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NA] 미얀마 지역봉쇄 시위대 구속 나서

[이제 양곤 시내에서 치안부대의 트럭은 일상적으로 자주 볼 수 있는 차량이다. =10일 (사진=NNA)]


미얀마 군 당국은 10일, 쿠데타에 항의하는 국철(MR) 소속 직원과 그 가족 약 1만명이 살고 있는 미얀마의 공영주택 일대를 봉쇄했다. 군은 8일에도 다른 장소에서 시위대를 검거하기 위해 주변지역을 봉쇄한 바 있다. 최근 들어 군부는 가두시위를 직접 진압하는 활동에 그치지 않고, 지역을 봉쇄하는 등 강제수사를 더욱 확대해 구속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군부는 3월 들어 가진 각국 대사와의 회담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10일, 국철 소속 직원이 거주하는 공영주택과 철도역 등이 포함된 지역 일대를 완전히 봉쇄했다. 이곳으로 향하는 간선도로에는 총을 소지한 치안부대원들이 배치되었으며, 이 지역과의 왕래는 통제됐다. 국철 직원들은 군정에 항의하기 위해 업무를 보이콧하는 시민불복종운동(CDM)을 노조차원에서 참여하고 있다.

공영주택에는 CDM에 참가하는 직원 약 800명과 그 가족들을 포함해 약 1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에 의하면, 치안부대는 "CDM을 계속할거면 여기서 나가라"며 압박했다고 한다. SNS나 현지 언론이 전송한 영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단지를 떠나는 모습이 찍혀 있다.

이곳 주민인 모 모 미야(38, 여성)씨도 아이 3명과 함께 지인의 집으로 대피했다. 이 여성은 "극히 일부만 단지에 남았다. CDM에 참가하고 있는 남편은 구속을 피하기 위해 다른 장소로 피신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8일에도 양곤의 일부 지역을 다음날 새벽까지 봉쇄했다. 치안부대가 거주자 기록을 들고 시위대 적발에 나서 30명 이상이 구속됐다.

정보통제를 위해 군부가 강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는 민간 언론사에는 강제수사가 끊임없이 실시되고 있다. 8일 면허를 박탈당한 독립언론 '밋지마'를 포함한 2개 언론사 사옥은 10일까지 강제수사를 받았으며, 구속된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구속, 지명수배 약 2천명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의하면, 쿠데타 발생 후 구속 또는 지명수배된 사람은 이달 9일까지 1939명에 이른다. 이 중 석방된 사람은 불과 20% 수준. 아웅산 수치 고문이 당수를 맡고 있는 국민민주연맹(NLD)의 지역간부들은 연이어 체포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2명이 구속 후 사망했다.

치안부대와 시위대간에 충돌은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일본인도 연루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북부 라인타야 군구에서는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던 치안부대가 일본인이 타고 있던 차량에 올라 타, 총을 겨누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인들은 차량 탑승자가 일본인임을 파악한 후 공격을 중단했다고 한다.

현장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공장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계 기업은 현재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남성 주재원은 "어쨌든 연루되지 않기 위해 외출은 생필품 구매 등에 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9일, "향후 사태가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며, 급한 용무가 아닌 사람은 귀국을 권장하는 '스팟 정보'를 공개, 일본으로 피신하는 사람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치안부대의 총격으로 지난 3일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북부지역에서는 10일에도 시위현장에서 200명 정도가 구속됐으며, 발포에 의한 부상자도 발생했다. 양곤 중심부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여성(55)은 "매일 치안부대가 오면 숨기를 반복하고 있다. 언론탄압이 자행돼 신문은 1종만 팔고 있다"고 말했다.

■ 군부, 외교단에 기존 입장 바꾸지 않아
군 당국은 3월 들어 각국 외교관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5일에는 소 윈 부사령관이 토마스 라즐로 바이다 미국대사와 온라인으로, 8일에는 외무장관에 임명된 운나 마웅 륀 장관이 마루야마 이치로(丸山市郎) 일본대사와 수도 네피도에서 직접 회담했다. 9일에는 유럽연합(EU) 군사참모부 해군 중장이 소 윈 부사령관과 전화회담을 가졌다. 각국은 폭력행위가 조속히 중단되어야 하며, 아웅산 수치 고문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다만 외교소식통에 의하면, 이러한 만남이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협의를 하기 위한 모습이 아니었다"며, 기존과 마찬가지로 "총선에 부정이 있었기 때문에 헌법에 따라 긴급비상사태를 선언, 전권을 장악했다"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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