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⑤답답한 한·일 관계 속, 젊은이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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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1-09-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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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일본에서는 다소 낯선 제목의 책이 등장했다.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 연한 녹색 바탕에 캠퍼스에서 책을 읽거나 모여 있는 학생들의 일상이 책의 표지로 쓰였다. 손글씨체로 쓰인 제목도 친근감을 더한다. 5명의 젊은이가 함께 모여 낸 184쪽의 책은 일본 출판계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아직 2개월밖에 안 됐지만, 책은 이미 4쇄에 들어갔다.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 속에서, 젊은이들의 솔직한 고민을 담은 책은 최근 K-POP(케이팝) 열풍이 불고 있는 일본 안에 생긴 새로운 생각과 고민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 표지. [사진=저자 제공]

 
◆"모야모야(モヤモヤ)?"
'모야모야(モヤモヤ·답답함)'만큼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미끄러져만 가는 한·일 관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우리말의 '뭐야, 뭐야?'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은 '무언가 속시원히 형상을 드러내지 않아 답답해진 마음'을 가리키는 일본어 단어다. '아지랑이가 낀 것처럼 몽롱한 모양' 혹은 '연기와 같은 것이 엷게 피어오르는 모양'을 묘사한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말로는 무언가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하는 모양을 의미하는 '아른아른' 혹은 '아물아물'과 같은 단어로 대치할 수 있다. 다만, 이들 단어는 마음이 개운치 않고 떨떠름한 상황에서 느끼는 듯한 감정을 묘사하고 있지만, 서로의 의미가 정확히 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말의 '아른아른'이 물에 비친 잔무늬나 거울 속 흔들리는 그림자를 표현한다면, 일본어의 '모야모야'는 불에서 피어난 연기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형상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지난 3일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 저자들은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을 '모야모야'라는 단어로 새겨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놨다.

이날 인터뷰에는 가토 게이키(加藤圭木) 히토쓰바시(一橋)대 사회학부 준교수의 도움으로 일본 히토쓰바시대 사회학부에 재학 중인 구마노 고에이(熊野功英·학부 4학년), 아사쿠라 기미카(朝倉希実加·학부 4학년), 오키타 마이(沖田まい·학부 4학년), 우시키 미쿠(牛木未来·대학원 1학년), 이상진씨(李相眞·대학원 1학년) 등 저자 전원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주경제의 요청에 가토 교수는 흔쾌히 학생들에게 연락해 줌 회의를 소집해주었다. 다소 늦은 시간인 저녁 8시에 한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처음에는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자신들이 써냈던 책에 대한 반응을 소개하면서 이들은 한·일 관계에 대한 그간의 고민을 하나씩 풀어냈다. 학생들은 무엇보다 일본 내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양국의 관계 개선에 있어 상호 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성찰을 우선하고 싶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었다. 한국 문화에 열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식민지라는 폭력적 역사의 무게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일본 현실에 대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인터뷰는 이날 밤 10시를 훌쩍 넘겨 끝났다.
 

지난 3일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 저자들과 본지의 화상 인터뷰 모습. 이들은 얼굴 사진의 공개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줌 갈무리]

 
◆'모야모야'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가토 교수의 전공 세미나 수업 참여를 계기로 학술 동아리 모임인 '조·일(한·일)관계사 연구회'에도 참여하며 이 책에 담긴 논의를 2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이는 전 학부생이 세미나 수업을 수강하고 졸업 논문을 제출하는 히토쓰바시대 특유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이 대학 재학생들은 학부 3학년부터 2년간 세미나 수업(후기제미)에 참가하며 연구 주제를 잡고 담당 교수의 지도 아래 졸업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논의가 책으로 탄생한 데는 코로나19 사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비상사태'로 평소 집 밖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외로움의 시기'가 세미나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지난해 1학기 당시 화상으로 전환했던 세미나 기간을 두고 우시키씨는 "평상시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세미나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특히 일본의 역사 인식 상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대학생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으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이후 이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해당 주제를 보다 깊이 연구하기 위해 외부 강사를 초빙하고 대학원생과의 합동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학생의 시각으로 입문서를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우시키씨는 집필을 결심했던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일본 사회에서 느끼는 이질적인 지점, 역사 인식 측면에 있어서는 일본 사회 문제점을 직접 말로 표현하고 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서로가 같은 문제 의식으로 뭉쳐 '모야모야'에 동감하기까지는 5명의 저자 모두 다른 배경에서 출발했다.

학창 시절부터 케이팝 팬이었던 구마노씨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이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왔던 구마노씨는 대학에 와서 자신이 한국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대학에서 만난 재일교포와의 교류로 한·일 양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직접 실감한 것이다. 특히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상에 다가가면서는 역사가 젠더 문제와도 복잡하게 얽히면서 더욱 풀기 어려워졌다고 느꼈다.

구마노씨는 가토 교수 세미나에 참여하고 또 책까지 저술하게 된 계기에 대해 한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역사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8월 7일 진행한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 비대면 출간 기념행사 포스터. 이후 같은 달 말 처음으로 열린 현장 출간 기념행사에는 무려 '565명'이 참석을 신청해 저자들을 놀라게 했다. 우시키 미쿠씨는 "일본 국내에서도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찾았다"면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활동을 해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됐다"고 이때를 회상했다. [자료=저자 제공]


고등학생 시절 "한국에 군대가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한국에 대해 잘 몰랐다"던 우시키씨는 대학 진학 후 우연한 기회에 참가한 '한국 역사 탐방 여행'이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를 방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했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곳에서 친해진 한국인 친구가 자신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던 당시 일본 정부의 입장이 아닌 스스로의 의견을 전혀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의 역사를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된 것이다.

아사쿠라씨 역시 이전까진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한국의 화장품이나 패션 등을 제외하곤, 한국이나 역사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가토 교수와의 세미나를 통해 배운 역사와 자신이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일본사'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는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이유, 그리고 일본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반면 오키타씨는 일본 사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한·일 문제에 다가선 경우다. 그는 초등학생 당시 외국인이 많은 학교에 다녔는데, 한국·몽골·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친구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왕따를 당하는 모습에 '일본 사회는 왜 이럴까'에 대한 고민이 싹텄다고 말했다. 이후 스스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성장한 오키타씨는 대학교 2학년 당시 한반도 역사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자신이 외면한 역사에 대해 더욱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2015년 일본에 유학을 간 한국인 이상진씨는 직접 겪게 된 일본 사회의 모습이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는 점에서 고민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특히 역사와 양국의 외교 문제로 일본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다는 점이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이에 이상진씨는 이와 같은 괴리감을 해결하기 위해 가토 교수와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얼굴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하나의 문제 의식에 닿은 젊은이들의 진솔한 고민을 담은 책이지만, 책에는 학생들의 사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러 곳에서 인터뷰를 했지만, 얼굴이 알려지는 인터뷰는 없다. 책 속에서도 저자들은 그림으로 얼굴이 묘사됐을 뿐, 사진이 실려 있지 않다. 자신들이 직접 쓴 책이 나왔는데도 얼굴을 싣지 못하는 것이다. 극우 세력들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케이팝 가수들의 인기가 치솟는 것은 물론이고, 드라마 순위에서도 한국의 '사랑의 불시착' 등이 상위권에 올라 있는 일본이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반감이 심한 이들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많다.

한·일 관계 입문서라는 성격을 띠고 있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이달 22일을 기준으로 일본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는 해당 책에 대한 총 88개 리뷰가 달렸다. 하지만 평가는 대체로 최고점(별 5개·54%)이 아니면 최저점(별 1개·22%)이다. 기존에 몰랐던 한·일 관계 문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의 주장에 편승하는 멍청한 학생들과 교수라는 자극적인 비난도 아마존 비평란에는 올라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마존이 1시간마다 집계하는 판매 순위에 오를 만큼 일본 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당 책은 소분류인 한반도 지역 연구 부문에서 판매 1위를, 보다 상위 분류인 외교·국제관계 부문에서는 2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아마존 내 한반도 지역 연구 부문 책 판매 순위. [사진=일본 아마존 갈무리]

 

일본 아마존의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 상위 리뷰. [사진=일본 아마존 갈무리]


저자들 역시 '넷우익'으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들의 공격을 알고 있다. 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묻는 질문에 오키타씨는 잠시 당황하며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넷우익의 댓글 등)이 너무 과격한 말들이라, 어느 정도로 말해야 할지 걱정이 됐다"면서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실명을 쓴 필자진에 대해 가명을 쓴 한국인이라고 한 주장과 '가토 선생님이 수업에서 학생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말이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에 가토 교수는 익숙하다는 듯 지그시 웃으며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로 오키타씨를 비롯한 저자들을 격려했다.
 

넷우익의 댓글도 일본의 현실이기 때문에 '컨트롤 없이' 모두 말해도 괜찮습니다. 예전 세미나 중에는 '넷우익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었지요. 이번 기사가 나간다면 넷우익들은 이를 찾아보고 다시 공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겠지만, 이는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얘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비판'이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 히토쓰바시대학에서 진행된 조·일관계사 연구회 모습. 가운데가 지도교수인 가토 게이키 히토쓰바시대 사회학부 준교수. [사진=저자 제공]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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