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1) 13세기 '동방견문록'엔 日 국호가 '지팡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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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1-0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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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시리즈를 시작하며]

한 사람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나라’이지만, 그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숙명처럼 부여되는 국적은 한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들 중에서 일본에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머릿속에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큽니다.

인간이 즐기자고 만든 스포츠경기이지만, 한국과 일본이 시합을 하게 되면 매스컴에서는 ‘숙적’과 대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숙적(宿敵)의 사전적인 의미는 ‘오래전부터의 원수’입니다. 이웃나라를 ‘숙적’으로 표현하는 심리적인 배경은 국가를 동일한 이익을 추구하는 민족의 단위로 보는 정치적인 인식입니다.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주의 국제정치론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하지만 국가를 보는 또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한 생물체로서 욕망을 추구하며 한평생을 살다 떠나는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일본이라는 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나가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풍경을 그대로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판단에 얽매이지 않는 관점에서 일본과 일본인의 삶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중립적으로 그려 보고자 합니다.

<노다니엘>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MIT에서 비교정치경제학을 전공하며 일본전문가로 교육받았다. 평성(平成)의 시대가 시작되던 1989년 3월에 도쿄에서 연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다. 학자로서 홍콩과기대, 중국인민은행 등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컨설팅업에 종사하며 미국과 일본의 회사에서 일본과 관련한 일을 하고, 현재는 서울에서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나라를 대개는 한국이라고 부른다. 이 나라의 공식명칭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대개 Korea라고 하고,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는 ‘오 필승 코레아’를 외쳤는데 그 영문표기는 Corea다. 불어로 이는 Corée이다. 게다가 이웃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지금도 한국을 조선(朝鮮)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우선 이것만 따져도 명칭이 여섯개다.


니혼 vs 닛폰

일본은 어떤가? ‘일본’이라는 한글표기에 대응하는 일본어는 한자로 日本이다. 그런데 이 어휘를 읽는 방법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니혼’이고 또 하는 ‘닛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화를 나누는 일본인들이 나라 이름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한복판에 있는 유서 깊은 다리인 일본교(日本橋)는 니혼바시라고 불리는데, 오사카에 있는 다리인 일본교는 닛폰바시라고 불린다. 일본대학(日本大学)의 일본은 니혼이라고 발음하는데, 일본체육대학(日本体育大学)의 일본은 닛폰이라고 한다.

도대체 왜? 우리가 볼 때 말도 안 되는 이 혼란의 유래는 Nippon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출발한다. 중국에서 온 한자를 일본인이 읽는 방법에는 한자의 고향인 중국식 발음에 기초한 음독과 일본에서 쓰는 뜻에 기초한 훈독이 있다. 日의 경우 음독은 니치(ニチ) 또는 지츠(ジツ)이고 훈독은 히(ひ) 또는 카(か)이다. 本의 음독은 혼(ホン)이고 훈독은 모토(もと)이다. 공식용어는 음독을 따른다는 대체적인 원칙을 따진다면 日本이라는 국명의 일본식 발음은 니치혼이나 지츠혼 아니면 연음법칙에 따라 닛폰 또는 짓폰이 되어야 한다.

‘니혼’이라는 발음은 니치혼에서 치를 뺀 것이다. 이 니혼이 닛폰으로 바뀐 것은 1934년의 일이었다. 그해에는 주권국가론이라는 담론이 벌어지면서 12월에 일본문부성이 국어조사회를 설치하였는데, 그 위원회가 정한 일본국의 영문표기가 Nippon이다. 당시 일본의 국명은 대일본제국이었고, 그 나라 사람이 외국을 간다면 여권에는 Nippon이라고 표기된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태양을 가리키는 日이라는 글자가 왜 일본국명에 들어갔는가이다. 日本이라는 한자 표현은 ‘태양의 근본’이라는 뉘앙스를 물씬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해상자위대의 욱일기가 대표적인 표상이다. 현재 해상자위대가 쓰는 깃발은 태양광선이 열여섯 갈래로 뻗쳐 나가는 소위 십육조욱일기(十六条旭日旗)이다. 이 깃발의 사용에 대하여 한국을 포함한 외부에서는 군국주의의 상징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일본의 관방장관은 2013년 9월 26일의 기자회견에서 욱일기가 “일본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이것이 정치적 주장이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하였다.

일본관방장관의 발언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본다. 우선 지금 일본에서 가장 리버럴한 신문인 아사히(朝日)신문은 전전에는 가장 우익적인 신문의 하나였는데, 당시 채택한 회사의 깃발은 회사 이름 그대로 아침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양이었다. 한편 1869년에 그려졌다는 아래의 그림은 새해 아침에 풍요를 기리는 상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논점이 되는 것은 욱일기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가라는 좁은 의미보다, 일본이 과연 해가 시작하는 땅이냐 하는 상징성에 대한 의문이다. 일본국민들에게 암묵적으로 침투된 이 신화적 생각은 일본의 전쟁범죄와 겹쳐져 그 직접적인 피해자인 한국인에게 유난히 예민한 반응을 일으킨다. 2020년의 도쿄올림픽에 욱일기를 사용하겠다는 일본정부의 움직임에 한국정부가 맹렬하게 반대하며 ‘욱일기는 증오의 기’라는 표현을 공공연하게 발언하였다.

지구는 둥글고 따라서 태양은 어느 나라에서도 아침에 떠오르는데, 왜 일본에서 뜨는 해가 문제인가? 일본사람들이 맛이 간 것인가? 일본을 ‘해가 떠오르는 나라’라고 묘사하는 말의 씨앗은 아스카시대의 황족이자 정치가였던 쇼토쿠태자(聖徳太子·574-622)이다. 그가 당시 중국의 수나라에 파견하는 사절단(遣隋使)에게 들려 수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에는 국호가 없었으므로) 일본을 ‘해가 뜨는 나라(日出ずる国)'라고 기술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Nippon이라는 어휘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Japan은 어디서 튀어나온 말인가? 이에 대한 정설은 마르크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근거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인 마르코 폴로가 13세기 후반에 아시아를 탐험하며 본 것을 나중에 제노아의 감옥에 같이 갇혀 있던 로맨스작가 루스티치아노가 글로 남긴 동방견문록(원어는 백만이라는 의미의 Il Milione)에서 일본을 ‘지팡구(Zipangu)'라고 지칭하며 ‘금이 풍부한 고장(a place rich with gold)'이라고 말한 것이 기원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유럽의 해양국가들이 아시아로 빈번하게 항해를 하게 되는데, 주목표는 중국의 관문인 홍콩 및 마카오지역, 즉 당시의 월국(粵國)이었다. 당시 이 지방 사람들은 일본을 닛폰과 가까운 명칭으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휘를 거리가 떨어진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정확히 발음하기 힘든 음성학적 이유로 ‘지팡’ 또는 ‘지팡구(Jepang, Jipang, Jepun, Cipangu)' 등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1492년에 포르투갈의 항해가가 만든 지구본에는 일본이 Cipangu라고 표기되어 있다.

대서양에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을 지나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피할 수 없는 항로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믈라카해협이었고, 그곳에 기항하며 유럽의 항해가나 상인들은 중국의 동쪽에 있는 금이 많은 섬나라 ‘지팡구’에 대하여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결국, 수백년 전에 언어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뱃사람들에 의하여 지팡구가 Jippon이 되었다가 Japan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은 안에서 스스로 붙인 이름(endonym)인 日本과 외부 사람들이 멋대로 부르다가 붙인 이름(exonym)인 Japan이 세트가 되어 국호가 결정된 나라이다.


倭와 和 이야기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화과자를 찾는 사람이 있다. 화과자? 과자인 것은 알겠는데 화는 무엇인가? 일본의 전통적인 과자로, 와가시(和菓子)를 가리킨다.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요캉(羊羹)이 그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 화(和)는 또 어디서 나온 말인가? 이 말의 기원은 왜(倭)이다. 뭐라고? 예쁘게 포장된 화가자의 화와 ‘왜놈’이라는 말의 왜가 같은 뿌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이 일본인을 왜인(倭人)으로 불렀던 것은 다 아는 이야기다. 왜(倭)라는 칭호는 기원전부터 기원 후 7세기경까지 일본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중국의 남방에서 쓰기 시작했다. 중국의 기원전 전한의 역사를 기술한 <한서(漢書)>에는 “楽浪の海中に倭人有り. 分かれて百余国を為し”라는 표현이 있다. "멀리 바다 건너 왜인들이 사는데 약 백여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다수의 번(藩)으로 나뉘어 각 번을 구니(國)라고 불렀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왜(倭)라는 글자를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글자에는 대체로 3개의 의미 내지는 이미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멀고 험하다는 것이다. 왜인(倭人)은 위(委)의 사람이라는 것인데, 그 원형인 위국(委国)이 중국고전에서 의미하는 것은 중국에서 멀고, 가보면 섬과 산이 많은 험한 지세라는 것이다.

둘째의 의미는, 사람들이 순종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주로 나중에 중국을 지배하는 한족의 관점에서 볼 때 주변에서 중국에 도전하는 종족들보다 멀리 있으며 감히 도전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셋째는, 사람들이 작다는 것이다. 이는 비교적 근대에 가까운 시기에 중국의 북방계와 한반도의 사람들이 가진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데 1603년에 시작되어 250년 이상 지속된 에도시대에 공식적으로 육식이 금지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비밀리에 산짐승을 잡아먹는 사례는 있었겠지만 사무라이를 중심으로 하는 상층부가 오랜 시기를 거쳐 제한된 양의 생선과 콩에 의지하여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탓으로 사람들이 작아진 것이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전후에 정착한 미국식 국제정치학, 즉 국가 간의 관계는 국익이 충돌하는 관계라는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한·일관계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학자 베네딕 앤더슨이 제기했듯이, 국가란 사실 ‘상상 속의 공동체’이며, 국가 간의 관계는 그 공동체 구성원의 관계로 볼 수도 있다. 이 글에서 보듯이, 우선 나라의 이름도 국민이 투표로 정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살면서 어쩌다 들러붙은 명찰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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