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지만, 즐겁진 않아", 연예계의 고질병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우한재 기자입력 : 2020-09-15 16:44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꽤 오래전 통계지만, 2003년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직장인 9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에 달하는 직장인들이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굳이 옛날 통계를 거론하는 이유는 지금이라고 저때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일본 쇼인여대(樟蔭女大)의 나쓰메 마코토(夏目誠) 교수가 처음으로 사용한 심리학적 의학 용어로, 서비스업이나 연예인 등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우 업무 특성상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자신의 고용 상태(또는 인기)를 지속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실제 감정과 무관하게 언제나 밝게 웃고 있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

특히 인기와 명성에 대한 불안감이 늘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연예계에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처럼 존재해 왔다. 실제로 과거 한 방송에서는 개그맨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80%(24명)의 개그맨이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보도도 나온 적이 있다.

이미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연예인 대표 직업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정신적 압박에 의한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연예인들의 마지막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밝게 웃는 얼굴'인 경우가 적지 않다.

90년대 연예계 최정상급 스타였던 배우 최진실은 작고하기 전까지 각종 악성 루머로 인해 정신적 압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어딜 가든 '최고의 대우'를 받던 그는 생전 한 프로그램에서 "신인 시절부터 늘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기 때문에 인기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한 정신적 불안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유쾌하고 활달한 캐릭터로 사랑받던 탤런트 박원숙 역시 지난 2003년 외아들을 잃고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박원숙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대본이 외우질 못하거나,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체중이 급증하는 등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보이그룹 '샤이니'의 메인 보컬 종현은 자신의 콘서트를 마치고 8일 후인 2017년 18일 오후 6시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의 한 레지던스 오피스텔에서 쓰러진 채 발견,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후 유서가 공개되면서 종현의 사인이 극단적 선택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자 팬들은 다시 한번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소속사였던 SM에서도 독보적인 보컬 실력을 자랑하는 한류 스타로서 오랜 시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그였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지난해 6월에는 배우 전미선이 전북 전주의 한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안정된 연기력을 보이던 전미선은 영화 '나랏말싸미'에 소헌왕후 역으로 캐스팅 됐다. 하지만 개봉을 앞두고 평소 앓던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어 지난 10월 14일에는 에프엑스(f(x)) 출신 배우 설리가, 11월 24일에는 카라 출신 구하라가 잇따라 하늘의 별이 되었다. 구하라는 그 해 5월 이미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회복하는 등 심상치 않은 전조 증세를 보였다. 이후 평소 친밀하게 지내던 설리가 돌연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베르테르 효과'를 걱정하던 팬들에게 '괜찮다'며 안심시키던 구하라 역시 얼마 뒤 같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국내 정상급 걸그룹 멤버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언제나 환하게 웃던 그들은 한편에선 연인, 가족 문제 등으로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으며, 연예계 생활 내내 지속적인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배우 오인혜가 인천 송도의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불과 이틀 전까지 개인 유튜브 활동을 통해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병원 이송 후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통해 일시적으로 호흡과 맥박이 돌아왔지만, 결국 오인혜는 눈을 뜨지 못하고 15일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고 말았다. '시상식 드레스'로 화제가 된 이후 연기자로서의 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겼고, 의욕만큼의 무대를 부여받지 못해 우울감에 빠진 적이 있다던 고백이 불과 한 달 전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故 배우 오인혜 씨의 빈소가 15일 인천 중구 신흥동 인하대학교부속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우울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이 '죽음'뿐인 사회가 된다면 연예계와 비 연예계를 나누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과연 하루에 스마트폰으로 쓴 'ㅋ'의 개수만큼 우리가 소리내어 웃은 날이 얼마나 될까.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실상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모, 재력, 인기를 다 가졌지만 정작 '자신을 향한 사랑'을 가질 수 없었던 그들의 선택을 섣불리 책망하거나 저울질하는 '불행의 타자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저마다의 가슴에 분노가 가득하고, 우울이 공기처럼 퍼져있는 시대다. 세상을 떠난 그들에게 필요했던. 아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 명의 주치의보다 한 명의 '내 사람'일지도 모른다. 유명한 인디언 속담으로 기사를 갈무리하려 한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이를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주요 증상으로는 면역체계와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감기·생리불순·불면증·두통·근육통·소화불량 등이 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겪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치료법으로는 상대방을 믿고 감정 표현하기, 신경정신과 상담 등이 유용하다.
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코로나19 재난구호 후원하기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