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세포를 없애면 젊어질 수 있다? 제로제(除老劑)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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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0-09-0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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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32)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 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 투더 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서양이나 동양이나 의술의 원천은 질병치료에 있다. 질병의 원인을 귀신의 작란(作亂)으로 보는 경우 주술적 치료방법이 성행하였고, 생체의 기능을 주재하는 기(氣)와 정(精)이 문제가 되어 질병이 된다고 보는 경우에는 기를 보완하거나 정의 균형을 유도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보신의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이론으로 질병의 원리를 설명하였고, 서양에서도 우주를 구성하는 4가지 원소의 작용과 생체를 구성하는 체액질의 변형으로 질병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급기야는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연금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근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질병 발생 원인이 미생물 병원체라고 밝혀진 사건은 의료 발전의 획기적 전환을 이루었다. 모든 질병에 대하여 해당하는 병원체를 찾으려는 노력이 학계의 가장 큰 당면 목표였고, 그 결과 수많은 병원체들이 차례로 밝혀지면서 박테리아, 리케치아, 바이러스 등 여러 가지가 알려지게 되었다. 병원성 미생물의 발견은 질병을 치료하는 핵심방안으로 병원체를 박멸하기 위한 대책이 등장하게 하였다. 일차적으로는 병원체와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소독과 정화라는 위생 개념이 부각되었고, 이차적으로는 병원성 미생물을 박멸하는 항생제의 개발을 통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성 미생물 제거 방안은 효과가 명확하여 서양의학이 전 세계 의학의 주류로 자리잡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바로 질병치료에서 원인을 제거하는 근치 요법의 효시가 된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 박멸 방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질환들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미개발 또는 개발 도상국에서는 병원성 미생물에 의한 전염성 질환이 수명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인 반면, 선진문명사회에서 수명에 문제가 되는 질환은 암이다. 인체에 초래되는 각종 암은 아직도 발암 원인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원인 제거를 기본으로 하는 의료기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에서 암종괴를 제거하기 위한 수술적 방법이나 암조직을 파괴하는 방사선치료가 개발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또한 약물학적 방법으로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사멸하도록 유도하는 항암제가 등장하여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암 발생 원인을 제거할 수 없어도 체내에 깃들어 있는 암세포나 암괴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의 개발은, 비록 원인은 몰라도 질병치료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이루었다. 그런데 세포를 직접 표적하여 치료하는 방법이 인간의 노화를 해결하고 수명을 연장하는데도 활용될 수 있다는 착상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네소타대학의 커크우드 박사는 노화된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인 제로제(除老劑, senolytics)라는 개념을 제안하여 돌풍을 일으켰다. 우선 노화에 따라 개체에서 발현하는 대표적 유전자 중 하나인 P16 유전자가 과발현된 세포만을 특이적으로 사멸시키는 방안을 개발하여 동물에게 적용한 결과, 늙은 개체의 활동성이 증가하고 외모가 젊게 변했다고 보고하였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죽이는 방법이 암을 치료하는 핵심 방안이듯이, 노화된 개체에서 늙은 세포들을 선택적으로 제거하여 노화를 해결하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은 일단 논리적으로 단순 명료할 뿐 아니라 효과의 평가가 확실하기 때문에 이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암과 마찬가지로 노화의 경우도 원인과 발생 기전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그동안 적절한 노화 제어 방안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노화를 제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은 획기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종래에는 노화된 세포는 세포사멸 저항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노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개념이 팽배해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면모를 가진 노화세포의 선택적 사멸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차였는데, 커크우드 박사는 노화 유전자를 표적하여 동물실험에서 가시적 결과를 얻은 다음에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스크리닝하여 노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사멸을 유도하는 물질들을 검색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기본전략은 노화세포의 세포사멸 저항성을 와해하는 물질을 우선 스크리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포를 효율적으로 사멸시킬 수 있는 약제를 병용하는 노력을 추가하였다. 그 결과 퀘르세틴(Quercetin)과 다사티닙(Dasatinip)의 조합이 실질적으로 동물의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를 발견하였다. 퀘르세틴은 케이퍼·홍당무·케일·배추 등과 같은 채소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다사티닙은 백혈병치료제로 이미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항암제이다. 그는 노화 세포를 주입하면 개체가 늙어져 간다는 사실도 밝혀 노화의 원인이 체내에 축적된 노화세포 때문임을 적시하였다. 따라서 노화를 해결하려면 노화 세포를 제거하여야 하며, 늙은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칵테일 약제 조합의 처치가 늙은 동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활동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후 이 분야 연구가 활성화되어 여러 가지 새로운 조합의 약제에 의한 노화제어 연구가 봇물 터지듯이 차례로 보고되고 있다. 적어도 선택적으로 노화 세포를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전망을 밝게 하고 있지만 항암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약제의 부작용 우려뿐 아니라 늙은 세포들만 선택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젊은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포의 무한 공급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젊은 세포의 지속적 공급원으로는 각 조직에 스며들어 있는 성체줄기세포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이들 성체줄기세포의 기능과 역할의 한계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또한 노화 세포를 지속적으로 제거하여야 하는 경우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약제의 안전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용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요원하다고 보며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노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화세포들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생체를 유지하기 위해 늙은 세포를 없앤다는 방법은 현실화의 여부에 앞서 미래사회에 대한 착잡한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이 최근에 벌어지는 코로나 사태에서 노인층의 치사율이 젊은 층의 100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고령사회에 대한 중요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노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장수하려면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할까 새롭게 숙고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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