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론어젠다] 랜선은 살고 라떼는 죽는다, '마음 뉴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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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합디자인학과 교수 수
입력 2020-09-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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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 교수]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전 인류적 팬데믹 쇼크는 문명의 흐름을 바꾼다. 유럽을 덮쳤던 페스트는 인구의 25%를 앗아갔지만 동시에 중세시대의 암흑기도 함께 걷어가 버렸다. 신만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던 교황과 교회는 무능함이 증명되었고, 인류는 억눌렸던 사상의 자유를 폭발시키며 르네상스 시대를 새로이 열었다. 동시에 세계 권력의 판도도 급격한 이동을 일으켰다. 그 이후 서구열강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꽃피우며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이어진 1,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 사회의 절대권력이자 선도 국가들이 되었다. 신문명을 담아낼 수 없었던 아시아의 절대 맹주 중국은 100년을 굴욕 속에 보내야 했고 변방의 섬나라 일본은 혁명의 날개를 타고 승천하는 기회를 잡았다. 반면 혁명의 시기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우리 조선은 망해 36년간 나라를 잃고 엄청난 피를 흘려야 했으며 그 고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역병과 혁명은 인류의 운명을 바꾼다. 역사가 입증했듯이 이번 코로나도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슬기로운 생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번 팬데믹 쇼크는 강제로 인류를 디지털 문명으로 몰아넣고 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코로나의 위협을 피해갈 무기가 많다. 코로나 맵이라는 걸 통해 확진자 위치도 확인할 수 있고, 집콕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스마트폰으로 주문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확산 초기에 사재기나 생필품 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도 디지털 소비가 워낙 잘 정착되어 있어서 사회적 공포감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 큰 이유라고 분석되었다. 반면 스마트폰 기반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던 사람들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 기존 방식대로 살아가기에는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뱅킹도, 온라인 쇼핑도, 온라인 회의도 모두 불필요하다고 믿던 사람들도 언택트를 지향하는 디지털 문명으로 급속하게 밀려들었다. 실제로 50대 이상은 사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매우 저항적이었다. 2018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대의 49%, 60대의 82%, 70대의 93%가 모바일 뱅킹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반면 20~40대의 응답자는 거의 80%가 사용한다고 대답했고, 전체 평균은 63.5%로 나타났다. 단적으로 우리 사회 기성세대가 얼마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무관심했는가를 보여주는 데이터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이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구인 생존에 대한 본능이 이들을 디지털 문명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뿐 아니라 온라인 쇼핑도 급증했으며 유튜브, 넷플릭스 유료가입자도 급증했다.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인류는 바야흐로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신인류) 시대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이에 따라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창조기업으로 불리는 기업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마트폰 창조기업 애플의 시가총액은 사상 최초로 1조 달러를 넘은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2조 달러를 돌파했다. 애플을 비롯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 5대 플랫폼 기업들은 순서대로 세계 1~5위 기업이 되었고 이들의 시가총액 합계는 8726조원에 달한다(2020년 9월 4일 기준). 여기에 6, 7위인 중국의 플랫폼 기업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합치면 시총합계는 1경378조원에 이른다. 코로나 이전인 올해 1월 1일 이들 7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6880조원이었다. 이것도 엄청난 금액이라고 했는데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의 거대 자본이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우리 기업들이,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포노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문명에 대해 이해하고 또 적응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최근 스무살의 홍준서라는 대학생이 실시간으로 확진자의 수와 발생지역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개발해 하루 190만명이 방문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호주에서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복무를 위해 귀국한 이 청년은 재미 삼아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했다. 아이디어의 출발은 전 국민에게 지역별로 발송되는 재난문자였다. 확진자가 나오면 실시간으로 지역별로 발송되는 이 문자를 프로그램이 읽어내면 전국 지역별로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자동으로 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짧은 기간에 완성한 것이다. 확진자 위치와 동선을 스마트폰의 지도 기반으로 쉽게 알려주는 ‘코로나 맵’을 개발한 것도 26살 대학생 이동현군이었는데 어느 새 또 다른 아이디어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 정부, 기성세대의 생각이 여전히 ‘보도자료’에 머물고 있는 사이, 우리의 20대 포노 사피엔스들은 스스로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짧은 기간 내에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소셜 네트워크에 가득한 지식창고를 통해 학습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더 기특한 것은 돈이 되지 않는데도 우리 사회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키울 수 있는 일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지식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문화, 사회봉사를 중시하는 문화는 모두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창조한 세계 5대 플랫폼 기업들이 세운 인재 선발 기준이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서도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은 선전 중이다. 유튜브로 데뷔하고 SNS로 팬덤을 확보한 BTS가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작은 벤처 스마트스터디가 만든 뮤직비디오 베이비샤크가 63억뷰를 달성하며 유튜브 역대 2위를 기록하고, 넷플릭스에서는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가 압도적 아시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장에 엄청난 자본이 몰리는 이유다. 문제는 달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해 디지털 문명을 폄하하며 ‘라떼는 말이야’로 구문명을 지키려는 우리 사회, 우리기업들의 근시안적이고 쇄국적인 시각이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은 소비자가 절대 권력을 가진 새로운 사회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유튜버들이 방송국의 권력을 대체하고, 선택 받은 온라인 쇼핑몰이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대체하고, 선택받은 플랫폼들이 모든 소비생태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코로나는 이러한 문명 교체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지난 7월에만 온라인 쇼핑 금액이 13조원을 넘었고 전체 소매 소비의 26.6%를 차지했다. 특히 음식배달과 신선식품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모든 패션기업들이 상반기 매출 부진을 겪은 반면 포노 사피엔스 고객에 집중한 무신사는 홀로 200%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모든 데이터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로의 문명 전환이 생존의 길이라고 한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 새로운 문명 창조에 필요한 인재는 어떤 인재일까? 지금처럼 수능기계로 키워야 할까, 아니면 디지털 신문명의 인재로 키워야 할까? 기업은 또 어떻게 변신해야 할까? 앞으로 나의 일자리는? 무엇보다 지금 가장 고통받는 영세 사업자나 식당들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이 고통스런 코로나가 반복된다면 생존의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옷가게는 임대료를 줄이고 온라인 쇼핑몰을 준비해야 하고 작은 식당 창업도 공용주방 기반의 배달전문점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한 지원 인프라의 구축과 정책 수립도 필수적이다. 똘똘 뭉쳐 국난 극복을 취미로 하는 대한민국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려면 교육부터 기업 육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나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시대 문명에 내 마음부터 맞춰야 미래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혁명시대를 맞아 코리안 뉴딜 정책을 수립하느라 분주하다. 돈 쓰는 게 먼저가 아니다. 우리 사회, 우리 마음의 표준을 바꾸는 뉴딜이 먼저다. 역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때 엄청난 도약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의 표준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길일수록 함께 가야 멀리 간다. 대한민국,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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