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마오타이냐 립턴이냐"…갈림길 선 중국차(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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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0-08-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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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립턴 30년 집권 흔들, 지각변동 예고

  • 51조원 시장, 7만여개 군소업체 각축

  • 사업구조 영세, 증시에서도 찬밥 신세

  • 립턴식 공업화 VS 마오타이식 고급화

1000년 전 송나라 때부터 중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7가지 필수품(開門七件事)으로 꼽는 게 있다.

땔감(柴)·쌀(米)·기름(油)·소금(鹽)·간장(醬)·식초(醋), 그리고 차(茶)다. 중국인들에게 차는 기호품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재화다.

룽징(龍井), 톄관인(鐵觀音), 푸얼(普洱), 비뤄춘(碧螺春) 등 품종·지역별 명차도 수두룩하다.

최소 2200년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한 중국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파는 기업은 13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다국적 기업 립턴(Lipton)이다.

홍차 티백으로 유명한 립턴이 제공하는 편리하고 값싼 제품에 중국은 시장의 40% 이상을 내줬다. 나머지 파이를 놓고 7만여개 군소 업체들이 치열하게 다투다 보니 선도 기업이 출현하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에는 밀크티 프랜차이즈가 차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면서 전통차 산업은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두 가지 해법이 제시된다. 제조 과정을 표준화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느냐, 고급화 전략을 극대화해 부가가치를 높이느냐.

제2의 립턴이 될지, 아니면 국주(國酒) 반열에 오른 마오타이의 길을 따를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물론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열악한 구조의 중국 차 생산업체들에게는 둘 다 어려운 과제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커피와 탄산음료 공세에도 중국 차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중국인들은 여전히 찻잔을 곁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


◆립턴 30년 천하, 이어질까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 글로벌 기업인 유니레버의 자회사 립턴은 1898년 설립된 차 전문 기업으로 세계 점유율 1위다.

립턴은 한·중 수교가 이뤄진 해인 1992년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찻잎이 든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둥둥 떠다니는 잎을 후후 불며 우러난 찻물을 마시는 데 익숙하던 중국인의 눈에 립턴이 갖고 들어온 티백은 파격이었다.

개혁·개방의 성과로 수입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 립턴은 편리한 디자인과 친서민적인 가격, 외국 브랜드라는 희소성을 앞세워 중국 시장을 석권했다.

월마트와 까르푸 등 글로벌 기업이 중국에서 할인마트 붐을 일으킨 것과 궤를 같이한다.

시장 진출 5년 만에 티백 시장에서 매출과 점유율 1위를 달성했고, 여세를 몰아 2005년 5000만 위안을 투자해 안후이성 허페이에 세계 최대 규모의 차 생산 공장을 지었다. 원가가 크게 낮아져 본격적인 규모의 경제에 나설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에는 전체 차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그해 립턴은 230억 위안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립턴을 제외한 중국 내 모든 차 생산업체의 매출 총액이 300억 위안이었다.

이 같은 시장 구조는 201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다가 일본 차 음료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립턴의 점유율은 다소 낮아져 20~25% 안팎을 기록 중이다.

립턴의 위기는 중국 밖에서 왔다. 모기업 유니레버가 글로벌 수요 부진 등을 이유로 차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니레버는 올 상반기 보고서를 통해 인도와 인도네시아 지역, 다른 기업과의 합작을 제외한 모든 차 사업을 그룹에서 떼내어 독립 운영한다고 밝혔다.

유니레버가 차 사업에서 거둔 매출 20억 유로의 3분의 2를 책임지던 립턴은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유니레버 측은 "영국과 유럽 등 성숙 시장에서 주력 제품인 홍차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립턴이 매각되면 중국 사업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유니레버가 그대로 안고 가더라도 추가 투자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관련 업계가 립턴의 매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전통차 기업 증시 찬밥, 반전할까

최근 2곳의 차 생산업체가 A주(상하이·선전 증시) 상장에 도전 중이다.

상하이거래소에 상장 신청을 한 중국차주식유한회사(중국차)는 업계 유일의 중앙 국유기업이다.

중국의 음료 대기업인 농푸산촨(農夫山川)과 퉁이(統一)에 원재료를 공급한다. 중국차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은 중국 최대의 식량·식품 국유기업인 중량(中糧)그룹이 쥐고 있다.

실적도 호조세다. 2017~2019년 매출은 12억2900만 위안, 14억9000만 위안, 16억2800만 위안 등으로 계속 늘고 있다. 같은 기간 세전 순이익은 1억7400만 위안, 1억4500만 위안, 1억66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500대 기업인 중량그룹의 지원을 받는다는 게 최대 강점"이라며 "대형 거래선을 확보해 수익 구조도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선전거래소 상장을 추진하는 란창구차(瀾滄古茶)는 중국의 대표적인 차 재배 지역 윈난성 소재의 민영 기업이다. 품종 개량 등을 위한 연구개발(R&D)과 생산, 판매 조직을 모두 갖춘 일체화가 특징이다.

5대 주주 가운데 3명은 개인이고, 나머지 2곳은 광저우와 선전에 본사를 둔 민영 기업이다.

눈에 띄는 건 최근 3년간 매출액 대비 총이익의 비율인 총이익률이 60%를 상회한다는 점이다. 2017년 65.59%, 2018년 64.0%, 2019년 61.89% 등이다.

총이익률이 높다는 건 원가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의미다. 업종별 편차는 있지만 일반 제조업의 경우 총이익률 10% 이상이면 선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중국 전통차 기업은 상장 문턱을 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전무하다. 중국차나 란창구차가 상장에 성공한다면 새 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외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명차 브랜드 안시 톄관인(安溪 鐵觀音)을 비롯해 바마차예(八馬茶業), 샹펑(湘豊) 등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A주 상장을 노렸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홍콩으로 범위를 넓혀도 상장사는 대만 기업인 톈푸밍차(天福茗茶) 정도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장외거래시장인 신삼판(新三板)에 몇몇 기업이 상장돼 있지만 비인기 종목이다. 바마차예 등은 실적 부진 등으로 상장 폐지되기도 했다.

증시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다보니 생산 확대와 판로 개척, 마케팅 강화를 위한 자금 유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


◆51조원 시장 놓고 각축, 선택의 기로

중국의 차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차 생산량은 2015년 228만t에서 지난해 279만t으로 22.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차 소비액은 1869억 위안에서 2739억 위안으로 46.5% 급증했다. 올해는 3000억 위안(약 51조35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지는 배경으로 밀크티와 허브차, 과일차 등 신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가 거론된다.

차 재배에 종사하는 8000만명의 농민과 7만여개 생산업체의 상황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차를 정제·가공할 자동화 라인을 갖춘 업체는 2000곳도 안 된다.

베이징 둥청구에서 전통차 전문점을 운영하는 궈페이(郭飛)씨는 "외국계를 제외한 중국 차 기업 중 상위 100개 업체의 점유율 합계가 5% 미만일 정도로 사업 규모가 영세하다"며 "업체별 판매량도 고만고만하고, 차 전문점의 분위기나 인테리어 등도 다 엇비슷해 차별화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류지헝(劉紀恒) 안시 톄관인 회장은 2012년 상장에 실패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차 기업들의 상장이 어려운 이유는 공업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이 강해질 수도, 자본의 관심을 끌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재배·생산·가공 과정을 표준화하고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춰 시장을 공략하는 립턴식 발전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반면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세대의 젊은 최고경영자(CEO) 쑨(孫)씨는 중국신문주간에 "중국 차의 문제는 시후 룽징(西湖 龍井), 신양 마오젠(信陽 毛尖), 황산 마오펑(黃山 毛峰)처럼 브랜드가 아니라 생산지가 더 강조된다는 것"이라며 고품질의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중국 차는 품질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표준화와 균일화가 매우 어렵다"며 중국인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진 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개발·판매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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