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1000조 시대'…관련법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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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웅 기자
입력 2020-08-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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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시장법으로 관리…수탁재산 7종 제한

  • 낡은 규제에 새로운 신탁상품 개발 불가능

  • 시장 수요 충족 못해…"신탁업법 제정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신탁시장이 '1000조원 시대'를 열었지만, 다양해지는 시장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금융투자시장 관리를 위해 제정한 자본시장법으로 관리하고 있어서다. 신탁이 금융투자보다 '종합자산관리 수단'이라는 성격이 더 강해지고 있어, 이에 걸맞은 신탁업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증권, 보험, 부동산전업신탁사의 수탁총액은 지난 5월 말 기준 1018조원으로 집계됐다. 신탁시장은 2017년 말 775조원에서 2018년 말 873조원, 2019년 말 969조원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신탁시장이 500조원 규모에서 1000조원으로 2배 성장하는 데는 약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신탁은 재산을 금융사에 맡겨 보관 및 관리,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돈(금전)을 맡기는 것은 금전신탁, 부동산과 같이 돈 이외의 재산을 수탁하는 것은 재산신탁이다. 신탁을 통해 고객은 각종 재산의 전문적인 관리가 가능해지고, 금융사는 수수료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신탁이 중위험·중수익 및 간접금융 성격을 띠고 있어, 저금리·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신탁 서비스는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신탁업을 전문으로 한 관련법이 없어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탓이다. 국내 신탁시장은 금융투자업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자본시장법으로 관리되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사가 수탁할 수 있는 재산은 △금전(금전신탁) △증권(이하 재산신탁)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부동산 관련 권리 △무체재산권 등 7종으로 제한된다. 금융상품이 다양해지고 전문화되는 추세지만, 1000조원의 신탁시장에서는 정작 7종 이외의 상품은 개발조차 불가능한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담보권이나 보험금청구권 등을 활용해 새로운 유형의 신탁상품을 만들 수 있지만, '낡은 규제'에 막혀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재산을 한꺼번에 맡기기 어려운 점도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금전과 비(非)금전을 동시에 굴려야 수익률을 높이기가 수월하다. 금전신탁과 재산신탁을 통합 관리하는 '종합재산신탁'이 있지만, 금전 비율이 40% 이하인 경우에만 허용돼 이용자는 소수다. 실제로 종합재산신탁 수탁액은 지난 5월 말 기준 4650억원으로, 신탁시장의 4.6%에 그친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신탁업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신탁업법 제정, 신탁재산에 대한 포괄주의 방식 도입 등이 필요하다"며 은행의 신탁 영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책을 요구했다.

신탁업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법이 제정된 2009년 전까지 신탁업법이 있었지만, 신탁을 포함해 펀드·증권투자 등 금융투자업을 동일한 규제로 통합 관리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자본시장법으로 모두 이관됐다. 그러나 투자성격이 강했던 당시 시장과 달리,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 신탁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관련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금융권 주장이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2017년 업무계획으로 신탁업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현재 흐지부지된 상태다. 올해 초에도 신탁제도가 '종합자산관리제도'로 기능할 수 있도록 신탁제도 전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업무계획을 내놨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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