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BTS와 트로트 열풍, 글로벌과 로컬 사이의 긴장과 공존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입력 2020-09-23 10: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노창희 실장]

2020년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라는 재난으로 기억되겠지만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도 기억될 만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했고,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해이기 때문이다. 2020년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다가도 이 두 가지 사실을 떠올리며 2020년을 의미 있는 한 해로 기억하게 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문화적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콘텐츠 산업에서 위와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스크린쿼터제를 지키기 위해 영화인들이 투쟁을 벌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콘텐츠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최근 글로벌 사업자들이 국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글로벌’이라는 것이 지향하는 것과 ‘로컬’이 지향하는 것의 차이가 모호해지면서 미묘한 문화적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만큼 1등에 집착하는 나라도 찾기 힘들겠지만 전 국민이 방탄소년단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글로벌화를 상징한다면, 내수시장에서는 트로트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서 트로트의 원산지는 어디인지, 과연 대한민국적인 문화가 맞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트로트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떠나 트로트가 수십년간 한국적으로 수용되어 왔고 그것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한국어로 노래를 만들어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다이너마이트’는 영어로 만들어졌다. 방탄소년단이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지만 방탄소년단이 영어로 된 가사로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도 있다. 콘텐츠도 산업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보다 넓은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콘텐츠는 문화산업이고, 문화산업에서 국적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콘텐츠 제작에 있어 글로벌을 지향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국내 이용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글로벌과 로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 상업적으로 실패하거나 미학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만큼 글로벌과 로컬은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고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로컬과 글로벌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규탁은 <갈등하는 케이, 팝>에서 ‘케이’와 ‘팝’이라는 두 가지 용어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본질적으로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케이는 로컬을 지향하는 반면, 팝은 글로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갈등하는 케이, 팝>에서는 국내 뮤지션들이 글로벌 전략을 펼칠 경우 국내 팬들이 반발하게 된다는 것을 로컬과 글로벌이 갖는 긴장의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로컬을 지향하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이용자들과 글로벌을 지향하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문화적 취향집단이 나눠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 트로트 열풍으로 돌아와 보자. 트로트 열풍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는 주장 중 가장 많은 것은 비슷한 형식의 트로트 프로그램이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산업은 리스크가 큰 산업이다. 그런 만큼 많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형식으로 위험을 줄여나가면서 효율적인 투자를 해 나가는 것에 대해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특정한 유형의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쏟아지게 되면 그만큼 그것에 쉽게 질리거나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혹은 비슷한 유형의 콘텐츠나 장르를 제공하더라도 유의미한 ‘차이와 반복’이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과 로컬 얘기를 하면서 특정 유형의 콘텐츠로 제작이 편중되는 현상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그만큼 ‘다양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플랫폼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9월에 리뉴얼한 카카오TV는 새로운 쇼트폼 형식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며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플랫폼과 그 플랫폼을 채우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볼 게 없다는 이용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물리적으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경험을 나에게 제공해주는 콘텐츠와 서비스가 필요하다.

여전히 세대 간의 취향 차이는 콘텐츠 소비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지만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장년층이 늘어나는 반면 트로트에 관심을 갖는 10, 20대도 늘어나고 있다. 이용자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 향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화된 미디어 소비 환경에서 다양성이 갖는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을 지향하는 한국산 콘텐츠와 플랫폼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과 로컬 사이의 긴장은 피하기 어렵다. 글로벌을 지향하더라도 국내 이용자를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이냐 로컬이냐 논쟁은 피하기 어렵겠지만 생산적인 문화적 변용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202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한국적인 것과 글로벌적인 것 그리고 그 경계에 있는 것들이 서로 공존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로컬과 글로벌의 긴장과 공존을 예의주시해서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