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성(性) 격차' 전 세계 하위권…일본은 왜 성 평등 '후진국'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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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04-0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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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성 격차 2021 보고서, 일본 120위로 한·중·일 중 꼴찌

  • 日 정부, 여성이 빛나는 사회 만들겠다더니…정치권서 성차별 구설수

  • 美 의회조사국 "일본 내 여성멸시 풍토가 여성의 정치·경제 참여 발목 잡아"

  • 20대 일본 여성들 "성평등 조사 계기로 정부가 남녀격차 개선에 관심 가지길"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제 의도는 일본의 경제 구조를 변화시킬 것" ···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2013년 유엔 총회 연설 중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일본 정부의 바람과 달리 일본의 여성권익 관련 지표는 거꾸로 가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기업의 여성 채용 목표를 수치화할 필요가 있다"며 여성 정책을 강조했지만, 최근 성평등 수준이 동북아 3국 중 꼴찌를 기록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성평등 하위권 성적표를 받아 본 일본 여성들은 "성평등은 국제적인 흐름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도쿄 시부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2021'(Global Gender Gap Report 2021)에 따르면, 남녀평등 국가 순위에서 한국과 중국이 각각 102위와 107위를 기록한 반면, 일본은 120위로 한·중·일 중 가장 낮았다. WEF 보고서는 △경제 참여·기회 △정치 권한 △교육 성과 △보건 등 4개 분야에서 성별 격차를 수치화해 순위를 매기는데, 일본 여성의 정치 참여는 조사 대상 156개국 중 147위로 역대 최저 수치를 기록하면서 바닥권에 머물렀다.

보고서에는 일본 여성의 중의원(하원) 의원 비율이 9.9%, 장관 비율은 10%로 조사됐는데 이는 조사 대상국의 평균 여성 정치참여 비율(여성의원 26.1%·여성 장관 22.6%)과 비교했을 때 세계 평균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특히 일본의 성평등 수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뒷걸음치는 모양새다. 2018년 일본의 성평등 순위는 110위였으나 작년과 올해 연달아 120위권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전날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세계 각국이 성평등을 위한 노력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우리나라(일본)의 대처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라고 자책했다.
 
日 정부, '여성이 빛나는 사회' 만들겠다더니···잇따른 성차별 구설수
역주행하고 있는 일본의 성평등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남녀 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인 2003년 당시, 국회의원과 공무원, 기업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여성의 비율을 3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이 정책은 '여성 활약'을 내건 아베 전 총리 정부에도 그대로 계승됐다.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슬로건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 정부는 해당 정책의 목표 시기를 '2020년'에서 '2020년대'로 슬그머니 수정했다. 여성의 고위직 등용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마키코 에다 WEF 일본 대표이사는 일본 경제 매체 닛케이아시아에 "일본 정부는 국회의원을 비롯해 고위직·관리직 여성 비율을 2020년 기준 30%까지 늘리겠다고 했지만, 정부의 약속은 2030년까지 미뤄졌다. 또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임용·승진 등에서 성차별 불식) 진전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 저절로 나아지는 건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한상 기자]


일본 여성의 정치·경제 참여가 수년째 제자리걸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의회조사국은 일본에 깔린 '여성멸시 풍토'가 발목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도쿄도 의회에서 발생한 여성 의원에 대한 성희롱 야유를 언급하며 "여성 지도자를 깔보고 여성의 역할은 가정에 있다고 간주하는 뿌리 깊은 정치문화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자민당 소속 스즈키 아키히로 의원은 지난 2014년 도의회에서 열린 일반질의에서 오무라 아야카 다함께당 소속 여성의원이 임신·출산·불임 등과 관련해 여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자 시오무라 의원에게 "본인이나 빨리 결혼하면 좋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에는 일본 총리를 역임한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대회조직위원장이 성차별 발언을 해 일본 내 뿌리 깊은 여성 멸시를 드러내기도 했다. 모리 전 위원장은 지난달 3일 일본올림픽위원회(JOC) 회의에서 여성 이사 증원 문제를 언급하면서 "여성은 말이 많아 회의가 오래 걸린다", "여성 이사를 늘린다면 발언 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임했다.

위원장 자리에 물러난 지 한 달여 만에 이번에는 가와무라 다케오 자민당 중의원과 일한 여성 비서에 대해 "가와무라씨의 방에는 대단한 아주머니가 계신다. 여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지만"이라고 말해 또 구설에 올랐다.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대회조직위원장 [사진=연합뉴스·AP]


일본 여성에 대한 불안정한 고용 정책이 남녀 격차를 키운다는 시각도 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여성 85만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지만, 이 중 정규직은 23만명에 불과했다. 반면 남성의 경우, 51만명이 취업했으며 정규직은 29만명, 비정규직은 22만명이었다. 여성 출산·육아휴가를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애로 애로(Arrow Arrow)'의 우미노 치히로 대표는 "(코로나19 여파로) 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정규직은 장기 휴직이나 고용 종료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일본 여성들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우려했다. 실제로 일본 총무성의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비정규직은 전년 대비 97만명이 감소했으며 이 중 71만명(73.2%)이 여성이었다.
 
20대 일본 여성들이 본 '글로벌 성 격차 2021 보고서'···"정부가 남녀격차 개선에 관심 가졌으면"
"이번 성평등 조사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남녀격차 개선에 관심 가지길 바란다" 20대 일본 여성들은 올해 일본의 '성평등' 성적표와 관련해 일본 정치와 경제 등 어느 곳에도 여성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요코하마에 거주하고 있는 유리씨(28)는 "일본 정치권과 기업 등에서 의사결정권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남성으로, 남성 카르텔이 매우 굳건하다. 이처럼 사회 각 부분에 녹아든 남성 중심 문화가 일본 전체의 남녀 격차를 벌리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미오씨(25)는 "현재 근무 중인 회사 내 임원과 관리직만 보더라도 여성은 전무하다. 특히 최근 모리 전 위원장의 성차별 발언을 통해 일본 내 여성 멸시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성평등 조사를 계기로 일본 내 여성권익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유학 당시 여성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밝힌 미카씨(25)는 "최근 한국 사회는 성차별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은 반면, 일본 사회는 소극적"이라며 성차별 철폐 움직임이 활발한 한국 사회가 부럽다고 전했다.

한편, 우머노믹스(Womenomics·여성이 주도하는 경제) 용어를 만든 골드만삭스의 마쓰이 캐시 일본시장수석연구원은 "공직자에 대한 여성 할당제를 비롯해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 등 성별 관련 공시 규정을 강화하면 일본 내 성평등 격차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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