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8차 사건’ 누명 벗은 윤 모씨... 받을 수 있는 보상은?

한석진 기자입력 : 2020-07-06 08:00
현장 검증에 나온 경찰은 당시 22살 윤 모씨 한테 “살해된 여학생이 살던 집의 담장을 넘으라”고 했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윤 씨는 “다리를 절어 담을 못 넘는다”고 답했다. 그러자 경찰은 윤 씨를 들어 올려 담 넘어로 던졌다.

“피해자의 얼굴도 모르고, 집도 모른다”고 절규하는 윤 씨에게 경찰은 오히려 윤 씨를 75시간동안 감금하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심지어 때리기도 했다. 경찰은 그렇게 윤 모씨(53)를 이춘재 8차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만들었다. ‘이춘재 8차 사건’이란 지난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씨 집에서 13살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해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항소심과 상고심은 모두 윤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도, 판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윤 씨는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그러나 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 씨가 “이 범행도 내가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당시 이 씨는 지난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뒤 무기징역을 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그러자 윤 씨는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1월 14일 윤 씨의 청구를 받아 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심이란 확정된 유죄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하여 그 오류를 바로잡는 구제절차를 말한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병찬)는 지난 2월 6일 1차 공판 준비기일에서 재심 청구인인 윤씨(53)에게 “법원의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죄송함을 느낀다. 윤 씨는 억울하게 잘못된 재판을 받아 장기간 구금됐다”며 사과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에 들어가기에 앞서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 양쪽의 입증계획을 듣고 필요한 증거와 증인을 추리는 절차를 밟는 과정이다.

수사당국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 씨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이날 밝혔다. 당시 8차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과 검사 등 8명은 직권남용, 감금 등의 혐의로 지난 2월 송치됐다. 이 중에는 윤 씨를 범인으로 만들어 특진까지 한 경찰관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경찰은 지난 2일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종결하면서 8차 사건의 진범을 이 씨로 지목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8차 사건을 비롯해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윤 씨는 화성연쇄살인범 이 씨의 신원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윤 씨는 지난 3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억울해서 하루하루가 미칠 것 같았다.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경찰, 검사, 판사, 언론 등 모두가 나를 범인으로 몰았다. 어딜 가나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바라볼까 두려웠다. 내 인생은 아직 1988년에 멈춰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실제 윤 씨는 행여 주민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할까 두려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청주에서 철저히 신분을 숨긴 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우선 지은 죄가 없음에도 억울한 수감생활을 한 경우, 국가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형사보상제도가 있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보상금액은 구금일 하루 기준, 무죄 판결을 받은 연도의 최저임금 일급(日給)의 5배 이하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윤 씨가 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기 위해선 재심에서 무죄로 뒤집혀야 한다. 현재 재심을 진행 중인 수원지법은 지난 15일 2차 공판에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보관 중인 범행 현장 체모 2점과 윤 씨의 모발 2점, 이춘재의 DNA를 감정하기로 했다. 감정 결과는 다음 달 중순께 나올 전망이며 재심 판결 선고는 11월로 예정돼 있다.

만약 윤 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이 된다면, 윤씨는 2019년 기준 일급인 약 67,000원을 구금기간 20년으로 하여 1~5배로 계산하면 대략 4억 8천여만원 ~ 24억 원의 범위 내에서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형사보상금 외에도 윤 씨는 불법 구금, 고문 등 국가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국가에 대하여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국가배상법은 대한민국 정부 소속 공무원이 자신이 맡은 공무를 수행하면서 고의나 과실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가 그 피해자한테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 단계에서 구속됐던 청소년들이 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자 “경찰의 초기 수사가 부실하고 위법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은 “경찰 진술 조서 작성에 직무상 과실이 있었다”며 4명의 청소년에게 각 100만~300만원을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단한 원심을 옳다고 보고 지난 4월 20일 확정한 바 있다.

또 윤 씨는 자신에게 고문 등을 가한 경찰관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 할 수 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정원섭 목사(82)도 자신을 불법 수사한 경찰관 등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제기해 지난 2016년 11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5부(재판장 임태혁)로부터 "경찰관 3명과 그 유족들이 정씨에게 23억88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정 목사는 지난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던 중 역전파출소장의 어린 딸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됐었다.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그는 거짓자백을 했고 15년간 복역해야만 했다. 그 후 정 목사는 70대가 된 2007년에 이르러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법원 재심을 거쳐 누명을 벗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윤 씨가 재심에서 무죄로 확정된다면 20억 원에서 40억 원의 정도의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 된다"며 "그러나 이는 윤 씨에 대한 최소한의 신체적·정신적 보상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윤 씨는 "당시 저를 수사한 경찰관들에게는 사과를 받지 못했지만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해준 경찰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이젠 괜찮다. 그 사람들(당시 수사한 경찰)을 용서하는 건 내가 아니라 국민이 해야 할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알게 모르게 피해를 봤을 테니…"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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