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모리스 창, TSMC를 초강자로 만든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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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호서대 벤처대학원 초빙교수
입력 2021-06-0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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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로고, 로이터/연합]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흐름에 관해 가장 권위 있는 통계수치를 내는 곳이 ‘IC Insights, Inc.’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본사가 있는 IC (Integrated Circuit) 인사이츠는 1997년에 설립된 이래 전 세계 반도체 업계에 관해 가장 신뢰도가 높은 수치를 발표해온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 집적회로와 관련 제품 시장에 관한 175년에 걸친 자료를 분석대상으로 한다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IC 인사이츠 집계에 따르면, 2021년 올해 1분기 대만 TSMC의 매출은 129억 달러(약 14조4000억원)로 삼성전자(19조원)보다 낮았지만, 영업이익은 53억6000만 달러(약 6조원)로 삼성전자(3조370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시가총액을 분석한 결과는 TSMC의 시총(27일 종가, 미국 달러 환산 기준)이 5432억9300만 달러(약 605조7717억원)로 1년 전(2767억8100만 달러)에 비해 96.3%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시총 475조1900억원(약 4254억2000만 달러)으로 2위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4%, 삼성전자가 17%였다.
TSMC는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약자다. 중국어로는 ‘臺灣積體電路製造股分有限公司’로 적는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대만집적회로유한공사’가 될 것이다. 중국사람들은 “타이지디엔(臺積電)”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타이지디엔 홈페이지에 따르면, TSMC는 1987년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 외곽의 신주(新竹) 과학단지에 설립됐다. “본사는 고객들이 설계한 반도체 칩을 제작 생산하며, 칩 설계는 하지 않는다…본사 고유 브랜드의 반도체는 생산하거나 판매하지 않으며, 고객 회사들과 직접 경쟁은 하지않는다(確保不與客戶直接競爭)”고 분명히 밝혀놓았다. 그러면서 “현재 본사는 전 세계 최대의 전문 집적회로 생산 회사이며, 2019년 현재 전 세계 499개 고객 회사들이 설계한 1만761개 품목의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고 아울러 밝혀놓았다. “고객들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창업자 모리스 창 (Morris Chang, 張忠謨·장중모)의 창업 정신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파운드리(foundry·제조공장)으로서 반도체 설계를 해서 제조 공정을 의뢰한 고객회사들과 절대로 경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고유 브랜드의 반도체는 생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폰을 설계한 애플을 비롯한 반도체 칩을 설계해서 제작을 주문한 고객회사와 경쟁하지 않도록 칩 설계영역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TSMC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9년 현재 타이지디엔은 1년에 12인치짜리 웨이퍼 1200만 장을 대만 내 3개 공장에서 생산한다. 4곳의 공장에서는 8인치 웨이퍼를, 중국 대륙 난징(南京)에 있는 자회사에서도 12인치 웨이퍼를 생산하며, 미국에 있는 자회사 웨이퍼 테크(WaferTech)에서는 8인치짜리 웨이퍼 생산을 본사 지원을 받아 담당한다. 이외에도 유럽과 한국, 일본에도 자회사를 두고 있으며, 전체 직원 숫자는 5만1000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세계 1위의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TSMC를 창업한 모리스 창은 1931년 중국 장강(長江)하류의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출생으로, 아버지는 한 현(縣)의 재정국장을 지냈다. 어머니는 청나라 유명한 장서가(藏書家)의 후손이었다고 중국 대륙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밝혀놓았다. 다시 말해 우리 식으로 ‘양반집 자손’으로, 농민과 노동자 출신이 주류를 이룬 중국공산당과는 흐름이 닿지 않는 가문 출신이라는 뜻이다. 모리스 창이 왜 반도체 공장을 대만에 세웠고, TSMC가 왜 대만을 떠받치는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 잡았는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국공내전의 흐름으로 보아 모리스 창은 국민당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리스 창이 태어나서 10세가 된 1940년까지 중국대륙은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사이의 국공내전 기간이었다. 모리스 창의 집안은 전쟁을 피해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충칭(重慶), 상하이(上海)를 전전하며 피란을 다니다가 나중에는 영국 식민지 홍콩으로 건너가서 살았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이 홍콩의 주룽(九龍) 반도를 점령하자 다시 중국 내륙 충칭으로 옮겨갔고, 모리스 창은 충칭에 있는 난카이(南開) 중학에서 공부했다.
1949년 베이징(北京)에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던 해에 모리스 창은 18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다. 당시 하버드대 신입생 1000여명 가운데 모리스 창이 유일한 중국인이었다. 1950년 모리스 창은 MIT로 옮겨가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MIT에서 기계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창은 24세가 된 1955년 보스턴 근처의 실바니아(Sylva-nia)라는 반도체 공장에 엔지니어로 취업을 하는데 이것이 창이 반도체 업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다.
1958년 27세가 된 창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입사해서 TI 최초의 중국인 직원이 된다. 1964년 창은 TI의 도움으로 스탠퍼드대 전기학 박사학위를 받고 다시 TI로 돌아와 집적회로 부문 사장으로까지 승진한다. 1972년에는 TI의 부총재로, TI 내 제3위 인물의 자리에 오른다. 당시 TI는 전체 직원이 6만여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 정도가 모리스 창의 관리 아래에 있었다. 미국의 IT기업들이 반도체 칩 시장의 큰손들이면서도 인건비 때문에 반도체 칩의 설계만 하고 직접 제조공장은 지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파악한 창은 대만으로 가서 파운드리 공장을 지을 구상을 시작한다.
1985년 창은 미국을 떠나 대만으로 간다. 대만 정부로부터 대만공업기술 연구원 원장자리를 제의받고 수락했다. 1987년 창이 대만 신주(新竹)공업단지에 세계 최초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TSMC를 설립한다. 창의 뒤를 대만 정부가 지원했음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TSMC에는 대만 정부의 투자가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창은 대만 정부 대표로 총통특별전세기를 타고 베트남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에 참석하기도 했고, 현 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은 1등 훈장 경운(卿雲)장을 수여했다.
TSMC는 최근 1나노미터짜리 반도체칩 생산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풀었다는 뉴스를 흘려 전세계 반도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반도체 칩이란 실리콘을 재료로 한 원반형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인쇄한 칩을 새겨넣어야 제작이 가능해지는데, TSMC의 그런 발표는 반도체 칩 생산에 필수적인 EUV(Extreme Ultra Violet) 장비를 이용한 초미세 리토그라피(lithography·노광작업)가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바이든 시대에 들어와 TSMC는 미 행정부의 원격 지원으로 노광기 EUV작업이 가능한 환경을 갖게 됐고, TSMC는 그런 감사의 표시로 미국 내에 6개의 반도체 웨이퍼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1987년에 설립된 TSMC의 성장은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충분한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5월 21일 문재인-바이든 사이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정부가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에 한국기업이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한 것은 이제야 한국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국제정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협력한다”라는 합의문 글귀를 넣은 것은 중국으로서는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대만의 TSMC가 미국과 중국 사이 국제정치의 소산(所産)이듯이, 공동성명에서 대만을 언급한 것은 한국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행위를 한 것이라는 인식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철폐된 미사일 연구 개발을 할 수 있게 된 점 역시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루비콘강의 본줄기를 건넜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당당하게 중국의 추후 대응에 맞설 수 있느냐는 데에 있을 것이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만약에 시진핑이 계속되는 바이든의 포위공세에 자제를 못하고 대만을 공격할 경우 대만 TSMC는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의 반도체 업계는 또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도 미리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논설고문 / 호서대 벤처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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