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욱진 화백 30주기 기념전
  • 현대화랑, 13일부터 무료 전시
  • 집·가족·자연 주제 50여점 공개
  • 유일한 안식처 '심플'하게 표현

장욱진 ’가족도’(1972) [사진=현대화랑 제공]


지칠 때, 힘이 들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집'을 떠올린다. 슬픔과 힘듦을 말 없이 안아주는 집, 물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더 포근하다. 평소 별것 아닌 일로 자주 토닥거리기도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집과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현대화랑(서울 종로구)은 장욱진 화백(1917~1990)의 30주기를 기념해 오는 13일부터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 전(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이자 주제인 집·가족·자연을 주제로 그의 대표작 5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전시를 위해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과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후원하고, 일진그룹과 연미술이 협찬했다.

현대화랑과 장 화백의 인연은 퍽 깊다. 1978년 '장욱진 도화전'을 시작으로 1979년 '장욱진 화집 발간 기념전', 1999년 '장욱진의 색깔 있는 종이 그림', 2001년 장욱진 10주기 회고전 '해와 달 나무와 장욱진', 2004년 이달의 문화 인물 '장욱진', 그리고 2011년 '장욱진 20주기 기념전' 등 다양한 전시를 개최했다.

장욱진 ’가족’(1973) [사진=현대화랑 제공]


이번 30주기 기념전을 통해 장 화백은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겪는 현대인에게 포근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코로나는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집과 가족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일제 식민지·한국전쟁·산업화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장 화백에게도 집과 가족 그리고 자연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사각과 삼각형의 간결한 형태로 그려진 집은 전쟁 이후 황폐해진 환경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어 외곽 지역에서 산 장 화백의 작품과 집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경기 덕소·서울 명륜동·충북 수안보·용인 신갈 등 시대별 각 작업실을 기준으로 그의 작업 양상을 나눌 수 있다. 

가족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심적으로 물적으로 도와준 고마운 존재이자 그 자체로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나타낸다.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서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다"라는 장 화백의 말에는 사랑과 미안함이 함께 담겨 있다. 작가는 개인전을 결혼기념일이 있는 4월과, 부인의 생일이 있는 9월에 열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목가적 정취로 가득한 자연은 집과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평화의 장소이며, 작가의 도가적 세계관을 암시하는 곳이다.

장욱진 ’가로수’(1978) [사진=현대화랑 제공]


집과 가족, 자연은 나누어져 있는 것 같지만 하나로 연결돼 작품 속에서 함께 숨 쉰다.

"나는 심플하다"는 장 화백의 자기고백처럼 작품의 구성은 간결하다. 작가는 집 혹은 나무를 중심으로 해와 달,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좌우 대칭을 이루는 구도를 자주 사용했다. 작가가 작품에 자주 그린 제비 4마리도 좌우 날개처럼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마치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에는 작가의 순수함과 동시에 작가의 깊은 예술세계가 녹아 있다.

장 작가는 한없이 거대한 자연을 그릴 때도 특유의 원근과 비례를 이용해 단순화시켰다. 나무·비·달·바람 등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동물을 그릴 때에도 가족을 함께 그려 외롭지 않게 했다.

장 화백은 1976년 출간한 유일한 저서 <강가의 아틀리에>에서 자신을 '자연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스치는 여름 강바람 같은 것들이 나를 손색 없는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며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고 적었다.

장욱진 ’나무’(1983) [사진=현대화랑 제공]


작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작품이 더욱 가슴 깊숙이 다가온다. 1941년 이병도 박사의 맏딸 이순경씨와 결혼해 가정을 이룬 그는 6명의 자녀를 둔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1960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덕소에 작업실을 만들어 12년간 혼자 생활하며 오직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다. 그의 아내는 서점을 운영하며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도맡았다.

작품을 그릴 당시 작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알면,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덕소 작업실(1963~1975)에서 그린 작품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가장의 역할을 되찾고 가족과 지낸 명륜동 작업실(1975~1979)의 작품에는 가족의 이미지가 주변 환경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룬다. 1979년 작품인 '가족'을 보면 함께 모인 가족의 밝은 미소가 느껴진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장욱진 ’가족’(1979) [사진=현대화랑 제공]


수안보 작업실(1980~1985)에서 부인과 단둘이 지내며 심리적 안정을 찾은 그는 자연 친화적이며 도가적인 경향의 작품을 제작했고, 신갈 작업실(1986~1990)에서는 강한 색채와 장식적인 특징을 보이는 작품을 그렸다.

5년간 살았던 신갈은 장 화백의 마지막 작업실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평생 동안 그린 720여점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20여점을 남겼다.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라는 예술적 열망을 작품에 녹여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1년 작품인 '자화상'도 만날 수 있다.

현대화랑 관계자는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전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사는 모든 관객에게 집의 소중함과 가족을 향한 사랑, 깨끗하고 아름다운 동화적 세계를 다시 상상하는 특별한 시간을 제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전 예매를 하면 현대화랑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무료인 이번 전시는 오는 2월 28일까지 열린다.
 

장욱진 ’닭과 아이’(1990) [사진=현대화랑 제공]

장욱진 ’자화상’(1951) [사진=현대화랑 제공]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한중 문화교류 흔적 찾기 사진 공모전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실시간 인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페이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