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야기②] “밸런타인데이, 어떤 초콜릿 선물했나요?”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신보훈 기자
입력 2020-02-16 13:1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빈투바’ 초콜릿 판매점 ‘피초코’ 댄 킴 대표 인터뷰

[편집자주] 성수동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등 초호화 주거시설 반대편에는 수제화 거리‧철물점의 낡은 흔적이 공존했습니다. 골목 곳곳에는 저마다 개성을 살린 카페와 음식점, 뷰티 전문점이 자리했습니다. 여기에 소셜벤처기업이 빈 공간을 채우면서 성수동은 문화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성수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테이블 하나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남사장님과 건너편 꽃집 여사장님의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커피를 사면 꽃집 안에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반대편 음식점에선 도시를 떠나 귀농한 농부가 직접 채소를 길러 반찬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선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성수동이 궁금해졌습니다. 넓은 공간 속 작은 공간들, 그 한 곳 한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성수동에 가게를 낸 자영업자, 세상을 향한 ‘임팩트’를 준비하는 소셜벤처 창업가, 본사 이전으로 성수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수식 불가능한 문화예술인, 그리고 오랜시간 성수동의 변화를 함께한 평범한 사람들.

성수동은 그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2020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수동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은 ‘성수동을 기반으로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 성장을 지원하는’ 루트임팩트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주경제X루트임팩트의 ‘성수동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 친구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 선물하는 초콜릿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편의점 진열대에 놓인 초콜릿 바부터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세트까지.

성수동에는 조금 특별한 초콜릿이 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낸 초콜릿이 아니다. 카카오빈 재배부터 발효‧건조‧가공까지 전 단계를 ‘초콜릿 메이커’가 관여하는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이다.

카카오로 유명한 베네수엘라에서 건너온 댄 킴‧존 킴 대표는 한국에 초콜릿 문화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피초코(p.chokko)’를 오픈했다. 카카오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성수동에 방문했다가 동네 분위기에 매료돼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댄 킴 대표는 밸러타인데이를 나흘 앞둔 10일 오후 피초코에서 만났다. ‘초콜릿 업계 특수’를 맞아 초콜릿 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가게 문을 닫고, 지하 작업실에서 일하다 나와 입고 있던 작업복 그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피초코 댄 킴 대표가 카카오빈으로 초콜릿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신보훈 기자)]


-월요일은 아예 휴무고, 다른 날도 오후 5시까지만 영업을 하네요?

“원래 피초코는 랩(Lab)실 개념으로 초콜릿 연구를 위해 오픈했어요. 우리가 만든 초콜릿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 오후 1~3시에만 매장을 열었는데 그때는 앉을 곳도 없었어요. 초콜릿을 맛보고, 핫초코‧초콜릿 티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쇼룸처럼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죠.”

-매장 운영비도 안 나올 것 같은데요.

“가게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까지 운영하고, 연구실에서 만든 초콜릿을 다른 카페나 베이커리에 납품하고 있어요. 카카오와 초콜릿 문화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는데, 우리 힘으로만 전파하기는 힘들잖아요. 카페나 다른 분야에 전문성 있는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납품하고 소통하는 거죠. 성수동에 있는 여러 카페도 커피를 팔면서 초콜릿 음료를 필요로 하는데, 그럴 때 피초코를 찾아요.”


[밸런타인데이, 성수기]

마침 피초코를 찾은 날도 ‘대목’을 앞둔 상태였다. 밸런타인데이가 초콜릿 업체들의 상술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초콜릿 메이커로서 아쉬운 부분이에요. 사람들도 초콜릿을 잘 모르고 겉포장이 예쁘면 선물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라면서도 “다른 면으로는 감사해요. 이런 날을 열심히 준비해서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잖아요”라며 웃어 넘겼다.

초콜릿은 빈투바 과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카카오빈 껍집을 제거해 발효 및 건조를 거치고, 카카오 닙스(cacao nibs)를 가는 방법에 따라 산미를 낼 수도 있고, 달콤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커피 맛이 생두(green bean) 로스팅에 따라 정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초콜릿을 제작하는 전 과정에 관여하다 보니 재료를 조금씩 변경하면서 다양한 맛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수르델라고 다크 초콜릿은 베네수엘라 수르델라고 지역에서 나오는 카카오를 70% 함량으로 만든다. 솔트앤페퍼 초콜릿은 73.5%의 블랙 초콜릿에 핑크 후추와 바다 소금을 토핑한다. 또, 화이트 초콜릿은 베네수엘라 카카오버터 34%를 넣는다. 이들 초콜릿은 와인이나 위스키, 수제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빈투바 초콜릿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카카오 초콜릿 제작과정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가지고요. 한 일주일 정도 걸쳐 만들 때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까 기대감을 갖기도 해요. 빈투바는 그런 매력이 있죠. 새로운 제품을 만들 때 어떤 맛을 예상하는데,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때 ‘유레카’를 외치기도 합니다.”
 

[성수동에 위치한 피초코 매장. 1층에서는 초콜릿과 핫초코를 맛볼 수 있다. 지하에는 초콜릿 연구소가 있다.(사진=신보훈 기자)]

[베네수엘라, 그리고 카카오]

피초코는 초창기부터 베네수엘라 카카오빈을 주로 사용했다. 피초코라는 상호도 베네수엘라 카카오빈 이름을 땄다. 댄 킴의 고향은 한때 카카오 생산량이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카카오가 많고, 카카오 농장에서 축적한 발효 및 건조 경험도 남다르다. 초콜릿은 카카오빈 상태가 특히 중요한데, 발효를 잘못하면 빈을 쓸 수 없다. 반대로 이 과정을 잘 거치면 더 좋은 품종으로 판매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베네수엘라 카카오 시장은 무너진 상태다. 카카오 시장은 정부에서 관리해 왔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대통령이 두 명이다. 한 명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고, 다른 한 명은 반정부 시위를 이끌면서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다. 정치적 혼란은 경제도 망가뜨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2011년 1만 달러를 넘었지만, 2018년 기준 3분의 1 토막이 났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9586%를 기록했다. 2018은 13만%였다.

달콤한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쌉쌀한 맛이 난다. 카카오의 나라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 석유매장량 국가다. 남미에서도 잘 사는 나라에 속했지만, 정치‧경제적 불안과 함께 치안이 악화됐고, 국민은 더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달콤함과 씁쓸함은 언제나 한 끗 차이다.

“대학교에서 회계를 전공했어요. 자격증을 따고, 세무법인에서 일했죠. 베네수엘라가 정치적으로 힘들어지니까 치안이 불안해졌어요. 총기 소지는 불법인데, 사람보다 총이 더 많아요. 밤에 돌아다니면 영화에서처럼 지나가는 창문으로 뒤에 누가 오나 보고 다녔을 정도에요. 존이랑 상의한 끝에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한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조금 더 알고 싶기도 했고요.”

행선지를 한국으로 정했지만, 성수동에 자리 잡는 건 계획에 없었다. 우연히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에서 진행하는 카카오 관련 세미나를 들으러 성수동에 왔고, 조용하면서도 ‘익사이팅’한 분위기가 좋아 그대로 눌러앉았다.

“처음엔 가게를 세우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편안하게 족구와 농구를 하고, 고기 구워 먹고, 맥주를 마셨죠. 지금이야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동네 주민들과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어요. 서울숲길은 아직 과거의 모습이 남아 있어요. 성수동이 유명해지면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우리도 자극받아서 더 열심히 하기도 하죠. 트렌드가 바뀌고 성수동도 바뀌었지만, 저희한테는 똑같은 느낌이에요.”


베네수엘라를 떠나 한국, 성수동에 자리 잡은 그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최근에 공부삼아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어요. 이와 함께 초콜릿‧카카오 문화를 발전시키고 싶어다. 지금은 가게와 재조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초콜릿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나누는 방향도 생각 중이에요. 의외로 빈투바 초콜릿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좋은 초콜릿을 만들 수 있도록 클래스 문화까지 퍼뜨리는 미래를 그리고 있어요.”


*피초코에서는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다. 그 대신 빈투바 초콜릿으로 만든 핫초코를 맛볼 수 있다. 초콜릿은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구매하기 전 시식도 가능하다. 먹는 초콜릿마다 맛이 모두 다른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성수동 이야기'는 아주경제와 루트임팩트가 함께 만듭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