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코로나19, 실제 피해가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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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4-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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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00야 미안하다.” 50대 가장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그가 운영하던 작은 여행사는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게 중단됐다. 직원을 내보내고 급전까지 끌어 썼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다. 유일한 탈출구는 죽음뿐. 보도를 접한 19일은 종일 봄비가 내렸다. 봄꽃이 한 창인 사월, 자살 소식은 서막에 불과하다. 코로나 사태 3개월 만에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넘쳐난다. 긴 병에 효자 없듯 모두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계는 물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기업까지 단단히 골병들었다.

4.15총선에서 국민들은 민주당에 압도적인 표를 던졌다. 국민들은 정부가 보여준 코로나19 대응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 향후 경제 회복 능력에 기대를 걸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한계에 내몰린 이들에겐 실낱같은 희망이다. 관건은 신속한 지급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정부는 시간만 보내고 있다. 19일 당정청 회의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 민주당은 모든 국민을 주자며 엇박자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전 국민 지급에 부정적이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나친 우려는 아닌지, 비상한 상황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국채 비율은 재정 건전성을 해칠 만큼 높지 않다고 한다. 또 프리드먼을 비롯한 세계적 석학들도 과감한 재정 완화를 주문하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그렇다면 정책결정 또한 신속하고 과감해야 한다. 지금처럼 갑론을박할 겨를이 없다. 긴급재난지원금이 공론화된 지 두 달째다. 벌써 방침을 확정하고 지급을 마쳤어야 맞다. 그런데 논의만 계속되고 있으니 답답하다. 이왕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면 긴급성과 형평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합리적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정부 대응이 얼마나 수동적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지난주 월요일(13일)부터 지급을 시작했다. 세금 신고 기록만 있으면 된다. 연소득 7만5000달러(부부합산 15만 달러·1억8240만원) 이하 개인에게 1인당 1200달러(146만원)씩이다. 자녀는 500달러씩 추가된다. 4인 가족이라면 3400달러(413만원)가 지급됐다. 전체 국민 94%가 받는다. 총 재난지원금 규모도 2900억 달러(352조6400억 원)에 달한다. 자영업자에게도 PPP(Paycheck protection Program)를 통해 현금을 지급했다. 애틀랜타에서 자영업을 하는 동생도 17만2000달러(한화 2억 원)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유일한 조건은 8주 안에 소비하라는 것. 전체 금액 중 75%는 근로자 고용, 25%는 임대료 지급과 이자 상환에 사용한다.

일본도 과감하다. 모든 국민에게 1인 당 10만 엔(113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주민기본대장’에 등재돼 있다면 누구나 받는다. 3개월 이상 체류한 외국인도 대상이다. 애초에는 소득이 감소한 가구만 골라 30만 엔(338만원)씩 지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소득 제한을 두지 말고, 최대한 빨리 지급하라는 여론에 굴복했다. 총 재난지원금 규모는 8조 엔, 우리 돈으로 88조 원이다. 우리가 가구당 100만원씩 국민 70%만 줄지, 모두 줄지를 다툴 때 미국은 1인당 146만원, 일본은 113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4인가구라면 미국 413만원, 일본 452만원, 한국 100만원이다.

독일 정부는 즉시지원금 형태로 경기부양에 나섰다. 신청서 작성 10분, 이어 3일 만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계좌에 현금 입금됐다. 직원 5명 이하는 5000유로(한화 678만원), 6~10명 사업장은 1만5000유로(한화 2036만원)씩이다. 일주일 동안 베를린시에 9억 유로(약 1조 2123억 원)가 풀렸다. 지원 방식도 단순하다. ‘우선 지급’ ‘추후 확인’이다. 소득 따지고 상담하느라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질문은 “코로나19 사태로 실질적 피해가 있느냐”다. 지급 액수도 5000유로 일괄적이다. 추경안 처리도 신속했다. 독일 정부가 1560억 유로(206조9300억 원) 규모 추경안을 편성한 건 3월 23일. 추경안은 3일 만에 하원을 통과했다.

세 나라 사례를 정리하면 이렇다. 보다 많은 국민에게, 최대한 빨리, 그리고 현금으로 넉넉하게다. 우리는 그들과 형편이 다르다는 이들도 있다. 정말 그럴까. 정책 당국자들은 툭하면 “‘3050’ 클럽 세계 7번째 가입국”을 입에 올린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국가들이다.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우리는 지난해 가입했다. 한국,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는 꼬리를 내리고 있으니 한심하다. 적법하게 세금을 납부한 국민이라면 모두 지급하는 게 맞다. 전 국민에게 주느냐는 논쟁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지원 액수와 규모를 늘리는 게 합당하다. 세 나라는 지원액이 우리보다 4배 이상 많다. 총 규모 또한 미국(352조원), 독일(207조원), 일본(88조원)으로, 미국은 우리(10조원)보다 35배나 많다. 이 정도라야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찔끔찔끔 지원은 생색내기나 다름없다.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자금도 대폭 풀어야 한다. 미국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준 돈은 무상이다. 반면 우리는 추후 갚아야 한다. 같은 ‘3050클럽’ 국가임에도 너무 다르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기업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 논의에 앞서 현장에 나가 듣고 보길 바란다. 국가란 무엇인지 보고 싶다. “00야 미안하다”는 유서를 또 다시 본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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