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개천에선 용이 날 수 없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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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람 기자
입력 2021-05-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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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야흐로 '부동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회적 계층이 나뉘어 지고, 열심히 땀 흘려 버는 돈 대신 주식과 부동산을 통한 투자소득이 더 큰 인정을 받는 사회가 온 것이다.

부동산 세상에서 사람은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유주택자는 또 두 갈래인 1주택자와 다주택자로 이분화된다. 무주택자는 유주택자의 세상에서 어울릴 수 없다. 

급등한 부동산 가격은 자산 불평등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재산이 불어나면 상류층, 노력해야 재산이 불어나면 중산층, 노력해도 재산이 줄어들면 하류층이라는 '웃픈'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6억원대면 조금 낡았더라도 중소형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6억원으로는 서울 외곽 지역의 아파트 전세도 구하기 힘들다. 월급은 1년 전 그대로인데, 집값이 치솟으면서 개천의 용들이 다시 개천으로 굴러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간조사기관인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서울의 집값은 4년 전에 비해 34.95%가 뛰었다. 상대적으로 저가 주택이 많았던 노원구 집값은 52.09% 올라 서울에서 가장 많이 뛰었고, 영등포구 48.04%, 양천구 46.21%, 송파구 44.49% 순으로 나타났다.

아파트를 포기한 사람들은 빌라(다세대·연립주택)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건수는 총 3217건으로, 아파트 매매 건수(1450건)보다 2.2배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빌라 거래량은 4개월 연속 아파트를 추월했다.

아예 서울을 떠나 수도권으로 짐을 싸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른바 탈(脫)서울 행렬이 줄을 이으면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의 올해 1~3월 아파트값 상승률은 각각 5.75%, 5.50%로 서울(1.05%)의 5배를 넘어섰다.

천정부지로 뛴 집값은 계층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 청년층에서는 자의적·타의적 비혼족이 늘어나고, 지역별 교육 양극화도 심화하면서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못하는 젊은 층은 할 수 없이 월세를 전전하고, 맞벌이 부부들은 있는 집보다 적은 수의 사교육을 시킨다. 

개천에서는 용이 나기 힘든 세상이 온 것이다. 집값이 폭등하던 작년 10월, 고시도 합격하고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신을 밝힌 한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개천의 용에게 집은 결국 개천(전·월세)인가. 태생이 용인 자만 자기 집 얻을 수 있나"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당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기회와 과정과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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