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국 외교,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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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입력 2020-07-07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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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교수]


한국 외교가 공전의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외교란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협상을 통하여 맺는 국가 간의 모든 대외 관계를 지칭하며, 변화하는 국제관계의 현실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국제사무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국가는 자국의 안전 확보와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은 안보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에 의지하면서 경제발전의 필요에 따라 중국 의존도가 확대되는 이중구도가 형성돼 있다. 때문에 미·중 갈등의 확산은 항상 한국의 입지를 어렵게 하는 선천적인 한계를 노출한다. 안보차원에서 한·미·일 삼각 구도를 형성하던 일본과의 관계도 고질적인 역사인식 문제, 한·일 정보보호협정(GISOMIA) 갱신문제 및 일본의 경제 보복 그리고 한국의 G7 확대 참여 반대 등으로 악화일로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라는 미지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미래 국제사회를 예측불가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지난 3년에 걸친 우리 노력과 선의를 일거에 일축하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폭거를 저질렀다.

위기와 기회는 항상 공존한다. 사면초가일 수도 있고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는 작금의 현실은 지금까지의 인식과 방법의 전략적 재검토 필요성을 시대적으로 제시한다.

우선,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중 간 소위 신냉전 체제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략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미국의 대중 견제와 봉쇄전략은 장기적이고 종합적이다. 관세전쟁이나 중국 첨단기업 화웨이(華爲)를 둘러싼 기술표준 전쟁이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는 중국의 가치와 이념, 나아가서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군사력 증강까지 문제 삼으면서 중국을 도전자의 반열에서 확실히 탈락시키겠다는 패권전쟁 전초전이다. 중국은 미국의 조치를 넘어서지 않는 대응을 통해 확전을 피하고 있지만 미국은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고자 한다. 지난 5월 21일 백악관의 ‘미국의 대중 전략보고서’는 실질적으로 미·중관계의 결별(decoupling)을 선언했다. 신냉전 성격의 악성 경쟁으로 봐야 한다.

둘째, 갑자기 전 세계를 강타한 블랙 스완(black swan), 코로나19가 새로운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를 지배해왔던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가 막을 내리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과 더불어 성급하게 기존 국제체제의 과도한 변화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각국이 보이는 행태는 코로나 신(新)냉전과 다름없다. 인류의 보건 안전과 세계 경제의 위기 앞에서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면서 국제적 리더십이 실종된 'G제로' 시대가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의 코로나 외교가 성과를 거두었듯 때로는 독자적이고 때로는 협력적인 전략이 국익 증대나 이미지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미·중 사이에서의 선택 강요를 스스로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에서 강대국들은 기본적으로 국제무대에서의 권력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고자 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봉쇄를 위해 동맹국들의 참여를 종용한다.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이나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을 제어하기 위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한다. 중국 역시 일대일로에 한국의 참여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면서 북한의 최대 조력국 입장에서 한국 정부를 보이지 않게 압박한다. 시진핑 방한도 연장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것이며, 스스로 선택적 사고(思考)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넷째, 북핵 문제를 비롯한 대북 문제를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지난 3년간 현 정부는 분명히 소통과 대화라는 큰 틀에서 북한에 대한 유화적 조치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숙제를 풀 수 있는 지름길로 인식했다. 그러나 ‘비핵화’의 개념과 방식에 대한 전제 없이 시작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한국 정부의 지난한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핵 제거’라는 종국적 목표에는 촌보(寸步)도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북한은 실질적인 핵보유국 행세는 물론 한국을 겨냥한 중형 미사일이나 대형 방사포 등 실질적 위협을 증대시켰다. 대북 라인을 교체했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의도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냉정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장기적 차원에서의 외교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한국외교의 오랜 숙제지만 북핵 문제에 대한 매몰이나 소위 4강 외교에서 벗어나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 신남방 정책이나 신북방 정책 추진 등이 좋은 예이긴 하지만 탁상공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 외교로 각인된 한국의 이미지를 이용해 남방 문화나 북방 문화 등 문화 접점을 찾는 문화 외교로 한반도 통일 환경의 기초를 다지는 우군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상황은 한국이 좀 더 현실적이 돼야 함을 강변한다. 일단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 문제를 위해 강력한 억지력을 가진 군사력 강화가 필요하다. 또 우리에게는 절체절명인 북핵 문제는 미·중 갈등의 또 다른 요소로 고착되고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때문에 북한의 계속된 몽니를 받아들이면서 종전선언과 대북지원을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오히려 북한의 도발을 묵인하고 보상해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지나친 몰두는 우리 외교를 통일의 종속변수로 보는 것과 다름없다. 이외에도 한·미 방위비 협상도 속히 마무리 지어야 한다. 명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절충점을 찾아 우리가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를 냉정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갈등 증폭은 급변하는 국제환경에서 우리의 입지를 축소시킬 수도 있으므로 속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평화의 중재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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