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허물어져도 돈 쓸어담은 월가 은행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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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20-09-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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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준 지원에 기업들 채권 발행 봇물...은행들 상반기 수수료 수익 8년래 최고

[사진=AP·연합뉴스]


미국 경제가 유례없는 침체에 빠졌지만 미국 금융 중심지 월가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해 기업들의 채권 발행에 봇물이 터지면서 월가 은행들의 거래 수수료 수입이 껑충 뛰었다.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와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업계 리서치업체 콜리션의 자료를 인용해 3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글로벌 12대 투자은행들의 올해 상반기 사업 수익은 1016억달러(약 121조원)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 증가했다. 지난 수년 동안 횡보 내지 하강하던 추세에서 돌아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기업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잇따라 채권 발행에 뛰어들었고 연준이 천문학적인 돈풀기로 이를 뒷받침한 데 배경이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연준은 코로나19 후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0~0.25%)까지 파격 인하하고 신용등급이 투기 등급으로 떨어진 '추락천사' 회사채까지 직접 매입하는 등 유례없는 부양 대책을 쏟아냈다. 기업들은 가까스로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을 피했고 그 사이 월가는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들의 채권 발행액은 72% 폭증했다. 두둑한 현금 방석을 깔고 앉은 애플마저 회사채 발행에 나설 정도였다. 펩시콜라, 월트디즈니, 버라이즌 등이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먼저 나섰고 이후 투자등급이 낮은 기업들도 채권 발행 물결에 동참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토마스 쉬한 투자은행 부문 공동 대표는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배운 게 있다. 될 수 있는 한 신속하고 방대하게 재무재표 요새를 쌓아올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 자금이 홍수를 이루고 미국 국채 대비 회사채 수익률 격차가 안정을 찾으면서 투자자들은 미국 회사채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기록도 속출했다. 자동차회사 포드는 채권 발행으로 80억달러를 조달해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 채권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0.45% 금리로 5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채권 발행과 거래를 중개한 월가 은행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콜리션에 따르면 대형 은행들이 채권과 금리 연동 상품을 포함한 고정자산 거래로 올린 수익은 올해 상반기 546억달러를 기록, 전년 대비 59% 급증했다.

스톤엑스그룹의 유제프 아바시 전략가는 "연준은 시스템 안에 버블을 만들었고 실물 경제가 허물어지는 동안에도 버블 속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경제와 시장의 괴리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와 시장의 괴리는 주식 시장에서도 두드러진다. 뉴욕증시의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간밤 기술주 주도로 급락세를 보이긴 했지만 최근 연달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여전히 천만명 넘는 미국인들이 실직 상태에 빠져있고 언제 직장에 복귀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과 대비 되는 대목이다. 

다만 밀레니얼 세대의 증시 유입에도 불구하고 월가 은행들이 올해 상반기 주식 중개 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익은 225억달러로 5년 평균치에 머물렀다. 은행들의 큰 손 고객인 헤지펀드들이 수익을 보전하고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 헤지펀드 고객들의 올해 2분기 자산 규모는 1분기에 비해 15% 감소했다고 WSJ은 전했다.

인수·합병(M&A) 거래도 올해 상반기 은행 수익에 크게 기여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피니티브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몸을 사리면서 올해 2분기 세계 M&A 거래액은 4850억달러에 그쳐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났고, 같은 기간 미국 거래액은 90%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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