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지상파 재송신 분쟁, 협력과 혁신으로 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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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
입력 2020-12-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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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방송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 간의 재송신 대가를 둘러싼 갈등은 오랜 시간을 끌어온 어려운 문제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IPTV사업자와 2018년까지 가입자당 재송신료(CPS)를 기준으로 계약했으나 2019년부터는 총액 대비 매년 8%씩 인상하여 2021년에는 가입자당 500원 수준이 되는 계약을 했다고 한다. 이 금액은 2018년에 타결된 가입자당 400원보다 25% 인상된 금액이며, 지상파 재송신료가 처음 결정된 2012년 가입자당 280원에 비하면 대폭 인상된 금액이다. 아직 계약이 마무리되지 않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도 유사한 수준으로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된 것인가?

지상파 재송신은 방송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충돌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지상파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 제작비용 보전을 위해서 적정한 저작권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유료방송사업자는 직접수신율이 낮은 지상파의 방송커버리지 확대에 기여하고 있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정부는 어떠한 경우라도 시청자들의 보편적 시청권은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일정부분 타당한 논리와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 관점에서 좀 더 시야를 확대해 보면, 방송콘텐츠를 제작해 공급하는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이러한 콘텐츠를 가입자까지 전달해주는 플랫폼인 유료방송사업자는 방송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의 가치사슬 내에서 협업을 수행하는 수평적 협력관계이다. 즉, 유료방송사업자는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킬러 콘텐츠인 지상파방송이 필요하고, 지상파방송사업자는 자사의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료방송사업자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가 공동으로 창출하는 방송콘텐츠의 가치는 최종고객인 가입자가 지불하는 이용료와 광고주들이 지불하는 광고금액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방송사업자들이 당면한 현실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특히, 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 지상파방송사업자는 심각한 수준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방송사업매출액은 2015년 3조2000억원이었으나 매년 평균 10% 이상 감소해 2019년에는 2조원으로 불과 5년 만에 매출액이 3분의1이나 감소하였다. 또한 지상파방송사업자의 방송매출액도 2015년 4조1000억원에서 2019년에는 3조5000억원으로 매년 평균 4%씩 감소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상파방송사업자의 광고매출액 감소이다. 지상파방송사업자의 광고매출액은 2015년 1조9000억원 수준이었으나 매년 평균 13%씩 감소해 2019년에는 1조1000억원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2020년에는 1조원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5년 만에 지상파 광고매출액이 절반으로 하락한 것이다. 비록 IPTV사업자의 매출은 성장하고 있지만, 이는 기존 종합유선방송가입자가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방송사업 매출 감소는 기존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 간의 협업체계로는 가입자들에게 더 이상 의미있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지상파방송사업자의 지속적인 광고매출액 하락은 지상파 콘텐츠가 진정 킬러 콘텐츠인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사업자가 국내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기존 유료방송사업자가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가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점차 방송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방송사업자들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방송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고 미래에 OTT가 방송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유료방송산업이 지속가능하도록 가치사슬을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 간의 기존 협력체계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단순히 방송콘텐츠를 제작하고 전달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서 데이터에 기반해서 사용자의 특성을 분석하고 공동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과 같은 혁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협력은 신뢰를 기반으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지상파 재송신 대가산정은 현재와 같이 지상파방송 사업자가 특정 금액 또는 인상률을 제시하고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방식 대신에 채널 시청률, 가입자 수, 가입자당 수익(ARPU), 매출액 등과 같은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한 성과지표를 통해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달성된 성과를 기여도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지상파 재송신료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방송시장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가입자들의 미디어 이용 행태는 TV에서 PC와 모바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미래에는 시청자들이 유료방송 플랫폼이 아니라 TV에 설치된 앱을 통해서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상파방송사업자들과 유료방송사업자들은 OTT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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