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끌어낸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

윤동 기자입력 : 2021-05-21 09:30
"장기적으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딩 역할을 해주시는 것은 외부의 전문가가 영입돼야 한다"

주주총회가 얼마 남지 않은 지난 3월 중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던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전 상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라고 힘줘 말했다.

다만 공식석상에서 회사 임원 중 가장 먼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긍정적이라고 평했던 박 상무도 금호석유화학이 이토록 빠른 시간에 분리 작업의 첫발을 땔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달 초 금호석유화학은 최대주주가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3월 말 주주총회에서 박 전 상무와의 표 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결국 대표이사·등기임원 자리를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박 회장의 빈자리에 새로운 사내이사를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추가되는 사내 이사는 연구개발(R&D) 부문의 전문가인 고용훈 중앙연구소장(부사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고영도 관리본부장(전무)이다. 이들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영업부문 전문가 백종훈 대표이사와 함께 회사와 이사회를 이끌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박 회장이 대표이사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면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박 전 상무의 장기적 로드맵이 그의 경쟁자였던 박 회장의 손에 실현된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올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이후 계속돼 왔던 박 전 상무의 '도전(挑戰)'과 박 회장의 '응전(應戰)'의 마지막 수순이라는 평가다.

박 전 상무는 사내이사로 진입해 경영권을 움켜쥐기 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주주친화정책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앞세워 박 회장 측에 도전했다. 실제 당초 박 전 상무는 이사회 개혁을 명분으로 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 설치, 대표이사와 이사회의장 분리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박 회장 측은 이보다 더욱 파격적인 정책을 약속하며 응전에 나섰다. 박 회장 측은 박 전 상무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설치하겠다며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소액주주의 표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배당 규모를 놓고서도 박 전 상무 측만큼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고수했던 보수적인 배당정책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대의 흐름을 앞세운 박 전 상무의 도전을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한 발 앞서 응전한 것이다.

이같이 응전을 거듭해왔던 박 회장 측이 박 전 상무의 마지막 카드였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마저도 한 발 앞서 먼저 실현해냈다는 것이 재계 일각의 시선이다. 이들은 박 회장 측이 ESG 경영 등에 공감하기보다는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당 정책을 받아들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결과물을 놓고 보면 굳이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지난해까지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ESG·주주친화 기업'으로 크게 혁신했다. 만약 박 전 상무가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 같은 급속도로 혁신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20세기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논리로 설명했다. 외부나 자연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과 문명은 살아남았고, 그 반대는 멸망했다는 시각에서다.

토인비의 이론은 문명의 원동력에 대한 것이나, 고도로 문명적인 기업 경영에서도 다소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외부나 환경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한 기업과 경영자는 번창하나, 그 반대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박 전 상무는 도전에 실패했고 박 회장은 응전에 성공하며 경영권 분쟁 1라운드에서 승리했다. 다만 박 회장만 승리한 것은 아니다. 'ESG·주주친화 기업'으로 혁신한 금호석유화학의 소액주주와 임직원, 관계 기업이야말로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가장 큰 승리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윤동 기자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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