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이 시국에…‘코로나19 비선자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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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입력 2020-03-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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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간 보건의료 정책을 주름 잡는 집단 있어”

  • “멀쩡한 전문의들 빨갱이로 몰았다”

  • “의혹 제기 시기 적절치 않아…방역 대응에 집중해야”

구로구시설관리공단 관계자들이 10일 오전 신도림 코리아빌딩 관련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으로 확인된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자가 75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의료계 내부 갈등이 불거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코로나19 대응의 실패 이유에 대해 ‘비선자문단’이 있다고 주장하자, 코로나19 대책 자문을 해오던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갑작스럽게 해체 된 데 이어 의협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도 올라왔다.

일각에선 내부 전문가들과 당국이 힘을 합쳐야 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의협 ‘비선 전문가’ 의혹제기…안철수는 거들고

“대통령과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코로나19 사태를) 오판하게 자문한 비선 전문가들이 있다.”

지난달 24일 의협에서 발표한 대정부 입장의 한 내용이다. 당시 의협은 “전문가 자문그룹 역시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이들에 대한 전격적인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지난 한 달간 방역을 인권의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무증상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함으로써 엄청난 피해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문이 나온 이튿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비선 전문가 자문그룹이 중국발 입국 제한의 불필요성 등을 자문했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지난 정부 최순실의 존재와 다를 바 없다”고 거들었다.

이후에도 의협의 ‘의료 비선 실세’에 대한 의혹 제기는 이어졌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의 귀를 붙잡고 비선 역할을 한 인물로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을 지목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의 이 같은 의혹 제기 배경에는 20년간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을 주름 잡는 김용익 사단이 있어서란 주장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의료계 관계자는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을 다 주도했다”면서 “김용익 이사장과 관련된 인사들이 (현재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진석 실장도 그 라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계 소식통도 “(김용익 사단이) 대한민국 의료정책을 끌고 간다. 관례상 모든 판단을 할 때 ‘선생님’께 여쭤보는 건 당연하다”라면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한다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상식 수준이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이 같은 조치가 안 이뤄졌던 건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고, 그 누군가가 결국엔 내부에 있는 전문가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감염병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할지 연구하는 모임인 국가보건공중위기 사업단이 메르스 사태 전부터 있었지만 (이들은) 메르스가 터지고 우왕좌왕하며 아무것도 못했다. 그때 운영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나와서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들은 의협이 주장한 ‘비선’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비선이라는 의미 자체가 뒤에 숨어서 인물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 부분에서 ‘최순실의 비선’과 같이 묶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한 의료인은 “오래 전부터 청와대에 자문하는 핵심세력은 있었지만 이들을 비선이라고 일컫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범대위는 해체, 교수는 퇴장…거세진 반발 여론

야당과 의협의 전문가 비선 의혹 제기로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3일 범대위는 돌연 해체됐다.

이에 대해 권준욱 질본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지난 5일 정례브리핑에서 “범대위가 해체했다기보다 의협을 중심으로 민·관·학 협력의 큰틀을 확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범대위와 별도로 의협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연락이 취해져 왔다. 협력의 틀을 재정립하는 단계다. 범대위에 참여했던 전문가들도 앞으로 진행될 전문위원회와 같이 다른 형태로 자문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비선으로 지목된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드디어 이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라면서 “전문가의 의견이 비선자문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비하됐다. 죄송하지만 비선자문은 이제 물러나겠다”는 글을 올렸다.

범대위는 해체되고 자문을 했던 교수가 퇴장하자 전문가 비선 의혹에 대한 반발 여론도 잇따랐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사협회 집행부들의 아집이 선을 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자신을 마산의료원 의사라고 밝힌 작성자는 글에서 의협에 대해 “멀쩡한 전문의들을 빨갱이로 몰아 그 전문성을 발휘할 국가 자문에서까지 배제하는 걸 보며 더는 참을 수가 없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몇몇 세력에게 의사 회원 전체가 휘둘리는 꼴”이라며 의협 집행부에 대한 전격적인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글에는 7만5772명이 동의했다.

같은 날 행동하는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조치가 빠르게 이뤄져야 할 지금, (의협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정치적 이익을 위해 코로나19 사태를 이용하려는 모습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방역 대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에게 말도 안 되는 굴레를 씌웠다”고 일갈했다.
 

지난 7일 오후 광주 남구 빛고을전남대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대구에서 도착한 코로나19 경증 확진자들을 병원 내로 이송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선 논란 시기상 적절치 않아”

의료계 종사자들 사이에선 ‘전문가 비선’ 논란 자체를 “시기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적 재난 심각 단계인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대해 총력 대응을 해도 부족한 때란 지적이다. 신천지 교인들의 조사 마무리로 추가 확진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대구 지역 신규 확진자 수가 큰 폭 줄어들면서, 우리나라가 감염병 대유행의 소용돌이에서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란 주장이다.

또한 이란을 넘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으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어 해외 유입 차단에 대한 계획도 다시 꼼꼼하게 살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한 집단이 오랫동안 의료 정책의 핵심을 담당해 왔다는 것과 의협의 의혹 제기 의도는 모두 따져봐야 것들이지만 지금은 이를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외 (감염병) 유입과 지역사회 전파 차단에 대해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되는 상황”이라며 “이런 문제는 코로나19를 잡고난 후 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 역시 “과거에도 삼성병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건 본질을 흐린 것이다. 지금은 집단감염이 안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안종주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은 “환자를 수용하지 못해 자가격리 중 사망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힘을 방역에 쏟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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