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의 베트남 통(通)]"유튜브로 더 이상 공부안해도 되요"...베트남, 한국어 제1외국어 채택

하노이(베트남)=김태언 특파원입력 : 2021-03-25 17:53
시범과목 도입 후 5년만의 결실...영어, 중국어 등 세계어와 어깨 나란히 대학입시도 한국학과는 최고점수 기록 중...​한국어 수요 갈수록 늘어 저변확대 위한 인프라 구축 시급..."현지교원 최소 300명 이상 양성해야"

지난 2016년, 베트남 교육훈련부와 주베트남한국대사관이 한국어 시범교육을 협력하는 협정식을 개최했다.[사진=베트남 교육훈련부 제공]


“(베트남에서) 한국어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세계강국의 언어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한국어과 학생들과 한국기업 취업 희망자 등 한류에 기반한 일부 수요자 집단에서 베트남 국민 전반으로 한국어교육 대상자가 확대되는 결과를 의미합니다.”

이번 베트남의 한국어 필수언어 채택과정에 실무업무를 담당했던 이홍석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행안관의 설명이다. 이 행안관은 “베트남 정부가 한국 정부와 지속적 협력을 이어간 가운데 한국어를 공식적으로 제1외국어로 채택하기로 했다”며 “코로나19 여파로 한국과 베트남의 왕래가 줄어들고 교역규모도 축소됐지만, (제1외국어 채택은) 향후 베트남과 한국 양국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 제1외국어 시범 과목으로 ‘한국어’ 선정
3단계 프로그램 발표...1155단위 이수 시 TOPIK 6급 목표

베트남 한국어교육원에서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베트남통신사(TTXVN)]


베트남 정부가 올해부터 제1외국어 교과과정으로 한국어를 채택했다. 지난 2017년부터 베트남의 8개 중·고교를 시범학교로 선정해 제2외국어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이후 불과 4년 만의 성과다.

베트남 교육훈련부는 지난달 9일 결정문을 통해 “한국어와 독일어를 제2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일부 지역에 시범교육 했으며, 이후 학생들의 수요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며 “학습 요구에 맞게 한국어와 독일어를 제1외국어로 선정했다”고 채택 배경을 밝혔다.

베트남에서 제1외국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제2외국어는 중등학교부터 선택과목으로 가르치는 외국어를 의미한다. 지난해까지 베트남의 제1외국어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5개 과목이 선정돼있다.

교과개편을 통해 한국어와 독일어가 제1외국어에 추가되면서 이제 베트남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올해 정규학기인 8월부터 한국어를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사교육을 병행하지 않고도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공교육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 교육훈련부는 이번 한국어 시범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에게 수용 능력에 적합한 문법과 어휘, 주제 등을 포함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기본 능력 4가지를 소개, 연습,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또 학생들이 효과적으로 한국어를 적용하여 의사소통 능력을 형성하고 발전시키고 향후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에서 인적 자원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교육훈련부에 따르면 연습과 평가기간을 포함하여 프로그램의 총 이수 시간은 1155단위다. 단위당 수업 시간은 45분으로 프로그램은 3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4년간 420단위, 2단계는 7학년부터 9학년까지 3년간 420단위, 마지막 3단계는 10학년부터 12학년까지 3년간 315단위의 교육을 받게 된다.

초등학교(3~6학년)는 우선 학생들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4가지 기능을 통해 기초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형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한다. 이 기간은 듣기와 말하기 능력에 집중한다. 중학교(7~9학년)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의 의사소통 능력을 지속적으로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사고력을 발달시키고 한국 문화·사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증진시킨다.

고등학교(10~12학년)에서는 학생들이 초·중 수준에서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의사소통을 향상시키고 평생 학습을 위한 지식과 기술을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업무 능력을 개발한다. 궁극적으로 베트남 교육부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목표는 3단계를 마칠 경우(12학년 졸업) 한국어능력시험(TOPIK) 6급 중 3급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설정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어는 곧 ‘기회’...23개 대학서 1만명 한국학 전공
4200개 한국기업서 100만명 고용…관련학과 연봉 2~3배도 거뜬

[아주경제 그래픽]


베트남의 한국어 제1외국어 채택 배경은 무엇보다 고등교육에서 한국어 저변이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1993년, 베트남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인사대)에 첫 한국학과가 개설된 이후 2000년까지 5개 학교가 한국학과를 도입했고, 2001∼2010년 8개교가 추가된 데 이어 2011년 이후 20개 이상 학교에서 한국어 학과가 더 늘어났다.

현재 베트남은 전국 32개 대학에서 한국어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한국어 전공자만 1만6000여명에 달한다. 베트남 세종학당, 한국어교육원, 한국문화원 등 주요기관 15곳에서 작년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수강한 사람도 1만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여기에 수백여개의 일반 한국어교습소, 사설학원 등을 포함하면, 베트남 내 한국어를 학습하는 학생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어 학습 열풍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응시자 수 증가다. 그간 TOPIK 시험은 한국인과 결혼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결혼비자 발급을 위한 시험으로 인식됐지만 최근 그 수가 급격히 급증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 따르면 2015년 1만3000여 명이었던 베트남의 TOPIK1·2의 전체 응시자는 2019년 기준으로 2만8211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이러한 상황을 방증하듯 최근 치러진 베트남 2021학년도 전국 대학입시에서도 한국어 학과의 입시경쟁률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현지매체들에 따르면 40점 만점인 대학 입학시험에서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학(35.02점), 하노이 외국어대학교(33.98), 각 지방 사범대학교 등에서도 한국어 학과는 평균 32점대 이상의 학과로 최상위 수준의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베트남 최고 명문으로 통하는 국립하노이대학의 경우, 한국어학과 커트라인은 35.13점으로 25개학과 중 가장 높았다. 이 대학의 어문학과 커트라인은 영어학과 34.82점, 중국어과 34.63점, 일본어과 34.47점 순이다. 하노이대학에서 어문학부 인기가 가장 높다고 볼 때 사실상 한국어학과의 커트라인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 내 한국어의 인기 비결은 무엇보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한국기업 취업 등 실질적인 경쟁력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현지매체에 따르면 주요 베트남 대학의 한국학과 학생들은 지난 수년간 90%가 넘는 취업률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역풍에도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이 채용한 현지 인력은 약 1만명에 달하고, LG전자 베트남법인은 올해 하이퐁사업장이 완공돼 각 계열사들이 한데 옮겨오면 수천명의 직원을 추가로 채용할 예정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4200여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현지인 약 10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기업에서 한국어 전공자에게 높은 급여를 제공하는 것도 한국어 인기의 주요인이다. 실제 신한베트남은행의 경우 은행 창구 일반 직원의 급여는 보통 500~600달러 정도인 데 반해 한국어가 능통하고 통역이 가능한 직원은 평균 급여가 1000~1500달러 정도까지 급여가 높아진다.

하노이 한국기업의 한 베트남인 직원은 “평균 급여가 최대 3배 이상인 점에 비춰보면 베트남 대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도 스펙 쌓기로 한국어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유튜브 등 한국어 관련영상을 보고 틈틈이 승진시험 등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선 한국어 교육 품질저하 우려..."각급 우수교원 양성하고 현지용 교재 개발해야..."

지난해 열린 '2020 한국어 통역대회'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호찌민 한국어교육원 제공]


초·중등 교육이 결국 고등교육 확산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각 대학 한국학과, 세종학당 등 관련 기관도 이번 한국어의 제1외국어 채택을 크게 반기고 있는 분위기다. 하노이인사대 한국학과장인 루투안안 교수는 “한국어의 제1외국어 채택은 이미 가시화된 일”이라며 “이미 정원의 2배가 넘는 학생들이 매년 지원해 정원확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응우옌티푸옹마이 호찌민인사대 한국학과장은 “이번 성과는 베트남 정부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일찍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한 것이 중요하다”며 “제2의 한국어 학습 열풍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베트남에서 한국학과가 전환기를 맞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국립대는 한국학 심화과정을 위해 지난해부터 베트남 대학 내 최초로 한국학대학원을 개설했다. 호찌민시 내 일부 대학들은 한국학과를 신규로 개설하기 위해 교육훈련부에 인가를 요청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한국어의 제1외국어 채택이 실질적인 양질의 한국어 보급으로 확산되기 위해선 인프라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함께 커지고 있다. 당장 올해 8월부터 한국어 교육이 초등 수준부터 이뤄져도 현장에서는 교육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한 현실이다.

하노이 세종학당의 한 강사는 “베트남에서 일고 있는 한국어 열풍은 당분간 사회·경제적 현상과 맞물려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어 저변확대를 위해 자체적으로 초등부에서 지도가 가능한 교원이 최소 300여명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학교에서 한국어반을 모집해도 이를 지도하고 감독할 교원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어 교재가 대부분 영·미권 학생을 중심으로 개발된 점을 감안해 베트남 현지에 맞는 교재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베트남 어린 학생들이 가정형편상 대부분 유튜브 등을 통해 한글을 배우는 점을 감안하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교재를 시청각 자료 위주로 바꾸고 베트남 문화에 맞는 현지교재를 개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한국어 강사는 너무 많은 사설학원들이 난립해서 한국어를 단순히 입시대상으로 삼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어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한 현지인 강사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도식적인 한글만을 가르쳐 자칫하다간 한국어교육의 질적인 악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어 강사에 대한 처우문제도 지적됐다. 한 한국어 강사는 “현행 각 어학당에 한국인 강사가 채용돼 강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사설학원 등은 정부보조도 전무하고 급여가 워낙 열악해 현지생활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정부는 양질의 한국어 보급을 위해서 베트남 내 한국어 교원자격증 제도를 신설하는 등 한국어 관련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부터 한국어 담당 전문관을 파견해 베트남 내 전문적인 한글 교육과 보급을 강화하고 한국어 교사양성과정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또한 베트남 교육훈련부와 관련 협약을 통해 각 베트남 기관과 한국어 관련 단체에 교과서와 학습자용 익힘책, 교사용 지도서 개발, 교원 양성, 한국어 교사양성과정 지원, 한국인 교사 파견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박노완 주베트남 대사는 “이번 성과는 베트남 내 정부기관, 한국기업, 베트남 한인단체들이 모두 협력한 결과”라며 “한국어가 제1외국어 교과로서 지속적인 결실을 볼 수 있도록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포괄적인 한국어 지원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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