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과학자가 저주받은 카산드라라면, 우리는 트로이 시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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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0-04-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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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대륙 얼음 녹으면 해수면 58미터 상승

  • 지구온난화로 남극 얼음 녹는 속도 매우 빨라져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트로이에 가본 적이 있다. 트로이는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기원전 1300년 전쟁터다. 서양문화의 원류인 ‘일리아스‘의 현장에 왔다고 생각하니, 각별한 느낌이었다. 터키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트로이에 들르게 되었는데, 트로이 성에 서 보니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의 10년 전쟁이 왜 이곳에서 벌어졌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트로이는 요지 중의 요지였다.

트로이 성 왼편 저쪽에는 아름다운 에게해가 보였다. 에게해는 지중해 끝의 큰 바다다. 트로이 오른쪽으로는 좁은 해협이 높여 있다. 다르다넬스 해협이다. 이 해협을 따라 올라가면 멀리 이스탄불이 나온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서 새로운 해협(보스포러스)을 따라 또 올라가면 흑해가 있다. 결국 트로이를 장악하고 있으면 에게해와 흑해 방면 양 방향의 교통과 교역을 통제할 수 있었다.

트로이가 전략 요충이라는 건 세계1차대전사에서도 확인된다. 트로이에서 보아 다르다넬스 해협 건너편이 갈리폴리 반도(터키어로는 겔리볼루 반도)라는 곳이다. 1915년 겔리볼루 반도 끝에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연합군이 상륙해, 오스만 제국을 공격했다. 대패했다. 그 전장의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케말 파샤가 이끄는 터키 공화국이 출범했다. 갈리폴리 전투가 벌어진 이곳은 오늘날 양측 전사자들 무덤으로 가득하다. 붉은색 바탕에 흰색 초승달이 들어가 있는 초대형 터키 국기가 날리는, 터키의 국가적 성지이기도 하다.

트로이 이야기를 길게 한 건 얼마 전 만난 극지 전문가가 계기다. 극지연구소의 이원상 박사(해수면 변동예측사업단 단장)는 오늘날 기후과학자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에 비유된다고 내게 말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 공주다. 그는 ‘카산드라의 저주’로 유명하다. 예언 능력을 갖되, 그의 말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저주를 아폴론으로부터 받았다.

카산드라는 트로이가 그리스에 의해 망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물론 사람들은 그녀의 예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카산드라는 그리스가 남기고 간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했으나, 트로이 성민들은 목마를 그리스의 선물이라고 잘못 판단하고 성문을 열어 안으로 들였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다. 목마에서 쏟아져 나온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멸망시켰다.


 

 


기후과학자의 말을 외면하는 우리

극지전문가가 카산드라의 저주를 얘기하고 다니는 건 답답함 때문이다. 지구에 급격한 기후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고 기후과학자들이 말을 하고 있으나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가 옳은 예측을 했듯이 오늘날 기후과학자도 올바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로 내게는 들리기도 했다. 이원상 박사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그가 남극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극대륙의 얼음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녹을지를 연구하는 극지연구소 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2월말까지 3개월간 극지연구소 팀을 이끌고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의 스웨이트 빙하에 다녀왔다.

그는 남극대륙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남극대륙의 얼음이 중요한 건, 이곳의 얼음량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 즉 빙상이 많이 있는 곳은 남극대륙과 북극권 그린란드 두 곳이다. 남극 대륙의 얼음량이 북극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많다. 북극권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7m 올라가나, 남극대륙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58m 올라간다는 예측이 나와있다.

남극대륙에 얼음이 많은 건 북극권보다 훨씬 춥기 때문이다. 남극대륙은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남극순환류라는 이름을 가진 바다의 존재 등 몇 가지 요인으로 외부에서 따뜻한 공기나 물이 유입되지 않는다. 그러니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얼음으로 쌓인다. 남극대륙에는 평균 2160m의 얼음이 쌓여있다.

해수면이 올라가는 건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루에도 두번 우리는 밀물이 들어오는 걸 알고 있다. 서해안 항구도시에서 자란 나는 밀물 때 물이 얼마나 빨리 포구에 차오르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과학자가 말하는 해수면 상승은 밀물 썰물과는 달리 한번 올라가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해수면 평균 높이는 변하지 않는 게 아니다. 현재 수준으로 안정된 건 기원전 6000년이다. 그리고 그전에 급격한 해수면 상승이 있었다. 빙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1만5000년 전 인류 선조들이 보았던 해안선은 현재 우리가 만든 지도에 나와있는 것과는 달랐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쓰시마 해협은 없었다. 육지여서, 걸어서 양 지역을 오갈 수 있었다.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도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빙기(Glacial Period)가 끝나고 간빙기(Interglacial Period)가 시작된 후 해수면은 약 120m 높아졌다. 인류의 4대 문명이 출현한 시기는 해수면이 안정된 때와 거의 일치한다. 해수면이 안정되고 바닷물이 올라오는 속도가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인류는 물가에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해수면 상승과 인류의 삶의 관계가 밀접함을 알 수 있다.

기원전 6000년 흑해에서 일어난 일

예나 지금이나 해수면 높이를 끌어올린 건 기온 상승이다. 구석기 시대의 해수면 상승 원인은 지구공전 궤도 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다. 지구가 추웠던 빙기에는 남극대륙과 그린란드 말고도 다른 대륙에 ‘대륙 빙하’라고도 불리는 빙상(Ice Sheet)들이 있었다. 로렌타이드 빙상, 스칸디나비아 빙상, 코르디예라 빙상이다. 로렌타이드 빙상은 북미주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남쪽은 뉴욕 시 인근에까지 닿아있었다. 로렌타이드 빙상이 녹아 사라지면서 막대한 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 물이 만든 다섯개의 거대한 호수가 오대호다. 그리고 오대호 수량보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물이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그 물은 지구 해수면 높이를 끌어올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수면 상승은 인공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인간이 화석연료(석유, 가스)를 태워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기체를 대기 중으로 뿜어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에 중독된 인류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빙상인 남극대륙의 빙상과 그린란드의 얼음을 빠른 속도로 녹이고 있다.

급격한 해수면 상승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다가올 게 분명하다. 우리의 조상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재앙을 이미 겪었다. 그들이 문자가 없었기에 기록을 남기지 못했으나, 과학자들은 구석기 시대에 일어난 해수면 상승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일정부분 알아냈다. 기원전 6000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자연재앙을 겪은 유명한 곳이 흑해다. 트로이 앞을 지나는 다르다넬스해협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곳이 흑해라고 했다. 오늘날 흑해의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터키다. 흑해는 기원전 6000년에는 바다가 아니고, 호수였다(영국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의 책 <바다의 습격>). 에욱시네 호수라는 이름을 지질학자들은 붙여놓았다. 에욱시네 호수의 거대한 민물 생태계에 사람들은 적응하고 정착해 살았다. 그런데 1만5000년 이후 네 번째 급격한 해수면 상승 때 바닷물이 밀려왔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에게해에서 유입되기 시작한 바닷물이 이스탄불 앞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에욱시네 호수로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왔다. 민물호수에 짠물이 들어오자 생태계는 순식간에 재앙을 맞고 말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는 죽어 배를 드러내며 물위에 떠올랐고,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해수면 상승이 미래에 얼마나 빨리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상승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유엔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내는 보고서를 보면 계속 속도가 빨라지는 쪽으로 예측치가 수정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이 현실로 나타나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오늘날 바닷가 인접한 주택과 각종 시설이 얼마나 많은가? 가령 두바이가 바다를 메우고 인공섬을 만들어 그곳에 주택을 지었을 때 그 놀라운 프로젝트에 많은 이는 감탄했다. 지구환경과학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야자수 모양을 딴 ‘두바이 팜 주메이라’는 망상의 결과라고 말한다. 머지않아 ‘바다의 공격’을 받고 물속에 들어가기 십상이라고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해수면이 1m 올라갈 경우 침수가 예상되는 지역에는 인천공항, 인천 북항, 팽택항, 당진항, 새만금, 영광원전, 목포 신항이 들어가 있다.

서울시내 버스 전량 전기차로 바꾸라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딱 50년 전 인류는 지구 환경에 닥친 위험 신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지구의 날‘을 만들었다. 그런데 달라진 건 없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고통 속에서 망외 소득이 있었다면, 그건 인간이 멈추자 자연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일 것이다. 맑은 서울 하늘, 북인도 힌두스탄평원에서도 볼 수 있게 된 히말라야 산맥, 베네치아의 맑아진 수로, 파리 센강에 나타난 백조 등.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싶다. 인간이 멈추면 자연환경은 달라질 수 있다.

기후변화를 되돌리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우리 각자가 할 일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솔린승용차는 사지 않을 것이다. 전기자동차를 사거나, 차를 더 이상 소유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타고 다니는 서울 시내버스는 전량 전기차로 즉각 바뀌길 기대한다. 일부 바뀌기는 했으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결단을 내려 전 차량을 전기차로 단박에 바꿨으면 한다. 중앙정부에게 묻고 싶다. 가솔린 차량을 언제까지 판매하도록 허용할 것인가? 이미 그 길을 앞서가는 나라가 있다. 진보 정부라면 그런 방면에서 정책의 도약을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기후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운명의 날을 맞게 된다. 그 경우 우리는 카산드라의 예언을 무시했다가 망한 트로이 시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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