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정 의원이 전한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DJ·이해찬' 인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최신형 정치팀 팀장
입력 2020-02-10 22:0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기생충', 작품상까지 4관왕…오스카 역사 새로 쓴 봉준호

  • 김한정 의원, 13대 총선 당시 봉준호와 이해찬 선거운동

  • 김한정 "DJ 국민의 정부, 한국 영화의 도약 실로 눈부셨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석권한 데 대해 "101년 한국 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 역사도 새로 썼다"고 치켜세웠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생충'은 세계 영화 산업의 본산인 할리우드의 장벽을 넘어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았다"며 "한국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봉 감독의 인연을 소개했다.

김 의원은 "기쁜 소식을 접하고 나니, 풋풋한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봉준호 감독이 생각난다"며 자신의 저서인 '김한정의 길'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했다.

그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당시를 언급, "저는 관악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이해찬 선배의 선거운동 책임을 맡아 대학 후배들과 동생의 친구들까지 자원봉사자 선거운동원으로 동원해 지지 운동에 나섰다"고 전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공개한 자신의 저서 '김한정의 길' 중 한 페이지. 김 의원은 13대 총선 당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선거운동을 했다고 밝혔다. [사진=김한정 의원 페이스북]


이어 "그 자원봉사자 중에는 막냇동생의 고교 단짝이자 연세대 사회학과 새내기였던 봉준호 감독이 있었다"며 "그는 '평민당 이해찬'이라고 쓴 노란 깃발을 휘두르며 신림동 산동네를 열심히 누비고 다녔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봉준호 감독이 새 역사를 쓰기까지 많은 영화인들의 피눈물이 있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역할과 기여도 빠뜨릴 수 없다. 봉 감독 이야기에 왜 DJ가 나오냐고요?"라고 말했다.

그는 "DJ는 취임 전부터 문화 산업의 가치와 중요성에 주목하고 문화 진흥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강조했다"며 "재임 중 2000년 문화 부문 예산이 사상 처음 전체 예산의 1%가 되도록 편성했다"고 부연했다.

김 의원은 "재임 중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을 위한 스크린 쿼터제를 지키고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1500억원에 달하는 영화진흥기금을 조성·지원하는 등 한국 영화의 장기적인 발전의 버팀목이 돼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정부에서 한국 영화의 도약은 실로 눈부셨다"며 "영화인들은 DJ의 공헌을 잊지 않고, 2003년 퇴임 김대중 대통령에게 '춘사 나운규 예술영화제'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한국 영화가 세계 속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했던 문화 대통령 김대중! 단비와 같은 기쁜 소식을 듣고 하늘에서 기뻐하실 것"이라며 "봉 감독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냅니다. 봉준호 장하다!"라고 글을 마쳤다.

다음은 김한정 의원 페이스북에 올라온 '봉준호 감독' 관련 글 전문이다.

오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101년 한국 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 역사도 새로 썼습니다.

'기생충'은 세계 영화 산업의 본산인 할리우드의 장벽을 넘어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총 4개 부문을 석권하며 한국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쁜 소식을 접하고 나니, 풋풋한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봉 감독이 생각납니다.

제가 쓴 책 '김한정의 길'에 소개한 적이 있는 일화입니다(책 내용을 첨부합니다).

1988년 저는 관악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이해찬 선배의 선거운동 책임을 맡아 대학 후배들과 동생의 친구들까지 자원봉사자 선거운동원으로 동원하여지지 운동에 나섰습니다.

그 자원봉사자 중에는 막냇동생의 고교 단짝이자 연세대 사회학과 새내기였던 봉준호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민당 이해찬'이라고 쓴 노란 깃발을 휘두르며 신림동 산동네를 열심히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랬던 그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고 오스카상을 휩쓸다니 감격스럽습니다.

오늘 봉 감독이 새 역사를 쓰기까지 많은 영화인들의 피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과 기여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봉준호 감독 이야기에 왜 김대중이 나오냐고요?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문화 산업의 가치와 중요성에 주목하고, 문화 진흥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강조했습니다.

재임 중 2000년 문화 부문 예산이 사상 처음 전체 예산의 1%가 되도록 편성했고, ‘적극 지원하되 간섭은 말라'는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재임 중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을 위한 스크린 쿼터제를 지키고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1500억원에 달하는 영화진흥기금을 조성·지원하는 등 한국 영화의 장기적인 발전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한국 영화의 도약은 실로 눈부셨습니다.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굵직한 상들을 잇달아 수상했고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도 치솟았습니다.

영화인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공헌을 잊지 않고, 2003년 퇴임 김대중 대통령에게 '춘사 나운규 예술영화제' 특별공로상을 수여했습니다.

당시 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은 "국민의 정부가 정책적으로 영화산업의 인프라를 확충해 오늘날 한국 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았다"며 시상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날 시상식에 대통령님을 모시고 갔더니, 봉 감독이 저한테는 잘 지내시냐 한마디도 않고 "정희 누나 잘 있어요?"며 제 아내 안부만 물어 약간 섭섭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영화가 세계 속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했던 문화 대통령 김대중! 단비와 같은 기쁜 소식을 듣고 하늘에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봉 감독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냅니다. 봉준호 장하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한정 의원실 제공]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