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이 66년 간직했던 1909년판 신약성경 주셨죠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입력 : 2021-06-09 16:49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㉑ 박영호 회장 <5·끝>
다석의 문하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과 다석을 연구하는 학자, 다석의 뜻을 알리고 실천하는 수행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이번 릴레이 인터뷰의 대상자는 모두 12명이다. 하다 보니 예수의 12 제자와 숫자가 같지만 전적으로 우연일 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비(非)대면 인터뷰 방식을 활용했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오강남 교수와는 줌(Zoom)으로 인터뷰를 했다. 바깥 출입이 어렵고 청력이 약해진 박영호 회장과는 서면 인터뷰를 활용했다. 내가 질문지를 보내자 박 회장이 A4 용지 18장짜리 답변서를 등기우편으로 부쳤다.
카톡방을 개설해 질문을 작성하는 데도 지혜와 정보를 모으고 초고를 올려 여러 사람이 검토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해주었다. 대면 회의보다도 더 효율성 있게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박영호 회장 인터뷰를 연재하는 중에 밴쿠버의 오강남 교수가 ‘박 회장이 다석으로부터 신약성경 받은 이야기가 들어가느냐’는 질문을 카톡방에 올렸다. 김성언 님이 박 회장 부인과 통화해 오 교수의 카톡을 전하자 박 회장이 A4 용지 두장 반짜리 원고를 썼고 부인이 이를 휴대전화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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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이라 하여 축하를 하고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다석 류영모는 반대로 죽는 날을 받아놓고 죽을 준비를 하며 혼자서 자신의 죽음을 기뻐한다. 죽는 날이 한얼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하루살이(一日一生)를 하였다. 잠을 자고 깨어난 때를 태어난 때로 알고 그날 저녁에 잠드는 것을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루살이를 3만일을 되풀이 하는 것이 사람의 한살이(一生)다. 죽음까지 생각하게 되면 내 몸을 낳아준 어버이가 나의 참 임자가 아니고, 죽음까지의 준비가 나의 참 임자인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하였다. 이는 생명의 임자가 한얼님인 것을 알았음을 말한 것이다.
사람이 나서 죽기만 한다면 한얼님이 할 일이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럴 리는 없다. 한얼님은 사람을 통해 당신의 뜻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얼님이신 우주정신(宇宙精神)은 사람이 제나(ego)로 죽고 얼나로 솟아 한얼님의 뜻을 세상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얼님의 말없는 말씀 곧 무언지교(無言之敎)로 깨달은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요 석가이며 그 밖에 세계적인 성현(聖賢)들이다. 제나로 죽고 얼나로 솟나는 것을 예수는 멸망의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김(메타베베켄)이라 하고 석가는 깨달음이라고 하였다. 얼나로 솟나면 몸나의 수성(獸性)은 물론 죽음까지도 자유롭게 된다. 예수의 자유(엘류데로오)가 석가의 해탈(목샤)이다.

다석의 가르침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스승의 사상과 삶을 알리는 데 일생을 바친 박영호. 


다석의 말씀이다. “예수와 석가는 우리와 똑같다. 예수는 내 맘속에 한얼님께서 보내주시는 얼이 참나(생명)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먼저 한얼님께서 내 맘속으로 보내주신 얼나를 참나로 깨닫고 그 얼나의 뜻을 좇아야 한다. 그 얼나는 한얼님의 생명으로 예수의 참생명이요, 나의 참생명이다. 몸으로는 예수의 몸도 내 몸과 같이 죽을 껍데기다. 한얼님의 뜻이 담긴 말이면 내게서 나오는 소리도 본음(本音)이요 정음(正音)이요 복음(福音)인 것이다. 한얼님의 말씀을 알 때 너와 나의 마음 벽을 뚫어 통할 수 있다.”(류영모 <다석어록>)
1975년 3월 13일은 다석의 85번째 생일이었다. 젊은이 몇 사람과 동행하고 구기동 150번지 스승님 댁을 찾았다. 스승님 집은 한옥이었는데 맏아들이 혼인하면서 벽돌집으로 사랑채를 지어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그 바람에 스승이 사랑채로 삼아서 외부 손님을 맞이했다. 나까지 다섯 사람이 댁에 들어서니 그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 사람 홀로 방문하였을 때는 부인도 없는 안채로 안내 받았다. 다석은 우리를 맞으며 ‘내가 죽기로 한 날은 1956년 4월 26일이었는데 이미 19년을 덤으로 더 살고 있으니 송구스러울 뿐이다. 감옥에는 더 오래 있으면 장기수라며 싫다는데 이 세상도 감옥이라면 감옥인데 장기수를 더 좋게 생각하는 것은 생각이 좀 모자라는 것이 아닐까’ 하시고는 내가 좀 나갔다가 오겠다면서 나가시었다.
5분도 안 되어 돌아오시었는데 손에는 창호지로 표지를 여러 겹 싼 신약성경을 들고 오시었다.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박형에게 이 책을 드리는 것이니 받아 가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얼른 일어나면서 ‘저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고 받기를 사양하자 ‘이렇게 주고받을 때가 좋은 것이지요’ 하면서 맡기는 것이었다. 주고받을 때가 좋다는 것은 당신이 살아 있으니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지 죽었으면 이러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뜻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 사양치 못하고 받았다. ‘잘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올렸다.  

      다석이 직제자 박영호에게 무려준 신약성경. 성경이 낡아 표지를 창호지를 갈았다. 

     다석이 객사하기 위해 가출을 할 때도 지니고 있었던 서울특별시민증. 








































 
 그 성경은 다석이 다녔던 경신학교에서 공동구입을 해 배포한 것이다. 아직 한국에는 인쇄소가 없어 일본에서 찍은 1909년 판이다. 구약은 우리말 번역이 안되어 우리말 구약성경이 없었다. 한문에 능한 이는 중국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읽었다. 스승은 그 신약성경을 머리맡에 평생을 두고 읽었다.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갈 때도 다석은 그 성경 한권을 몸에 간직한 채로 다녔다고 가족들이 일러주었다. 여러 동양 고전이 많았는데도 그만큼 신약성경을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손때 묻은 신약성경을 제자에게 준 것은 스승이 예수를 그만큼 경애하니 너도 예수를 경애하라는 의미가 담겼다는 해석이 가장 무게가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예수께서 한얼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말씀을 알렸기 때문이다. 다석은 예수께서 한얼님의 말씀을 일러주신 것을 확신하였다. 다석 스스로도 한얼님의 말씀을 받아보니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한얼님의 뜻을 담은 말씀을 한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석 류영모의 말씀을 인용한다. “우리 눈 앞에 영원한 생명줄이 아버지 한얼님 계시는 위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드리워져 있다. 영원한 생명인 그리스도란 한(큰)숨이요 얼숨이다. 한말씀줄(sutra)이다. 불연속의 연속이란 말이 있지만 얼생명이란 불연속의 연속이다. 얼생명은 끊어지면서도 줄곧 이어지는 것이다. 오래 살려면 말씀 줄을 자꾸 물려주어야 한다. 얼의 실이란 곧 한얼님의 얼말씀이다. 영원한 생명줄로 나온 얼의 실이 말씀이다. 나는 다른 아무것도 믿지 않고 얼나의 말씀만 믿는다. 여러 성현들이 수천년 뒤에도 썩지 않는 말씀을 남겨 놓은 걸 씹어보아요. 이렇게 말하면 종교통일론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통일은 싫다. 통일은 되는 게 아니다. 온통(絶對)인 한얼님께로 돌아가는 귀일(歸一)이라야 한다.”(류영모 <다석어록>) <인터뷰어=황호택 논설고문·정리=이주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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