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3) 너의 생각이 하느님이다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12-03 15:14
[아주경제 '정신가치'빅시리즈 -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의 재발견]

[시스티나 성당 천장그림인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1475)]




자하문 밖 달동네에 입향(入鄕)


류영모의 고조(高祖) 류동식(柳東植)이 출애굽을 하였지만 그들을 반길 복지(福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는 사람도, 가진 재산도 없이 천리 타향에 와서 삶의 터전을 잡는다는 것은 옛날이나 이제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감히 사대문 성안에는 꿈도 못 꾸고 자하문 밖 차일바위 아래 삼계동천(三溪洞天)에 삶의 닻을 내렸다. 동천(洞天)이란 말은 하늘 동네란 뜻이다. 요즘의 부암동은 아주 다르지만 그때는 달동네요 별동네이다. 그곳에서 수대에 이르도록 100여년 동안 살아왔다.

류명근은 골바위집에서 13살의 나이에 16살의 신부 김완전(金完全)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김완전은 수십리 떨어진 박석고개 너머에서 시집을 왔다. 그때는 아직도 인왕산에서 범이 내려와 집에서 기르는 개를 곧잘 물어 갔다. 돼지우리도 굵은 밧줄로 그물을 엮어 덮어씌웠다. 범이 사람과 담배를 마주 피우자는 것이 아니라, 짐승을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김완전이 시집을 와서 이른 아침에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 오는데, 돼지우리에 짐승이 웅크리고 엎드려 있다가 슬쩍 도망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1890년까지 나라에는 호랑이 잡는 방호군(防虎軍)이 있었다.

종로에서 구두 재료상 '경성피혁'을 경영했던 아버지

류명근은 어릴 때 서당에 다녔다. 류영모의 선조는 높은 벼슬은 못 하였으나 학문의 열의가 있었다. 류명근은 자녀와 손자들에게 직접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가르쳤다. 류명근은 일찍부터 가계(家計)를 돕기 위하여 직업전선에 나가 제화(製靴) 재료상을 하였다. 그래서 구두의 모양을 갖추게 하는 구두골을 잘 만들었다. 나무를 깎아서 오리알을 만들었는데 실물과 같았다. 버리기가 아까워 양말에 구멍난 것을 깁는 데 오래도록 활용하였다. 경성피혁(京城皮革)이라는 상호로 지금의 종로구 종로타워 자리에 있었다.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노백린도 그때 종로에서 피혁상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김완전은 왜소한 남편 류명근과 달리 여걸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옛날 여인들이 거의 그러하였던 것처럼 학문은 배우지 못하였다. 남다르게 부지런하고 뛰어난 재능을 지녀 대한제국인 구한국 군인들의 모자 테두리를 누비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좀 뒤에는 방직공장에서 나오는 자투리 실을 사서 고운 색깔로 물을 들여 방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수공예품을 솜씨 있게 만들었다. 그 물건들은 집에서 쓰거나 남에게 선물하였다.

류영모의 외모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닮았다. 류영모는 문과 쪽이나 이과 쪽이나 다 잘하였다. 다만 예능면에서는 음악과 체육을 잘하지 못하였다. 미술에는 취미와 재능이 있었다. 5년 동안이나 교회를 다녔으나 찬송가를 잘 부르지 못했다. 자신이 지은 시에 음률을 붙여서 노래처럼 읊기를 좋아하였다. "찬송을 나는 할 줄을 몰라. 못 하지만 생각할 때나 일할 때 부르면 참 좋아요"라고 말하였다. 운동경기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어느 날 구기동 집으로 찾아갔을 때 마라톤 경기를 실황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는 "별천지의 일이에요"라고 하면서 라디오를 껐다. 실내 요가체조를 날마다 하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하였다.

몸이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니 함부로 죽지 말라

류영모는 몸의 건강관리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몸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았으면 다치지 말고 가야 해요. 몸이란 자기의 영혼을 담는 그릇입니다.전선(戰線)에 가서 싸우다 죽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죽지 않을 곳에 가서 죽는 개죽음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의 그릇을 다치면 그 영혼도 온전하지 않아요. 증자(曾子)의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하게 받은 몸을 성하게 가지고 가야 해요. 남에게 빌린 그릇을 그 사이 잘 썼으니, 늙어 버렸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아니 꼭 성히 도로 갖다놓는 것이 옳아요. 적극적으로 성해야 합니다."

류영모의 생명은 부모에게서 받은 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류영모의 생각에 있다. 류영모를 살아서 받들고 죽어서 기리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의 생각이 참되기 때문이다. 류영모의 생각은 어버이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다. 오직 하느님에게서 받았기에 귀한 것이다.
 

[다석 류영모.]



몸은 부모에게서 받지만 생각은 하느님에게서 받는다

"생각은 우리의 바탕(本性)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깨달음이라는 하늘에 다다릅니다. 생각처럼 감사한 것은 없어요. 영원히 갈 것은 생각 하나뿐입니다. 영원을 아는 것도 생각 때문입니다. 몸뚱이의 물질 말고 오직 생각뿐인 데가 있을 것이라 해서 하느님, 부처님 하는 것이에요. 위로 올라가는 게 생명이지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아닙니다. 영원히 가는 것은 생각하는 점, 그것뿐입니다. 진리(法)라, 말씀이라 하는 게 이것입니다. "

부모가 자식의 소유일 수 없듯이 자식도 부모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이 땅의 부모는 모두가 양부모(養父母, 원래의 뜻은 생부·생모가 아닌 부모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기른 부모'를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생명의 임자는 하느님이 계실 뿐이다. 하느님이 친부모이다. 그분만이 참아버지이며 참어머니일 수 있다고 류영모는 말했다.

[다석어록]

"우리 앞에는 영원한 생명인 얼줄이 드리워져 있다. 이 우주에는 도라 해도 좋고 법이라 해도 좋은 얼줄이 영원히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이 얼줄을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이 하나의 얼줄을 생각으로 찾아 잡고 좇아 살아야 한다. 이 얼의 줄, 정신의 줄, 영생의 줄, 말씀의 줄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1956)   *얼줄은 성령정신의 탯줄이며 곧 하느님이다.




다석전기 집필=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편집 및 정리=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시리즈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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