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우는 K-방산] 수천억 규모 노후 헬기 교체... 바로미터 소방 입찰 국산 '원천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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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희 기자
입력 2020-09-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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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2년 전북·광주 등 지역 소방본부 입찰 60% 국내 업체 ‘원천봉쇄’

  • 특정 업체 유리한 내용 필수조건... 법 위반 소지도

  • 정작 필수 장비는 선택 사항으로... “해외 기종 수리에 몇 달씩 걸리는 일도 다반사”

수천억 규모 혈세가 드는 정부의 노후 헬기 교체 작업이 시작부터 국산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올해 전북과 광주 등 각 지역 소방본부가 입찰 기준에서부터 아예 국내 업체가 참여조차 못 하도록 차단했기 때문이다. 기령 21년이 넘어 교체를 앞둔 수십대 규모의 각 관용헬기 입찰에 바로미터가 될 수 있어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2년 전북·광주 등 지역 소방본부 입찰 60% 국내 업체 ‘원천봉쇄’
2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각 지역 소방본부의 소방헬기 구매 입찰 5건 중 3건이 국내 업체의 참여를 원천 봉쇄했다.

소방청은 산림청(2020년 8월 기준 48대)에 이어 국내에서 가장 많은 헬기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소방헬기 31대 중 국산은 제주 소방본부가 보유한 1대뿐이다. 국산 헬기 개발 이전의 관습을 그대로 이어가며, 제대로 된 입찰도 없이 해외 업체들을 선정한 결과다.

실제 올해 입찰에 나선 전북과 광주 소방본부도 지난해 국산 업체의 참여를 선제적으로 차단했던 전남 소방본부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최대 항속거리(최대 적재량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 거리) 700km 이상, 주회적익 거리측정 장비 장착(비행 시 장애물 유무를 파악해 미리 경고하는 기능), 입찰 시 제한 형식증명 제출 등을 입찰 참여 필수조건으로 한 것이다.

국산헬기 수리온(KUH-1)의 입찰을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특정 업체를 배려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수리온은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2012년 합작으로 1조3000억을 들여 개발한 바 있다.

수리온의 680km보다 겨우 20km 긴 최대 항속거리부터가 그렇다. 그 차이의 의미도 없을뿐더러 한 번에 700km씩 운용해야 할 일이 국내에선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중앙 소방본부에서 지원한다.

의료 서비스가 집중된 서울에서 가장 먼 제주 소방본부가 2015년 수리온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방헬기로 채택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올해 먼저 입찰에 들어간 경남 소방본부와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도 최대 항속거리로 500km 수준을 입찰 조건으로 내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600km가 안 된다”며 “특히 장시간 운용하면 해당 요원들의 피로도 증가로 인한 위험이 커져 중간에 교체와 정비 후 이어 가는 게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업체 유리한 내용 필수조건... 법 위반 소지도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해외 특정업체의 기종에만 적용된 장비이기 때문이다. 이를 독자적 기술로 개발한 이탈리아 업체 레오나르도만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전남 소방본부는 이 업체의 AW-139를 소방헬기로 택했으며, 전남과 광주 소방본부 입찰에도 이 기종만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수리온은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를 지원하지 않지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한국형 3차원 전자지도’ 등 첨단 항공전자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는 선택의 문제일뿐 필수 요건이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악천후 속에서 구조 등을 주요 임무로 하는 소방헬기의 입찰에 맞지 않은 기준이 많은 것 같다”며 “특히 주회전익 거리측정 장착 등 부당하게 특정규격 또는 모델을 입찰에 부치는 경우 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기 등의 설계가 항공기 기술 기준에 적합한 경우 발급되는 형식증명도 필수조건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이를 대신할 수 있는 특별감항인증 등이 있는데 한 가지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다. 방위사업청의 형식증명을 받은 수리온은 국토부의 특별감항인증을 받아 소방헬기 등으로 운용이 가능하다.

KAI 관계자는 “형식증명도 받을 수 있으나, 물리적 시간이 소요돼 입찰 전까지 이를 완료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제주 소방본부 입찰 때도 특별감항증명으로 요건을 충족시켜 무사히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작 필수 장비는 선택 사항으로... “해외 기종 수리에 몇 달씩 걸리는 일도 다반사”
이 와중에 전북·광주 소방본부는 정작 필수 장비를 선택 사항으로 포함했다. 불 진화 및 예방에 사용하는 물탱크, 기상 악화 시 사용하는 기상레이더, 응급의료장비, 결빙방지장치, 위성전화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앞서 중앙119 입찰에서는 이들 장비를 필수조건으로 내세웠다.

사업의 특성상 유지·보수 비용도 중요한데 외산의 경우 더 많은 세금을 필요로 한다.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지난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남 소방본부가 구매한 AW-139의 5년(2016~2020년)간 평균 검사 비용이 1대당 4억4565만 원인 반면 수리온은 1억6489만 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종의 경우 비용도 비용이지만, 즉시 고치기가 어려운 실제 운용하는 데 애로가 많다”며 “수리하는 데 몇 달씩 걸리는 일도 다반사니 현장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헬기 '수리온'.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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