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우리가 비난할 것은 '코로나 정치' 아닌 '코로나 정략'

김낭기 논설고문입력 : 2020-04-01 17:47
'정치'는 공동체 이익 추구하며 타협으로 사회 갈등 조정 '정략'은 왜곡· 과장· 술수로 상대 공격하고 내 편만 챙겨 코로나 이용한 일방적 정권 홍보나 비난 등 '정략' 난무
코로나19가  정치의 의미, 정치에 대한 인식을 망가뜨리고 있다. ‘정치’를 부정적, 파괴적 이미지로 덧칠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를 천하에 이로울 게 없는 몹쓸 짓이나 되는 것처럼 인식시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과 의료 전문가들이 하는 말들이 그렇다. 이들은 코로나 방역과 관련해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할 때 예외없이 ‘정치’를 거론했다.

"코로나를 정치에 이용 말라"고 서로 삿대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코로나 사태 초기에 미국은 중국인 입국을 금지했는데 한국 정부는 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지적에 이렇게 응대했다.”미국의 중국인 입국 금지는 정치적인 조치다.” 미국이 방역 차원에서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게 아니라 뭔가 나쁜 의도에서 금지했다는 말이다. 예컨대 중국이 방역 후진국이라는 낙인을 찍어 중국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적 위상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에서 그랬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에는 ‘공작’ ‘음모’ ‘술수’의 냄새가 풀풀 난다.

야당 등이 정부의 코로나 대응 방식을 비판하자 이해찬 민주당대표는 “일부 사람들이 코로나19를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인영 총무는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정치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중국인 입국을 안 막은 게 문제였다고 보수정당과 언론이 말하는 이유는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어떤 의지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라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정치에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왜곡이나 거짓 등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한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쪽 인사들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과학을 과학으로 풀지 않고 정치로 풀려 했다”, “방역은 과학이다. 과학에 정치가 개입되면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대응이 역병 대란 키웠다” “정치는 국민의 생존이 걸린 방역에서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등의 발언이다.

이런 발언들은 정부가 코로나를 막는 것보다 정권을 지키려는 데 급급해 코로나 사태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비난한다.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이 부각되면 정권의 능력이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를까봐 그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고 의학계의 전문적 조언도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은 것도 시진평 중국 국가 주석의 한국 방문을 성사시키려는 의도에서 중국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한마디로 방역이라는 나라와 국민의 이익보다 정권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주장이다.

“‘신천지 때려잡기’는 정부의 방역 실패를 물타기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주장은 어떤가.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못해 사태를 악화시켜 놓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속셈에서 신천지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에는 책임 회피와 전가, 뒤집어 씌우기, 희생양 만들기 같은 음험함이 묻어난다.

'정치' 본래 의미 훼손하고 타도 대상으로 전락시켜

이쯤 되면 ‘정치’만큼 흉물스럽고 해악스러운 게 없을 정도다. ‘정치’야말로 이 세상에서 당장 사라져야 하고 타도돼야 할 존재다. 그러면 정치는 정말로 그런 존재일까. 그렇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가 수행하는 기능과 역할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는 인간이 집단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한다. 그 기능과 역할은 내용과 절차라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내용의 측면에서 보면 국가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목표와 방향의 제시와 추진일 수도 있고, 사회 세력이나 집단 사이의 갈등의 조정일 수도 있다. 경제·사회적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정책의 결정과 집행일 수도 있다.

정치를 절차의 측면에서 보면 토론과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표와 방향의 제시, 갈등의 조정, 정책 결정과 집행에는 집단이나 사회 세력 간의 대립과 힘 겨루기가 불가피하게 수반된다. 그 대립과 갈등을 폭력이나 강압이 아닌 타협과 논의로 풀어가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기능이다. 주먹이나 총기의 대결을 언어의 대결, 즉 토론으로 바꾼 게 정치라는 말까지 있다.

물론 정치를 하자면 불가피하게 어두운 그늘이 생길 수 있다. 서로의 이견을 좁히고 타협에 이르려면 주고 받기식의 뒷거래와 흥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원리원칙만 고수할 수도 없다. 협상과 타협 과정에서 우월한 위치에 서려고 세 대결을 벌일 수도 있다.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게 그런 예다. 그러다 보니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여러 가지 행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본래 기능이 변화는 것도 아니고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정치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치를 욕하고 비난하면서도 정치에 큰 기대를 걸며 정치를 걱정한다 . “정치가 잘 돼야 나라가 잘 될 텐데” “기업은 1류, 정치는 3류”라고 하는 게 그런 예다. 정치를 나라와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왜 생겨난 것일까. 정치와 정략을 구분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정략이라고 써야 할 곳에 정치라고 쓰니 정치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선입견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정치와 정략은 본질이 다르다. 그 둘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는 동기와 목표가 무엇이냐를 따져 보는 것이다. 동기나 목표가 국민과 국가 같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정치이고, 정파나 정권 같은 일부분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정략이다. 정치를 권력 투쟁이라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무엇을 위한' 권력이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권력 투쟁의 동기나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정치가 될 수도 있고 정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정권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가 무 자르듯 명확히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둘이 뒤섞여 있을 수도 있다. 말로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정파나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주된 동기 또는 본질적 동기가 무엇이냐다. 겉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행동이나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가 판단 기준이다. 실제로 하는 행동이나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보면 주된 동기, 본질적 동기가 무엇인지를 대개는 가늠할 수 있다.

비난 대상은 '정치'가 아니라 '정략' 

정략은 국가나 국민이 아닌 정파나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본심을 속여야 하기 마련이다.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우는 것이다. 그러자니 왜곡과 거짓, 선동과 선전,  음모와 술수, 위선과 이중성, 책임 회피와 떠넘기기, 희생양 만들기 같은 부정적 행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흔히 ‘정치’라고 비난하는 모든 속성들이 사실은 정치가 아니라 정략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코로나 19사태에서 말하는 ‘정치’는 정략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추미애 장관의 발언 중 ‘미국의 정치적 조치’라는 말을 ‘미국의 정략적 조치’라고 바꿔 보자. 미국이 어떤 정략적 목적에서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개 문제다. 그것과 관계없이 ‘정치’가 아닌 ‘정략’이라고 하면 추 장관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정확히 설명된다. 예컨대 추 장관이 주장하려는 바가 ‘미국이 중국을 방역 후진국으로 낙인찍어 중국과 시진핑 주석의 위상에 흠집을 내려는 음모와 술수’였다면 정치보다 정략이라고 할 때 그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정략에 이용하지 않는다” “과학에 정략이 개입되면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정략적 대응이 역병 대란 키웠다” “신천지 때려집기는 정략적 노림수”라고 하면 이들이 주장하려는 바가 무엇인지가 더 정확히 드러난다. 속임수, 왜곡과 거짓, 책임 회피와 떠넘기기, 희생양 만들기 등이다.

 ‘정략’이라고 써야 할 곳에 정략이라고 제대로 쓴 경우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이 예다. 이 원내대표는 코로나19 사태로 일본이 한국인 입국 제한을 강화한 것을 "다분히 정략적"이라고 했다. 그는 또 "(야당이) 아무 근거도 없이 국가 방역 및 외교 활동을 공격하는 것이 진짜 정략"이라고도 했다. 언론 보도 중에는 “민주당이 먼저 4월 총선 연기를 야당에 제안할 경우, ‘판세가 불리하니 정략적으로 선거를 미룬다’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 역시 ‘정략이라고 써야 마땅한 곳에 정략이라고 제대로 쓴 것이다.

이처럼 정치와 정략은 정확히 구분해서 써야 한다. 그래야 주장하는 바도 정확히 드러나고, 정치를 정략과 도매금으로 비난하게 되는 일도 없어진다. 그러지 않고 정략이라고 써야 할 곳에 정치라고 쓰는 바람에 정치가 타도돼야 할 대상이 돼 버린 것이다.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코로나 정략'이지 '코로나 정치'가 아니다. 왜곡과 과장 등으로 코로나 사태를 정권 홍보나 정권 비난의 수단으로 삼는 게 바로 코로나 정략이다. 반면에 검사와 진료 시설을 확충하고,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격리하고, 중증과 경증으로 나눠 대처하는 등 코로나 확산 방지를 긴급한 국가 목표로 설정하고 그 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것은 코로나 정치다.

인식과 행동 바뀌려면 '말'부터 제대로 써야

말(언어)은 우리의 인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1990년대에 미국에서 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라는 게 벌어졌다. PC란 ‘정치적 정확성’ 또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된다.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주는 말 대신 중립적인 말을 쓰자는 운동이다. 여성주의자나 시민운동가들이 주도했다.

예를 들면 기업 회장을 남성을 뜻하는 ‘chairman’ 대신 남녀를 포함하는 ‘chairperson’이라고 쓰자고 한다. chairman은 ‘회장=남성’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줘 남녀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이유로 인류를 ‘mankind’ 대신 ‘humankind’로 쓰자고 한다. ‘장애인’의 대립어로는 ‘정상인 (또는 일반인)’ 대신 ‘비장애인’이라고 쓰자고 제안한다. ‘정상인과 장애인’이라는 말 속엔 ‘장애인=비정상’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C운동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chairperson, humankind이라는 말은 ‘회장=남성’, ‘인류=남성’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있다. ‘정상인’ 대신 사용한 ‘비장애인이라는 말은 ‘장애인=비정상’이라는 인식을 바꿔 놓는 데 기여했다.

정치와 정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정략을 구분해서 쓰면 정치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선입견을 줄일 수 있다. 편견과 선입견이 없어지면 정치의 의미와 인식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고 진짜 정치가 펼쳐질 수 있다. ‘코로나 정치’는 살리고 ‘코로나 정략’은 막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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