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범인이? 화성사건 재심에서 나온 무서운 수사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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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기자
입력 2020-08-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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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당시 경찰의 수사방식이라면 누구라도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정황이 나왔다. 수사는 주먹구구식이었고, 불법행위가 난무했으며 증거는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일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 사건 재심 4차 공판에서 화성 8차 사건 담당 형사였던 심모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과정을 종합하면 그 당시 누구라도 범인이 될 수 있었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심씨는 재심청구인 윤성여씨를 용의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여자들을 희롱한다는 첩보에 따라 용의자로 봤다”고 말했다.

또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에서 나트륨과 염소가 다소 많이 발견됐는데 한 보건대학의 교수에 따르면 잘 씻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를 근거로 윤씨를 유력 용의자로 봤다. 나트륨과 염소를 합치면 소금(염화나트륨)이 된다.

이 보건대학의 교수는 윤씨를 폭행해 거짓으로 자백을 받은 의혹이 있는 최모 형사(사망)의 은사로 알고 있다고 심씨는 진술했다.

이런 이유들로 경찰은 윤씨를 감시하다가 지난 1989년 7월25일 임의 동행해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경찰은 윤씨를 왜 연행해 가는지에 대해 정확한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등의 '미란다 원칙‘과 임의동행이라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 등을 고지하지 않았다.

또한 윤씨를 범인으로 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음모도 불법으로 수집됐다. 당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지 못하며 지역의 경찰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섰다. 범행지역 근처의 고등학생이상의 남성들은 여러 차례 음모를 채취당해야 했다. 윤씨도 여러 차례 음모를 채취당했다고 진술했다.

심씨는 “당연히 음모채취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라며 “영장은 제출하지 않았고 제출하지 않을 시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심씨는 “당시에는 현장 음모에 대한 국과수의 방사성동위원소 감정 결과가 있어서 윤씨를 범인이라고 100% 확신했다”며 이런 확신 때문에 윤씨가 장애인이라 범행이 어렵다는 등 다른 상황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감정결과도 조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날 재판에서 변호인 측은 음모를 비교한 감정결과서를 3개를 제시했다. 각각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용의자들의 음모를 비교한 것으로 가장 나중에 나온 감정결과서가 윤씨의 음모를 비교한 것이다. 윤씨의 음모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의 성분수치는 비슷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교대상이 돼야할 현장 음모의 성분 수치가 1·2차에는 서로 비슷했지만 마지막 감정결과서에서만 크게 달랐다. 앞서 재심사건을 조사 중인 검찰도 윤씨의 음모를 범인의 것으로 조작한 것으로 판단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심씨는 “감정결과서를 보지 못했으며 윗사람이 수치가 똑같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심씨는 윤씨의 말은 듣지 않고 감정결과서 등 자료와 수사보고, 최씨(사망)가 받은 진술서로만 미리 조서를 작성했다.

이에 윤씨 측 변호인은 심씨가 작성한 조서에는 “범행을 더 늦게 들키고자 피해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왔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다”며 “심씨는 아주 능력있는 엘리트로 주위에서 여겨졌다. 조서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적은 조서로 판사까지 완벽히 속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심씨는 사흘간 잠을 재우지 않고 윤씨를 조사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이어 “자신의 후배인 최씨가 윤씨를 폭행했단 사실도 들었다”고 말했는데 “70~80년대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자백을 받기위해 때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폭행 등으로 인해 거짓자백을 했고, 글을 읽고 쓰지 못했는데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진술서를 받아썼다고 말했다. 윤씨가 자필로 쓴 당시 진술서에는 ‘지술인’으로 적혀있는 등 의미를 알지 못하고 썼다는 정황이 나온다.

또 당시 이뤄진 현장검증에서는 장애를 앓아 다리를 저는 윤씨가 높은 담을 넘을 수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발생했다. 박모(당시 13세) 양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과거 이 사건 진범으로 몰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씨는 이후 감형돼 수감 20년만인 2009년 8월 출소했다.
 

재심을 청구한 윤성여씨[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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