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2800km 밖에 SOS"…中 하얼빈, 경제부흥 안간힘

하얼빈(중국)=이재호 특파원입력 : 2021-09-23 04:00
中경제 순항하지만, 지역 불균형 골치 하얼빈, 선전에 러브콜 산업단지 조성 총 투자액 38조원 "옛 영광 되찾는다" 파격 혜택으로 이공계 인재 눌러 앉혀 "韓과 인연 깊어, 기업들도 관심 갖길"

중국 헤이룽장성 성도인 하얼빈 시내 모습. 가운데는 1932년 완공된 비잔틴 양식의 러시아 정교회 교회인 성 소피아 성당. [사진=이재호 기자 ]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와 압박, 미증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비교적 순항 중인 중국 경제의 고민거리 중 하나가 지역 불균형이다.

개혁·개방 정책의 수혜를 누린 동남부 지역은 선진국 문턱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 이상의 도시가 속출하는 중이다.

반면 "지금 중국에서는 6억명이 월수입 1000위안(약 18만원) 전후"라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말을 듣고 중국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지역은 서부와 동북이다.

내년 재집권에 사활을 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민심 포섭용으로 다 함께 잘 살자는 의미의 '공동부유(共同富裕)' 기치를 내건 배경이다.

원래 별다른 기반이 없었던 서부 지역은 차치하더라도 과거 중국 경제의 엔진 소리를 듣다가 이제는 낙후함의 상징이 돼 버린 동북 3성(헤이룽장·지린·랴오닝성) 주민들의 박탈감은 상상 이상이다.

이런 가운데 헤이룽장성 성도이자 동북의 대표 도시인 하얼빈이 2800km 떨어진 남부 해안의 광둥성 선전에 SOS를 보내는 깜찍한 발상을 해 화제다.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두 도시가 손을 잡은 뒤, 최근 선전에서 창업한 기업이 본사를 하얼빈으로 옮기는 등 가시적인 시너지가 목격되고 있다.

하얼빈의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중국 내 지역 불균형 해소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하얼빈과 선전이 합작 설립한 하얼빈·선전 산업원 전경. 중국이 동북 진흥과 지역 불균형 해소의 새 모델로 기대하는 곳이다. [사진=이재호 기자 ]


◆전혀 안 닮은 두 도시의 합작

추석 전인 지난 14일 하얼빈시 쑹베이구 서쪽에 조성된 '선전·하얼빈 산업원(선하 산업원)'을 방문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9배인 26㎢ 부지에 기업별 연구·개발(R&D) 및 생산 단지와 중소기업 인큐베이팅 시설, 컨벤션 센터, 각종 금융기관, 고급 아파트와 상업 거리 등이 들어서고 있었다.

지난 2018년 9월 하얼빈에서 '동북 진흥 좌담회'를 주재한 시 주석은 "동북과 동부의 연계·합작으로 동북 진흥을 추진하는 건 국가의 중요한 전략"이라며 "남과 북이 상호 작용을 통해 함께 흥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산업원 개발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2019년 5월 중국 국무원 지시로 하얼빈과 선전의 합작 협약이 체결됐고, 100일 후인 9월 산업원 착공식이 열렸다.

지난 6월 기준 산업원 내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128개, 총 투자 규모는 2116억 위안(약 38조원)이며 현재까지 실제 투자된 금액은 311억 위안이다.

산업원투자개발공사의 천위강(陳玉剛) 부총경리는 "아직은 기반을 닦는 중이라 당장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면서도 "2024~2025년이 되면 산업 생산 규모가 300억 위안에 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하얼빈 토박이인 그에게 산업원 개발의 막전 막후를 물으니 "하얼빈이 간절한 마음으로 선전에 손을 내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세계 3대 겨울 축제인 빙등제 개최지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곳 정도로 알려진 하얼빈은 한때 중국 기계 공업의 중심지였다. 중국 GDP의 15% 이상을 책임진 적도 있다.

개혁·개방을 계기로 자본과 인재가 동남 연안으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헤이룽장성의 GDP는 1조3698억 위안으로 31개 성급 지방정부 가운데 25위에 그쳤다. 성장률은 1.0%로 27위였다.

성 전체 GDP가 일개 도시에 불과한 선전(2조7670억 위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올 들어 선전 집값은 14% 넘게 올랐지만 하얼빈은 10% 하락했다. 선전은 인구 순유입, 하얼빈은 순유출이 이뤄지는 곳이다.

선전의 혁신 DNA가 성공적으로 이식된다면 하얼빈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올해 본사를 선전에서 하얼빈으로 옮긴 IT 기업 하이링크의 관계자가 중국 공안에 공급하는 지능형 태블릿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


◆양극화 지친 젊은 인재들 몰려

선하 산업원에는 화웨이와 텐센트, 비야디(BYD) 등 대기업들이 속속 입주하는 중이다.

사업 부문 중 일부, 혹은 특정 R&D 기능을 하얼빈으로 옮기는 식이다.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286개 기업이 산업원에 터를 잡은 상태다.

선전은 창업 천국이지만 지역 내 유명 대학이 없어 늘 외부에서 인재를 수급해 왔다.

여전히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심장이지만,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과 물가 탓에 선전행을 고민하는 젊은 인재들이 늘고 있다.

하얼빈은 전통적인 이공계 강세 지역이다. 하얼빈공대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명문대다.

산업원 측은 입주 기업의 우수 인재를 대상으로 연소득 20만 위안 보장, 소득세 감면, 부동산 구매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사물인터넷 관련 기업에 다니는 20대 왕정(王正)씨와 산업원 내에서 마주쳤다.

하얼빈공대를 졸업한 그는 "선전 등 대도시의 경우 고임금을 받아도 집세 등을 내면 남는 게 별로 없다"며 "현재 직장의 대우가 좋아 대학을 졸업한 곳에 그냥 남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천 부총경리는 "이전에는 하얼빈에서 배출한 인재가 현지에 남는 비율이 절반 이하였지만 최근에는 80%를 넘는다"고 부연했다.

수출 대신 내수 시장을 겨냥한 기업도 더이상 동부 연안 입지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2014년 선전에서 창업한 뒤 올해 하얼빈으로 본사를 이전한 하이링크(海鄰科)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이 적용된 지능형 태블릿 생산 업체다.

이 업체는 중국 공안이 사용하는 휴대용 단말기를 20만대 이상 공급했다. 푸젠성 샤먼과 산시성 시안 등의 공안이 사용 중인데, 태블릿으로 교통 흐름이나 사고·범죄 발생 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보안성 강화를 위해 단말기 운영 체제(OS)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에서 화웨이의 훙멍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내년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일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 업체의 쉬징바오(徐敬寶) 기업발전부 경리는 "하얼빈공대와 공동 혁신 센터를 설립하는 등 산학 협력이 잘 이뤄지고 있다"며 "인재 확보나 세제 혜택, 입주 지원 측면에서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그동안 하얼빈은 한국 기업의 관심 밖 지역이었지만, 현지 지방정부의 러브콜은 꽤나 적극적이다.

올해 헤이룽장성이 하얼빈에서 한국 기업 투자설명회를 개최하고, 코트라도 하얼빈무역관을 신설하는 등 경제 협력 확대 조짐도 엿보인다.

기자와 동행한 하얼빈시 선전부 관계자는 "하얼빈은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인 팔로군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 기념관을 운영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이라며 "더 많은 한국 기업이 하얼빈으로 눈을 돌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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