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숨도 못 쉴 뻔 했네…94분 간 질주하는 '발신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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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1-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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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제한' 23일 개봉[사진=CJ E&M 제공]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대표작(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대표영화(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관객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필자는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녹여낸 '최씨네 리뷰(논평)'를 통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대세의 흐름을 따라 스마트 워치를 샀다. 구매 전엔 스마트 워치로 건강 상태를 살피며 운동하는 멋진 그림을 상상했지만 결국 보통의 스마트 워치 이용자들처럼 관상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의 스마트 워치는 '숨 좀 쉬어라' '자리에서 일어나라'며 잊지 않고 소유주의 건강을 챙기곤 한다.

지난 16일 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 시사회 때였다. 영화 관람 도중에 스마트 워치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고 하니 스마트 워치가 그런다. '심호흡 좀 하세요.' 세상에, 스마트 워치가 아니었다면 상영 시간 94분 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쉴 뻔했다.

VVIP 고객을 관리하는 은행센터장 성규(조우진 분)는 딸 혜인(이재인 분)과 아들 민준을 태우고 출근길에 나선다. 그는 자동차 글로브 박스에서 정체 모를 휴대전화를 발견, "자동차 시트 아래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라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정체불명의 남자(지창욱 분)는 누구도 차 안에서 내릴 수 없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폭탄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성규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같은 전화를 받았다는 직장 동료 정호(전석호 분)의 자동차가 폭발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의 지시를 따르기로 한다.

정체불명의 남자는 성규에게 "현금으로 9억6000만원을 내놓고 17억2600만원을 이체하라"고 요구한다. 설상가상 아들 민준은 종전 폭발 사고로 크게 다친 상황. 성규는 "병원부터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수화기 너머 남자는 냉담하기만 하다.

이 가운데 경찰은 자동차 폭발 사건의 용의자로 성규를 지목한다. 성규는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한 채 테러범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신세가 된다.

'발신제한' 23일 개봉[사진=CJ E&M 제공]


영화 '발신제한'은 '더 테러 라이브' '끝까지 간다' '마녀' '설국열차' 등을 편집한 김창주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매끄럽고 감각적인 편집으로 영화 애호가들의 큰 호응을 끌었던 베테랑 편집 감독답게 '발신제한' 역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구성과 편집으로 알짜배기를 내놓았다. 소재적인 면은 새로울 게 없지만 탄탄하고 밀도 높은 표현과 만듦새가 장르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김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중반부까지 정체불명의 남자와 여러 정보를 숨기려 한다. 관객이 완벽하게 성규에게 몰입하고 정신없이 달리게끔 만든 뒤에야 여러 정보를 내놓으며 하나씩 따르도록 만든다. 이는 상영 시간 내내 관객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드는 요소 중 하나. 관객들은 성규와 함께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또 영화 말미 드러나는 인물들의 관계성을 통해 사회적 이슈와 도덕적 관념을 직시하도록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게 한 건 김 감독의 선택과 집중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골자를 간략하게 만들되 인물들의 관계나 심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풍성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불리는 자동차와 부산 전경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카메라를 노면에 대고 300km를 달리는 느낌으로 찍고 싶었다. 차의 엔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렬한 힘이 표현됐으면 했다"라는 김 감독은 자동차 추격 신의 속도감을 담아내기 위해 드론과 러시안 암 등 장비를 총동원했다. 러시안 암은 유연하고 안정적인 카메라 시스템으로 꼽히는 장비로 주로 차량에 부착되어 원하는 모든 각도에서 촬영이 가능하다. 제작진은 차량에 사람의 팔처럼 다양한 각도로 움직이는 러시안 암을 부착하고 차량의 바닥부터 윗면까지 모두 훑으며 촬영할 수 있도록 했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폐쇄적인 차 안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부산 전경도 강렬하다. 부산의 도심과 바다 등을 담아내며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를 펼친 조우진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성규가 느끼는 불안, 공포, 분노, 슬픔 등의 감정을 폭넓게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 '사바하'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혜인 역의 이재인은 충무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배우라고 칭찬하고 싶다. 협박범을 연기한 지창욱 역시 목소리 연기로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이며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23일 개봉하고 상영시간은 94분 등급은 15세 관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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