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장 선거인단께 [이동훈의 100℃]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동훈 기자
입력 2021-01-17 07: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스포츠가 끓어오르는 100℃

대한체육 100년 기념 타임캡슐, 개봉일은 2120년 7월 13일이다.[사진=연합뉴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거는 시작부터 진흙탕 싸움이었습니다. 후보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몸에 진흙을 잔뜩 묻혔습니다. 모든 세상이 흙색이라 이제는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가지 않습니다. 진흙탕 속의 진주를 찾기 위해 파헤치고, 헐뜯고, 뺏기고, 빼앗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를 남겨 두고 돌아보니 정정당당한 선거가 아니었음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선거는 지난 40대 선거와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코로나19의 확산입니다. 지난해 3월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범유행) 선언 당시에만 해도 이렇게 될 줄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신 차리니 모두가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도장과 체육시설 등을 운영하는 분들은 은행에 가서 대출 상담을 받고, 오토바이에 오릅니다. 우리 민족을 뜻하는 말이 '배달민족'인지 '배달의 민족'인지 알지도 못한 채 도로를 누빕니다. 스로틀을 당기면서도 앱을 바라봅니다. 조리 시간을 체크하고, 3500~4500원 배달을 먼저 잡기 위해 클릭하기 바쁩니다. 텅 빈 도장·체육관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사투가 됐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꽉 막힌 체증입니다. 제40대 집행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난 4년이 (성)폭행으로 얼룩졌습니다. 어린 나이의 남녀 선수들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알리고, 시위해야 했죠. "나 이렇게 당했습니다"고 말입니다. 다른 한 명이 관심을 가져줬어야지만, 그제야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때마다 대한체육회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매번 꾹 다문 입이 떠오릅니다. 책임지라는 말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가 흐르는 강물에 떨어졌습니다. 활짝 피웠다면 정말 아름다웠을 꽃봉오리가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강가에서 떠내려가는 꽃봉오리를 보고 남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체육인들의 눈물이 국민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난 일인 듯 덤덤해졌지만, 체한 듯 단단하게 얹힌 응어리는 좀체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선수분들만 아팠을까요. 아닙니다. 지도자분들도 아픔이 많았습니다. 칼바람보다 날카로운 치맛바람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의 '갑질' 아닌 '갑질'을 참아왔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지도자분들 중에서는 시즌 계약으로 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1년 계약직보다 못한 삶입니다. 학부모들의 성에 차지 않으면 즉각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언제 그만두게 될까 조마조마하게 '지도' 합니다. 이게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빙산의 일각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앞으로의 100년입니다. 지난해 대한체육회는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타임캡슐에 지난 100년을 담아 묻었습니다. 사람은 배움의 동물입니다. 물론,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죠. 100년이 되풀이될 수도, 되풀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날은 누구 하나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200주년을 향해 달리는 출발선입니다. 지난 100년이 그랬듯 상전벽해 같은 변화 속에서 정체된 대한체육회가 아닌, 시대에 발맞추는 대한체육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스포츠를 세계에 알릴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말보다는 행동이 우선시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대한체육회가 더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됩니다.

대한체육회장 선거인단께 기본과 원칙, 상식의 잣대로 체육 현장을 온·오프로 치열하게 취재해온 언론인으로서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지금까지 100년을 달려왔습니다. 한 세기 체육인들의 피와 땀으로 쌓은 탑을 평가할 수 있는 권리는 저에게 없습니다. 온전히 여러분의 피와 땀입니다. 헛되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터전'이고, 그 결정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어떤 분이 당선(재선, 초선)되든 간에 대한체육회가 더는 '침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틀 뒤 당선인께도 미리 축하의 메시지를 남깁니다. 당선을 축하합니다. 대한체육의 백년대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발, '침묵'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른 나라 체육회가 아닌 '대한' 체육회니까요.


▲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일시 : 2021년 1월 1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기간 외 기권처리)

투표 방법 : 발송된 개인 URL을 통해 진행(미수신 시 스팸차단 애플리케이션, 스팸 문구 삭제 필요)

후보자(기호순) : 이종걸(64·기호 1번), 유준상(79·기호 2번), 이기흥(66·기호 3번), 강신욱(66·기호 4번)
​​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