텐츠 사업자의 채널 편성이나 퇴출을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상호 협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료방송은 플랫폼 사업자의 매출을 특정 수준에 맞춰 배분하는 구조이므로 매출에 아무런 기여가 없는 PP 채널에 대한 불만은 항상 있었다. 거기에 새롭게 경쟁하고 있는 OTT사업자나 인터넷 영상 콘텐츠 유통 사업자들과 비교했을 때 OTT사업자 등은 콘텐츠의 편성 자율이라는 개념조차 없다.

알고리즘을 통해 콘텐츠를 마음대로 소비자에게 우선 추천할 수 있고, 인기가 없거나 전략적으로 맞지 않는 콘텐츠들은 이용자들에게 노출을 줄이거나 퇴출할 수 있다. 알고리즘 규제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SO나 IPTV 사업자는 어떠한가? 변화하는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50대가 이용자의 대부분인 SO가 트로트나 성인가요를 중심으로 채널을 편성할 수 없다. 그럼에도 편성 전문 PP들에게 콘텐츠 사용료를 지급하거나 채널을 뒤로 미루거나 퇴출하는 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거기에 대형 콘텐츠 사업자의 콘텐츠 투자 대비 회수율이 24.5%인 반면 중소 사업자는 58.9%인 점도 고려해보면, 투자는 적게 하고 콘텐츠 다양성을 낮추면서 수익을 높게 가지고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투자는 못 하지만 보호는 해달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마치 골목상권을 보호해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성냥 산업은 젊은 층 수요에 맞게 다양하게 변신하며 부활하고 있다. 디자인을 혁신하고 다양한 연관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그 수요를 높이고 있다. 편성 전문 PP도 생각해볼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 [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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