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오늘의시] '칼집의 노래'와 문재인대통령의 삼정검 '칼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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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6-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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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은 칼집 속에 있을 때 힘이 더 강하다" 발언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중장 진급자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장성들의 '삼정검'에 달아줄 수치가 놓여 있다. 삼정검의 '삼정'은 육·해·공군과 호국·통일·번영의 3가지 정신을 의미하며, 수치는 끈으로 된 깃발로 장성의 보직과 이름, 임명 날짜, 수여 당시 대통령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명검일수록 칼집이 좋다. 빼어난 칼일수록 그것을 담는 칼집은 부드럽고 깊고 튼튼하다. 칼집이 좋은 것이 명검이다. 칼을 지키는 자의 단호함, 칼을 지키는 자의 인내, 칼을 지키는 자의 머리 속에 벌어지는 수백 가지 활극, 칼을 뽑는 자는 진 것이다. 칼집에서 뿜어나오는 삼엄한 광채를 흩었기 때문이다. 

칼이 남성이면 칼집은 여성이다. 칼은 자기 얘기를 하지만 칼집은 남의 얘기를 들어준다. 칼은 한 가지 얘기를 꺼내지만 칼집은 상대방 이야기를 듣는 표정만으로도 말을 한다. 칼이 말을 멈출 때 칼집은 그때 말을 시작한다. 침묵이 말보다 무서운지를 들여다 보게 한다.

칼은 베어버린 허공의 끝에서 내려오지만 칼집은 여전히 베지 않은 허공을 지킨다. 칼은 한칼에 나아가는 결론을 중시하지만 칼집은 결론까지 가는 과정의 논란과 섬세한 본론들을 모두 베어넘긴다. 칼에는 눈이 없지만 칼집에는 칼등의 바람을 읽는 귀가 있다. 칼을 쓰는 자를 검객이라 하지만 칼집을 쓰는 자는 검주(劍主)라 한다.

결투는 칼집만으로 충분하다. 칼의 승부가 아니라 몸의 승부이다. 칼로 화한 몸이 나아간 살의와 공포의 일합이다. 칼이 칼을 이기는 것이 승부가 아니다. 칼을 쥔 자의 기술과 기세와 기운을 베는 일격이 승부다. 겨눈 칼의 빛을 읽고 급소로 다가오는 칼끝의 냄새를 읽는다. 칼집에 손이 가는 순간 결투는 끝이 나 있다.

                                                      이빈섬의 '칼집의 노래'


 

[11일 삼정검을 수여하는 문재인 대통령.]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육해공군 중장 진급자 16명으로부터 진급과 보직 신고를 받았다. 준장 진급자에겐 삼정검(三精劍)을 수여하고 중장 이상 진급자에겐 삼정검에 대통령 이름을 수놓은 깃발끈(綬幟, 수치)을 달아준다.

이 자리에서 문대통령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삼정검을 뽑아서 휘두를 때 힘이 더 강한 게 아닙니다. 칼집 속에서 더 힘이 강한 법이죠." 삼정검은 장군을 상징한다. 삼정검을 칼집에 두는 것. 그것이 '평화안보'의 참된 의미라고 밝힌 것이다. 대통령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영토나 영해를 침범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경우 누구든 격퇴 응징하는 힘을 갖는 것은 기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도 도발하지 못하도록 억제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칼집론'은 울림이 있다. 다만 그가 밝혔듯 침범자가 누구든 격퇴 응징할 수 있는 '칼' 즉 무력을 갖추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칼집론이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으려면 군통수권자로서 국가가 지닌 '칼의 내공'부터 점검하고 강화하는 일이 기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들이 일정한 불안감을 지니는 것은, 칼집이 안 훌륭해서가 아니라, 칼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불안이라는 것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한편 삼정금은 육군과 해군과 공군의 삼정(三精, 세 부문의 정예(精銳))을 의미하면서 호국과 통일과 번영의 세 가지 정신을 이루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83년 처음 제작됐고 모든 장성에게 수여되었지만 1987년부터는 준장 진급자에게만 준다. 초기엔 외날의 도(刀) 형태였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전통의 사인검인 양날의 검(劍) 형태로 개선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2007년부터 양날의 검 형태인 삼정검이 등장했다. 

삼정검은 길이 100cm, 무게 2.5kg으로 칼자루에는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고 칼집에는 대통령 휘장과 무궁화가 조각되어 있다. 칼날 앞면에는 대통령의 자필서명과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문구가 있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의미로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 전날 군인들에게 한 말이다.

칼날 뒷면에는 ‘건강정(乾降精) 곤원령(坤援靈) 일월상(日月象) 강전형(岡澶形) 휘뢰전(撝雷電)’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하늘은 정을 내리시고 땅은 영을 도우시니 해와 달이 모양을 갖추고 산천이 형태를 이루며 번개가 몰아친다’는 의미다. ‘운현좌(運玄座) 추산악(堆山惡) 현참정(玄斬貞)’, 즉 ‘하늘의 별자리를 움직여 산천의 악한 것을 물리치고, 현묘한 도리로 베어 바르게 하라’는 뜻의 문구가 담기기도 한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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