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일본 잃어버린 30년이 지속되는 이유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입력 : 2021-06-15 16:50

임병식 위원

G7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 회담은 불발에 그쳤다. 청와대는 공식 회담은 아니라도 ‘풀어사이드(pull-aside)’ 미팅 정도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풀어사이드(대화를 위해 옆으로 불러냄)'는 약식 회담을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출국 전 “G7 회의는 코로나19 이후 중단된 주요국과 양자 외교를 펼칠 수 있는 기회”라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경색된 한·일관계를 감안해 어떤 형태로든 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발언이다.

그러나 성사되지 못했다. 폐막 직후 두 정상이 내놓은 발언에서 그 배경이 짐작된다.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며 적극적 입장을 보였다. 반면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이) 인사하러 와 실례가 되지 않게 인사했다”며 절제된 소회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문제가 한국 측 움직임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책임을 우리 정부에게 떠넘기는 뉘앙스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스가 총리는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인식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왜 정상 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는지를 짐작게 한다. 속 좁은 일본 정부 행태가 G7 정상회의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피해자는 한국인데 거꾸로 우리를 공박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고 부아가 치민다.

사실 일본은 우리가 G7 정상회의에 초청받는 것조차 못마땅해했다. 또 G7 참가국을 넓히는 논의도 반대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13일 “일본은 주최국인 영국에 한국과 호주, 인도를 게스트로 초대하는 건 좋지만 확대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호주와 인도를 들먹였지만 실상은 한국을 겨냥해 반대했다. 이어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입장 전달이 성공했는지 G7 확대 논의는 정상회의가 개최되면서 사라졌다”고 전했다.

일본이 한국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한국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일본은 G7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권 국가다. 게다가 한국은 자신들이 지배했던 식민지였다. 그런 한국이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면서 일본인들은 혼란스러웠다. 이 같은 불편한 감정을 부채질한 게 바로 ‘혐한(嫌韓)’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그칠 게 없었다. 26년 뒤, 1894년 중국을 상대로 청일전쟁을 벌였다. 전쟁에서 승리하며 동아시아 패자 자리를 중국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이어 1904년 러일전쟁에서는 러시아를 이겼고, 곧바로 조선을 삼켰다. 또 1941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개시했다. 비록 패전에 그쳤지만 미국과 5년 동안 전쟁을 벌일 만큼 일본 군국주의는 기세가 상당했다. 더 놀라운 건 1945년 패전 이후다.

폐허가 된 땅에서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뤘다. 20년 만인 1964년 도쿄올림픽을 치렀고 1969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2010년 중국에 G2 자리를 내줄 때까지 40여년 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다. 일본경제가 정점에 달했던 1989년 통계는 당시 입지를 보여준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에 일본은 무려 32개나 포진했다. 또 세계 10위권 가전제품 기업은 8개사에 달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추락은 시작됐다.

30여년이 흐른 2018년 기준, 세계 50대 기업 가운데 일본 기업은 도요타 1개사에 불과하다. 또 가전 기업 10위권 이내는 전무하다. 대신 그 자리를 한국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 가전업체 전체 매출은 삼성 한 개 기업에도 못 미친다.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쓴 요시미 순야 교수는 일본이 몰락한 이유를 이렇게 집약했다. “미래를 읽지 못했다.” 과거 영광에만 안주해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잃어버린 10년은 20년, 30년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을 시기하며 혐한을 통해 내부 불만을 달래고 있다.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는 20여년을 사이에 두고 상반된 책을 썼다.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와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모리시마는 “일본이 퇴보할수록 정치인들은 한국과 중국을 2류 국가로 폄훼하고, 맹목적 애국주의를 부추긴다”며 우경화된 정치에서 문제를 찾았다.

일본 정부는 습관처럼 한국 때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베가 그랬고, 스가 총리 또한 다르지 않다. 과거사 부정, 수출 규제, 독도 영유권 주장, G7 회원국 반대, 정상회담 외면까지 끝이 없다. 일본은 1874년 강화도조약 이후 끊임없이 한반도를 괴롭혀 왔다. 자신들에게 문명을 전해준 고마움을 갚기는커녕 악의로 돌려주고 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말할 것 없고 근대에도 경신참변, 관동대학살, 36년 식민지배까지 헤아리기조차 벅차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제대로 된 사과가 우선되어야 한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montl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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