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우식 "'기생충' '사냥의 시간'까지…타이밍 좋았다"

최송희 기자입력 : 2020-05-08 08:00
긴 시간이었다. 영화 '사냥의 시간'과 주연 배우들에게는 고역(苦域)이었을 터다. 제작사 교체부터 코로나19 직격탄 그리고 이중계약 논란과 법적 분쟁까지 휘말리는 등 온갖 잡음에 시달리며 개봉이 점점 미뤄졌기 때문이다.

긴 '악재의 시간'을 견딘 이들 중 한 명이 배우 최우식(30)이었다.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 영화인의 주목을 받은 그에게 '사냥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는 차기작이었다.

영화 애호가(팬)들 사이에서 수작이라 꼽히는 '파수꾼'(2011) 윤성현 감독과 충무로 인기 배우 이제훈·박정민·안재홍·박해수와의 협업에 팬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계속해서 타이밍은 어긋났고 국내외 공개마저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긴 기다림 끝에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공개됐고 최우식은 또 한 번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냥의 시간' 배우 최우식[사진=넷플릭스 제공]


"논란에 관한 걱정이나 우려는 없었어요. 앞으로 넷플릭스나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로 많은 작품이 나올 거예요. 이제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거 같아요. 다양한 매체로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됐어요. '옥자' 때도 극장 상영 논란이 있었어요. 하지만 칸 영화제 이슈 이후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넷플릭스 영화 '로마'(감독 알폰소 쿠아론)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기도 했잖아요. 점점 변화하고 있는 거 같아요."

최우식은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개봉을 기회로 삼았다. '기생충' 이후 마음이 조급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긍정적으로 '사냥의 시간'을 기다렸다. '기생충'의 기세를 몰아 해외 팬들과 한 번 더 교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생충' 덕에 해외에서 최우식에 관한 궁금증과 관심이 늘었어요. 넷플릭스 공개가 좋았던 건 국내 개봉을 거치는 게 아니라 즉시 해외 팬들도 함께 볼 수 있어서 한 발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또 편하게 볼 수 있으니까 주변에서도 바쁜 와중에도 영화를 보고 연락도 해주고요."

힘든 기억은 금세 잊는 듯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나아가 해외에서도 '사냥의 시간'을 쉽게 접할 수 있어 기쁘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확실히 영화 '기생충' 이후 국내외 관심도가 달라졌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고 '백인들의 잔치'라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주역 최우식인 만큼 '사냥의 시간'에 관한 관심도 뜨거웠다.

"'기생충' 다음으로 공개되는 영화라 긴장도 됐어요. 안 됐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제 생각에도 꿈 같은 일이라서요. '사냥의 시간' 개봉이 더 미뤄지면 해외 팬들이 절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타이밍 좋게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세계에 '짜잔! 제 영화입니다!'하고 보여드릴 수 있게 됐어요. 해외에서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고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아서 신기해요."

'사냥의 시간' 배우 최우식[사진=넷플릭스 제공]


'기생충' 이후 가장 달라진 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란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불어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설명하며 때로는 어린애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여주시지만, 해외 반응이 너무 신기해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그 반응을 실감하게 해요. 숫자로 보이잖아요! 하하하. 저도 그렇지만 부모님이 정말 정말 행복해하세요. 그래서 저도 행복해요."

영화 '거인' '부산행' '물괴' '기생충' 등 그간 많은 작품에서 유약하고 섬세한 인물을 그려왔던 최우식은 '사냥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냈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와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들의 숨 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영화 속 최우식은 기훈 역을 맡았다. 무리 중 가장 인기 많고 사교성도 좋으며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캐릭터다.

"기훈을 연기하면서 그간 제가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 좋았어요. 제가 '삐약삐약'(KBS2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에서 최우식이 보여줬던 애교) 이미지가 강해서 이런 거친 캐릭터를 맡을 일이 별로 없거든요. 몸이 우락부락하거나 남자다운 거친 연기는 못하더라도 반항적인 이미지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게 기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윤상현 감독이 그린 기훈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전성기 시절 외모와 눈빛이라고. 최우식은 멋쩍은 듯 "제가 캐스팅되며 이미지가 바뀌었다"라고 거들었다.

"기훈이는 가장 인기도 많고 사교성 좋은 캐릭터에요. 처음 시나리오와는 이미지가 조금 달라졌죠. 그냥 멀건 키 큰 애가 됐어요. 하하하."

'사냥의 시간' 배우 최우식[사진=넷플릭스 제공]


기훈 캐릭터는 최우식을 만나며 군데군데 변화를 맞았다. 윤상현 감독은 최우식에게 기훈의 '빈 곳'을 채워 달라고 부탁하며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감독님이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표현해'라고 했으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런데 윤 감독님은 항상 '우식아 네 느낌은 어때?' 물어봐 주시고 함께 만들어가셔서 재밌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시나리오가 영상화되기까지는 많은 변수가 있다. 배우들의 캐스팅이며 연기·후반 작업 등이 '사냥의 시간'의 최종 무드를 만들어냈다. 최우식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도통 그려지지 않았던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영상을 통해 완성됐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글로 읽었을 땐 '이게 어떻게 영상화될까?' '이걸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막연하고 궁금했어요. 시기도 '근 미래'라고만 설정돼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고 세트장에 갔는데 입이 떡 벌어졌어요. 복합상가 전체를 빌려 미술 효과를 내 폐허를 만들었는데 제가 생각한 디스토피아 느낌도 나고 근 미래에 관한 이미지도 잡히더라고요. 느낌이 확 왔죠."

이제훈과 박정민·안재홍·박해수 등 충무로 대세 배우들과의 협업도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그는 "형들과 연기하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며 설렘을 드러내기도 했다.

"'파수꾼' '족구왕' 등을 보면서 '형들은 현장에서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했어요. '나와는 뭐가 다른 걸까?'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부딪치며 많이 배웠어요. 다들 또래니까 만나서 놀고 친해지면서 캐릭터를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 덕에 성장할 수 있었다는 그는 "처음엔 연기 욕심도 생겼었다"라며 남다른 긴장감이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걱정이 많아서 그랬어요. '적응 못 하면 어떡하지!' '나만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사실 대단한 배우들과 함께 찍고 연기 욕심도 나서 더 피가 끓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좋은 '욕심'이라서 서로의 선을 침범하지는 않았어요."

'사냥의 시간' 배우 최우식[사진=넷플릭스 제공]


최우식에게 2020년은 '성장'할 수 있었던 해였다. 칸 국제영화제부터 아카데미까지 긴 여정을 거쳐 넷플릭스에 도달하기까지. 최우식은 남다른 경험과 깨달음을 얻게 됐다.

"투어 도중에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와 이게 현실이야?'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이잖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감격스러웠던 건 미국 배우 조합상(SAG)의 앙상블상이었어요. 감격의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었거든요. 배우가 배우에게 주는 상은 무게감이 남다르더라고요. 정말 무겁고 부담도 됐어요. 제게 큰 숙제이자 원동력을 준 것 같아요. 가끔 게을러질 때도 있는데 제게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았어요."

최우식은 여전히 많은 작품과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심'을 안고 있다. 한때는 카메라에 어떻게 비치든 신경 쓰지 않고 "돌아버릴 때"가 있었다며 한없이 가볍거나 또 무거운 모든 역할에 욕심이 난다고 고백했다.

"방정맞은 역할도 해보고 싶고 개구쟁이 캐릭터도 맡아보고 싶어요. 어릴 때 맡았던 역은 지금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 맡아보고 싶고 잘 해내고 싶어요. 아직 연기가 일로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행복하게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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