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장녀 배꼽춤 납시오…탈춤 해학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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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입력 2020-03-0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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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신명나는 퇴계원 산대놀이 · 황호택(서울시립대) 이광표(서원대) 교수 공동집필 


제6과장 애사당놀이가 시작되자 넉넉한 몸매의 왜장녀가 등장한다. 덩치가 크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그녀. 그래서일까. 담뱃대를 쥐고 한껏 뱃살을 드러낸 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여기저기 오간다. 배꼽춤과 엉덩이춤이다. 걸죽한 걸음걸이에 적당히 투박하고 적당히 관능적인 왜장녀의 몸짓이 하나둘 이어질 때마다 장고와 북이 장단을 맞춘다. 동시에 구경꾼들은 손뼉을 치며 “얼쑤”하고 호응한다. 그러자 애사당이 왜장녀와 짝을 맞춰 멋지게 승무를 풀어낸다. 부드러우면서도 애잔한 몸짓이 보는 이들을 숨죽이게 한다.
남양주의 퇴계원역 광장에서, 다산 유적지 마당에서도, 그리고 팔도 곳곳에서 퇴계원 산대놀이를 만나는 사람들은 이 장면에 매료된다. 퇴계원 산대놀이의 전체 12과장이 모두 매력이지만 제6과장 애사당놀이에서 왜장녀의 배꼽춤과 애사당의 승무는 단연 독보적이다.

퇴계원 산대놀이의 제6과장 애사당놀이 연행 모습. 서민 생활의 어려움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왜장녀의 배꼽춤과 애사당의 승무가 매력적이다. [사진=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


퇴계원의 상징이자 남양주를 대표하는 전통 연희 퇴계원 산대놀이. 산대놀이는 서울 경기지역에서 연행 전승되어온 가면극 가운데 하나다. 가면극은 탈을 쓰고 춤, 노래, 대사를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연극적 공연이다. 음악 무용 문학이 만난 종합예술극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탈놀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마을 굿 계통의 탈놀이다. 안동의 하회별신굿이나 강릉의 관노가면극이 이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산대놀이 계통의 탈놀이다. 조선시대 산대도감이 주관했던 산대놀이패 연기자들의 탈놀이다. 퇴계원산대놀이를 비롯해 송파산대놀이, 애오개(아현)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가 여기 해당한다.
산대(山臺)는 산처럼 높은 무대라는 뜻이다. 무대를 만들어 놓고 한바탕 신나게 탈춤판을 벌이는 것이다. 고려시대 때 본격화한 산대놀이는 조선시대에 들어 산대도감(山臺都監)이라고 하는 관청에서 관장했다. 그렇다보니 중국 사신의 영접이나 왕실 의례 등 공식행사에서 주로 연행(演行)되었다. 공식 행사에 참여하다보니 산대놀이꾼들은 나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았다.

호방하고 선 굵은 춤사위 '산대놀이'···조선 장터 탈춤의 전형

그러나 비용 부담이 커지자 18세기 이후 산대도감의 기능이 대폭 약화되었다. 당연히 공식적인 산대놀이 기회도 대폭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산대놀이꾼들은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야 했다.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서울 경기 지역 곳곳으로 흩어져 스스로 탈춤을 기획하고 연행하는 방식이었다. 공연 비용은 지방 유지들의 기부 등에 의존했다. 간혹 국가 행사가 있을 때는 공식적인 산대 연희를 실행했지만 기본적으로 산대놀이는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스스로의 콘텐츠와 기획력을 무기로 각자도생하는 것이었다. 정월대보름 초파일 단오 유두 백중 추석 등의 절기에는 경향(京鄕) 각지를 돌며 공연을 펼쳤다.
남양주 퇴계원은 산대놀이패들에게 매력적인 무대였다. 퇴계원은 교통의 요지였고 그래서 역원(驛院)이 있었다. 공적으로, 사적으로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어서 자연스레 상업이 발달했다. 100여 호의 객주와 역원이 성행한데다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으니, 탈춤 놀이패가 모이기에 제격이 아닐 수 없었다. 퇴계원은 이렇게 산대놀이의 최적 무대로 자리 잡았다.

퇴계원 산대놀이 제7과장 팔먹중놀이 연행 모습. 승려들의 파계와 불교의 타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고승인 노장의 몸짓이 시원시원하다. [사진=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


퇴계원산대놀이엔 파계승, 몰락한 양반, 하인, 영감, 승려, 할미, 첩, 사당 등 온갖 군상이 등장한다. 그들은 욕망을 탐하고 도덕을 무너뜨린다. 그런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풍자한다. 관객들과 함께 웃고 함께 탄식한다. 퇴계원산대놀이는 길놀이, 서막고사에 이어 12과장으로 이뤄진다.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중과 상좌놀이, 제3과장 먹중놀이,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놀이, 제5과장 침놀이, 제6과장 애사당놀이, 제7과장 팔먹중놀이, 제8과장 신장수놀이, 제9과장 취발이놀이, 제10과장 말뚝이놀이, 제11과장 포도부장놀이, 제12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파계승을 통해 승려들의 타락을 풍자하고 양반과 서민들의 대결을 통해 양반 계급사회를 비판한다.
제7과장에선 도사 같은 분위기의 노장(노승)이 등장한다. 송낙을 깊게 눌러쓰고 백팔염주를 땅에 닿을 듯 길게 늘어뜨린 노장의 모습은 사뭇 신비롭다. 박진감 넘치는 노장의 몸짓은 하나하나가 관객들을 긴장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하지만, 도를 멀리한 채 여성을 탐하려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마는 노장의 모습이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다가온다.

나이든 고승과 소무[사진=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


풍자와 해학을 통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퇴계원산대놀이는 우선 볼거리가 많다. 대사는 비교적 적고 표정과 몸짓 연기가 많다. 삼현육각(三絃六角·피리 대금 해금 장고 북)의 반주에 맞춰 경기민요가 시종 탈춤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퇴계원산대놀이는 대사보다 몸짓과 표정을 좀 더 부각시킨다. 그래서인지 춤사위는 선이 굵고 시원하고 호방하다. 이에 비해 송파산대놀이는 춤사위가 여성적이며 섬세한 편이다. 양주별산대놀이 춤사위는 유연하고 부드럽다. 퇴계원산대놀이가 이렇게 호방하고 넉넉한 분위기의 탈춤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퇴계원 지역의 역동성에 기인한 것이다. 퇴계원산대놀이를 두고 조선시대 도시탈춤의 전형이라 평가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한양 가는 길목이자 교통의 요지 퇴계원, 탈춤놀이 최적 무대

퇴계원산대놀이꾼들은 1920~1930년대까지 신나게 연행을 했다고 한다. 퇴계원에 장이 크게 서면 산대놀이패들이 들이닥쳐 한바탕 연행을 벌였고 그것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퇴계원을 근거지로 삼되 수시로 다른 지역으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이 땅의 민초들은 퇴계원산대놀이꾼들과 함께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 시름도 잊고 카타르시스를 얻었다. 그 덕분에 공동체 소속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산대놀이를 중심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모이자 조선총독부는 이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를 지나면서 일제는 탈과 의상, 악기를 빼앗아 불태웠고 그로 인해 퇴계원산대놀이는 조금씩 쇠퇴해갔다. 그러다 6·25전쟁의 참화로 퇴계원산대놀이는 힘을 잃었고 그 후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1980년대 들어 전통과 탈춤을 다시 인식하게 되면서 퇴계원산대놀이의 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1990년 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가 결성되었다. 드디어 1991년 재연 공연이 열렸고 의상과 탈 등을 고증 복원해 1997년 제대로 된 복원 공연이 이뤄졌다.

말뚝이의 해학스런 표정[사진=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


그 후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는 쉼없이 달려왔다. 매년 한차례 정기공연은 기본이고 연희자를 양성하고 다양한 공연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해왔다. 남양주와 퇴계원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연행을 펼친다. 영동난계국악축제, 남산골 한옥마을 초청공연, 노원 탈축제, 도봉구 북 페스티벌 등 팔도를 누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퇴계원산대놀이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0년 퇴계원산대놀이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제도적으로 좀 더 안정된 전승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연 인프라가 부족한 점이다. 퇴계원산대놀이 경력 16년차인 윤지한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 사무국장은 “아직 전수관도 없고 공연 공간도 부족하다”고 아쉬워한다. 서울 송파구는 송파산대놀이를 그 지역의 핵심 문화콘텐츠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송파구 석촌호수에 서울놀이마당을 조성해 전통 연희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남양주에도 이러한 산대놀이 공간이 있어야 한다.

퇴계원 산대놀이에 등장하는 포도부장의 표정이 사뭇 근엄하다. [사진=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


이 땅의 민초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퇴계원산대놀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핍박과 훼손, 단절이라는 수난까지 겪어야 했던 퇴계원산대놀이. 하지만 꿋꿋이 살아남아 현재 남양주를 대표하는 연희로 다시 자리 잡았다. 예로부터 탈춤이 성행한 지역은 낭만적이고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요지였다.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자신감 넘치는 곳이었다.
2020년은 퇴계원산대놀이가 복원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5월에 30회 정기공연이 열린다. 지난해 퇴계원역 앞 광장무대에서 정기공연을 본 한 남양주시민이 인터넷 포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지루함 없이 너무 재미있던 퇴계원산대놀이, 올해가 29주년 29회였는데 내년엔 30주년이 된다고 해요. 내년에 정말 더욱 기대되는 공연이에요. 못 보신 분들은 내년에 꼭 보세요!” <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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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 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참고문헌>
퇴계원산대놀이, 월인,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
경기도 무형문화재총람,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한국의 가면극, 열화당, 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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