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원숭이 왕국 중국, 세계 영장류 연구 신흥 리더로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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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1-09-0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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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푸무밍(蒲慕明)은 중국 신경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신경과학연구소(ION) 소장이다. ION은 중국과학원(CAS) 산하기관이고, 1999년에 설립됐다. 푸무밍은 1948년 난징(南京)생, 73세다. 그는 미국에서 신경과학자가 되었고, 세계적인 명성도 그곳에서 얻었다. 1970년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존스홉킨스대학) 받고, 박사후연구원(퍼듀대학), 교수(어바인-캘리포니아대학, 예일대 의대, 컬럼비아대학)로 일했다. 그러던 중인 1980년대 미국 시민권도 얻었다. 미국 국적자인 그가 어느 때부터 중국을 오가기 시작하더니, 1999년 신경과학연구소를 세우고 소장이 되었다. 22년이 지난 지금도 소장(主任)이다. 그러는 새 미국 국적은 버렸다. 도미 27년 만인 2017년이었다.
 

[푸무밍 중국 상하이 신경과학연구소 소장]


푸무밍은 중국에 가서 영장류 신경생물학에 주목했다. 영장류 신경생물학은 미국에서는 잘 하지 못하던 연구다. 중국은 미국만큼 영장류 연구에 대한 규제가 엄하지 않기 때문에 영장류를 갖고 뇌를 연구해볼 수 있겠다고 그는 판단했다. 영장류(Primate)는 유인원(ape, 꼬리 없는 원숭이)과, 대부분의 원숭이(monkey)를 가리킨다. 사람도 영장류다. 사람은 다른 영장류와 생리학적으로 매우 유사하기에 다른 영장류 연구에서 얻은 지식은 인간에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기에 영장류 연구는 중요하다.

영장류 연구가 중요한 걸 알려주는 한 가지 사례. 알츠하이머는 고령층의 인지 능력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뇌질환.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금방 나올 듯한 때가 있었다. 최상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알츠하이머 치료 관련 연구가 표지로 수년 전에 줄줄이 나왔었다. 지금 알츠하이머 질환 연구자는 열패감에 싸여 있다. 그게 무엇 때문인가 하면, 그들이 쥐라는 모델동물로 연구를 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쥐는 치료했으나,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니, 그 약물은 효과가 없었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약효를 실험할 수 있었다면 사람의 알츠하이머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되었을지 모른다.

푸무밍은 중국을 세계 영장류 연구의 중심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갖고 갔다. 서구가 못하는 일을 해내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정부는 상하이 신경과학연구소 건립을 위해 큰돈을 투자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K교수에 따르면, 푸무밍이 중국에 간 뒤에 중국에서 영장류를 갖고 하는 연구가 크게 늘어났다. 가령, K교수의 중국 지인은 쥐를 갖고 연구를 해왔다. 그런데 영장류 모델을 갖고 연구를 하라는 권유를 받고 있다고 했다. 쥐는 잘 아나, 영장류는 잘 모르기에 영장류 연구를 한다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푸무밍 소장은 인재를 연구소에 모았고, 연구 성과로 당국의 기대에 부응했다. 널리 알려진 연구 성과를 보면, 2016년 자폐 원숭이 모델 만들기, 2018년 마카크 원숭이 복제 논문이 있다. 자폐 원숭이 연구는 최상위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2018년 마카크 원숭이 복제는 최상위 생명과학 학술지 셀(cell)에 실렸다. 자폐 원숭이는 자폐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유전자편집기술로 유전체(genome) 안에 자폐 유전자를 집어넣었다. 그러면 자폐원숭이를 대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못했던 연구를 할 수 있다. 자폐의 대표적인 두 증상은 반복적인 행동과,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자폐 환자는 우리 주위에 놀랄 정도로 많다.

푸무밍 얘기를 처음 내가 들은 건 이승희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로부터다. 이승희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때 버클리-캘리포니아대학 신경과학자인 단양(Yang Dan, 丹陽) 교수 그룹에서 일했다. 단 교수는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할 때 푸무밍 교수의 제자였고, 나중에 그와 결혼했다. 단 교수 역시 미국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자랑하며 미국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푸무밍의 상하이 신경과학연구소는 2020년 1월에도 학계에서 화제가 됐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영장류 신경생물학자 니코스 로고테티스(Nikos Logothetis)가 상하이 신경과학연구소에 합류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로고테티스는 독일의 뛰어난 신경생물학자인데, 그는 당시 유럽의 동물보호행동가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의 실험실에서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윤리적이었느냐가 이슈였다. 그의 실험실에 행동가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았고, 피를 흘리는 영장류 모습 등을 촬영한 뒤 이를 공개했다. 비윤리적인 실험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로고테티스 박사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반발했으며, 결국 유럽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

비전을 가진 신경생물학자가 있고, 그걸 후원하는 당국이 있어서 그런지 세계는 중국을 영장류 연구의 신흥 강국으로 주목하고 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2016년 4월 21일자에서 중국의 영장류 연구 현황을 ‘원숭이 왕국’(Monkey Kingdom)이라는 제목의 글로 전한 바 있다. 네이처 기자는 중국 운난성 성도 쿤밍(昆明)을 현지 취재했다. 쿤밍에는 ‘비인간(non-human)영장류생물의학 국가중점실험실(Yunnan Key Laboratory of Primate Biomedical Research)가 있다. 당시 이곳에는 1500마리의 원숭이가 있었고, 이곳의 책임연구자인 제웨이지(Jie Weizhi,季維智) 박사(쿤밍이공대학 교수)는 각국 연구자로부터 협업 파트너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다른 나라는 영장류 모델을 갖고 있지 않으니, 중국 연구자에게 공동 연구를 하자는 제안이 몰리고 있었다. 중국이 ’영장류 모델‘이라는 기술 플랫폼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렇게 되면 중국은 세계 ’영장류 연구의 허브’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출처=포브스

네이처 보도로부터 5년이 지나서 이 연구소 사이트를 검색해서, 찾아가봤다. 예컨대 쥐를 갖고 태아의 발생을 연구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의과대학 연구진이 영장류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싶어 제웨이지 교수와 공동 연구한 결과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 연구 결과는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렸다. 태아 망막, 중배엽이라는 용어가 보이는 논문이었다. 이밖에도 연구소 사이트에서 연구 성과를 홍보해 놓은 걸 볼 수 있다. ‘영장류(게잡이 원숭이) 태아를 접시에서 20일 이상 키우는 데 성공했다’(2019년 10월 ‘네이처’ 논문), ‘인간의 뇌 유전자를 원숭이들에 과학자들이 집어넣었다’(2019년 4월 테크놀로지리뷰 게재) 등등.

중국 영장류 연구의 힘은 중국이 영장류 모델 동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나온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세계 최대의 실험용 영장류 수출국이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영장류의 70% 이상이 중국에서 들어왔다. 중국 남부의 장쑤성, 운난성 등에 영장류 농장이 있고, 수천 마리씩 영장류를 키운다. 광시좡족자치구는 실험용 영장류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각국 연구자는 실험용 영장류를 구할 수 없어 난리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해서 실험용 영장류가 필요하다. 약물을 개발해, 사람 대상으로 실험하기 전에 영장류를 대상으로 안전성(독성)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공급이 달린다. 코로나 발병 이후 중국 당국은 영장류 수출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그래서 실험용 영장류 가격이 치솟고 있다. 중국의 영어 미디어(Sixth Tone)에 따르면 중국실험실영장류사육개발협회 측은 “원숭이 가격이 2016년 1만5000위안이었으나 현재(2021년 5월) 6만2000위안으로 뛰었다. 지금은 매주 가격이 다르다. 높은 가격에도 팔 원숭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출처=Phys.org

한국도 중국에서의 영장류 원숭이 수입이 뚝 끊겼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사이트에서 이걸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후 2021년 7월까지 검역본부를 통과한 중국산 영장류는 한 마리도 없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2019년에 562마리, 2018년에 486마리를 들여온 바 있다. 중국이 막히면서 베트남으로부터만 영장류가 공급되고 있다. 베트남산 영장류는 지난해 553마리가 반입되었다. 베트남은 중국과 함께 한국의 주요 영장류 수입처로, 2009년 100마리를 시작으로, 매년 300~550마리를 들여오고 있다.

영장류 생물학 연구자는 중국의 영장류 수출 금지가 영구화하는 걸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각국은 영장류 부족으로 연구와 실험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국은 국가영장류연구소가 두 곳(충북 청원 오송과 전북 정읍)에 1000마리의 영장류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걸로는 턱도 없는 실정이다. 인도는 한때 영장류 주요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2014년 해외 수출을 영원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실험 영장류를 구할 수 없으면 어떻게 되나? 실험 영장류를 갖고 있는 나라로 연구자가 직접 가야 한다. 아니면 관련 데이터를 그곳의 공동연구자에게 보내야 한다. 여기에는 일부 문제가 있다. 그 연구 정보가 해외 파트너의 손에서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연구에 많이 쓰이는 영장류는 두 종류다. 게잡이원숭이와 붉은털원숭이다. 제약업체가 약물의 안전성(독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쓰는 영장류는 게잡이원숭이다.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인간에 가까운 붉은털원숭이는 인지 실험과 같은 데 쓴다. 실험용 영장류를 직접 사육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영장류는 번식 주기가 길기 때문이다. 중국 학자들이 이 주기를 단축시키는 연구 성과를 내놓은 바 있다. 4년 주기로 새로운 새끼를 갖는 걸 2년으로 줄였다. 푸무밍의 신경과학연구소의 수저우(蘇州) 분원이 그런 연구를 해냈다.

중국의 영장류 생물학 붐 이야기를 길게 했다. 한국의 다른 이웃인 일본의 영장류 생물학 연구는 어떨까? 일본은 영장류 연구의 강대국이며, 푸무밍의 상하이 신경과학연구소가 자폐 영장류 모델을 내놓았을 때, 경쟁적으로 파킨슨병 영장류 모델을 내놓은 바 있다. 일본의 연구 수준은 중국보다 앞서 있다.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는 세계적인 명성을 오래전에 얻었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실험용 영장류를 얻어온 곳은 일본 쓰쿠바에 있는 영장류연구소(NIBIO Tsukuba Primate Research Center)와 일본영장류전문취급업체(하무리, HAMRI)로부터다. 중국은 영장류 신경생물학의 신흥강국이 되고, 한국은 일본과는 불편한 사이가 되면서 두 나라의 협력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중국과 일본에 낀 한국의 영장류 생물학 연구는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푸무밍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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