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업소'라 불리는 코인거래소, 고승범은 뭐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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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웅 기자
입력 2021-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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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개정되기 전인 2019년 말. 개정안 초안에 명시된 단어 하나를 놓고 국회 정무위원들 간 갑론을박이 오갔다. 초안은 가상자산(코인) 거래소를 포함한 사업자를 '업소'로 규정했는데, 야당은 '불법·퇴폐업소'를 연상시킨다며 '사업자'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아직 제도화하지 않은 시장인 만큼 업소로 불러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최종적으로 '가상자산사업자'로 수정돼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가상자산 '업소'는 지난 4월 국회에 다시 소환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4월 22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특금법상 현재 등록된 취급 '업소'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은 은 위원장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날이었다. 이후 은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업소'를 몇 번 더 꺼냈다. 범부처 합동 회의에서도 '업소'는 나왔다. 5월 28일 가상자산 거래 관리방안이 발표된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을 상대로 비공개 브리핑을 진행했는데, 그는 "가상자산업소", "거래업소" 등 총 여섯 차례 '업소'를 등장시켰다.

돌이켜보면, 정부가 이 시장을 '업소'라 지칭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각종 사기, 불법 거래가 횡행한 코인 바닥은 정부 시각에선 단순히 '업이 이뤄지는 장소(업소)'일 뿐이다. 코인 시장에 정통한 당국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최근 정치권에서 불 붙인 코인업 제도화에 불가론을 피력했다. "코인 시장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 시장에 들어갈 사람은 들어가되, 위험은 오롯이 투자자가 감수하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게 정부의 솔직한 속내다. '청년 어젠다'로 불 붙은 정치권발 코인 제도화 바람이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시각을 바꾸지 않는 한 지금의 코인 대란 해법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쟁점은 '코인을 제도화할 것이냐'가 아닌, '500만명이 넘는 사람은 왜 코인 시장에 뛰어들었느냐'는 물음이 우선돼야 해서다. 이 시장을 '업소'로 규정짓는 순간 해답은 찾을 수 없다. 코인 투자자는 그저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니 '어른이 가르쳐줘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코인 시장을 바로 제도화하자는 게 아니다. 코인 투자(또는 투기)를 부추기자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제도화의 '키'는 어차피 국회에 있으며, 코인 열풍은 알 수 없는 가격 급등락에 좌우된다. 정부가 국회에 힘을 싣든 안 싣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음지'도 마다 않는 투자자는 생겨난다. '없는 돈' 셈 치고 불법 코인 100개에 1만원씩만 넣어둔 후 이 중 하나만 터지길 바라는 투자자들, 그리고 이를 악용하는 세력을 정부는 막을 길이 없다.

'왜 코인이어야 했나.' 오는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서는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이 물음에 답을 내놓길 희망한다. 어쩌면 이 물음에서 '빚투(빚 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대란의 해답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인 시장을 '업소'로 규정짓는 순간 코인 바닥을 기웃거리는 투자자와 시장을 인정할 수 없는 정부, 투자자 표를 의식한 정치권 간 의미 없는 줄다리기는 이어질 게 뻔하다. 고 후보자가 코인 거래소를 뭐라고 부를지 궁금하다.
 

[사진=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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