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동일한 강물도 지역에 따라 이름이 바뀌다

원철 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입력 : 2019-10-20 15:25
 

 

[원철 스님, 출처: media Buddha.net ]


[원철스님의 ‘가로세로’] 동일한 강물도 지역에 따라 이름이 바뀌다


싸아한 가을기운을 코끝으로 맡으며 신발끈을 조였다. 지난번 북한산 계곡길을 따라 세검정(서울 종로구)에서 옥천암(서대문구 홍은동)까지 시나브로 걸었다. 이번에는 옥천암에서 홍제교까지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를 가득 달고 있는 감나무 몇 그루의 배웅을 받으면서 계곡길로 들어섰다. 산 언저리에서 흘러내린 바위 끝자락을 따라 설치된 나무데크길의 부드러운 촉감이 한동안 발끝에 감기는가 했더니 이내 시멘트 길로 대치된다. 눈의 방향을 저 멀리 향하면 개울 건너 저편 산아래 크고 잘 지어진 새 집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런 개발의 틈바구니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낡고 자그마한 옛집이 주는 포근함에 따스한 정감이 전해진다. 그 집의 담장 밖을 타고 아래로 드리운 수세미 넝쿨과 함께 화분에 심긴 파와 갖가지 채소들이 채마밭 노릇을 하고 있다.
 

[원철스님 제공]



옥천2교는 사람과 차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판 아래로 도시가스관 생활하수관도 같이 지나간다. 그 사이사이에 비둘기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투박하고 거친 시멘트 구조물로 된 교각에는 흰 분비물이 하얀 페인트처럼 길게 선을 그으며 흘러내렸고 여기저기 깃털들이 조각조각으로 흩날린다. 유독 이 다리에만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다. 물 아래에는 오리들이 유유히 떠다니는 풍광이 서로 대비를 이루며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같은 조류인데도 머무는 공간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이내 하천길을 따라 긴 담장이 나타나고 그 위에는 벽화로 수를 놓아 사시사철 피어있는 긴 매화꽃길을 만들었다. ‘취화선’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조선후기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의 ‘병풍10폭 매화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모양이다. 중간걸음으로 길이를 헤아려보니 200여 걸음이 된다. 족히 100m는 되겠다.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굵은 줄기는 진한 검은 먹선으로 처리하여 더욱 굵게 보인다. 꽃잎은 짙은 분홍색으로 색감을 더욱 강조했다. 햇볕에 바랠 것까지 염두에 둔 과장된 빛깔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손덕운’ ‘The gooni’라는 문자가 꽃잎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다. 벽화그림의 재능기부자가 남긴 자기 흔적으로 생각된다.
 

[원철스님제공]




그림길이 끝나니 포방교가 보인다. 다리 위에는 곧 환갑을 맞는다는 재래시장인 포방터 시장(since1960)간판이 내걸렸다. 임진란 후 한양도성을 지키기 위한 포 훈련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또 6·25 당시에도 대포를 설치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서울을 방어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포방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안내판 뒤로 대포와 포병이 함께하는 미니어처가 익살스런 모습으로 서있다.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스타급 요리사가 TV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돈가스집에는 옆골목까지 젊은이들의 긴줄이 이어진다.

돌 깎는 기계가 만든 공장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돌로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자 바로 인구밀집지역이 나타난다. 은행나무 그늘이 가려주는 의자 위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내 산책 동호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잘 다듬어진 소공원과 함께 체육시설이 어우러진다. 건강이 화두인 시대인지라 이용자가 적지않다. ‘건강하세요’라며 인사를 주고받는 이도 더러 만난다. 대접을 받으면서 여유로운 산책을 한껏 즐기는 무리는 단연 댕댕이(멍멍이)다. 조깅하는 이들은 손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며 경쟁하듯 잰걸음으로 바쁘게 걷는다. 그 사이사이로 청소년들의 자전거도 간간이 지나간다. 그런 소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물 가운데 바위 위에는 청둥오리들이 부리를 날개에 숨긴 채 편안하게 졸고 있다.

홍제교 입구에 도착하니 ‘한강7㎞’ 표지판이 나온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물길따라 걷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돌아오는 길은 반복되는 풍광이다. 문득 4대강이 스쳐 지나간다. 금강은 충남 부여지방을 지나면서 백마강으로 바뀌고 영산강도 나주 어귀에서 극락강으로 잠시 이름이 바뀐다. 그렇다면 삼각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한강에 이르는 10㎞의 홍제천도 한 가지 이름으로 부르기는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상류에는 세검정 정자가 제일 유명하다. 그래서 세검정천(洗劍亭川)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괜찮을 것이다. 보도각(普度閣)의 불암(佛巖)을 끼고서 산허리에서 콸콸 흘러나왔다는 옥천(玉泉)의 맑은 샘물이 합해지는 지점부터 청옥 같은 물향기가 살아있는 홍제교까지는 옥천(玉川)이라고 불러야겠다. 예전에는 불천(佛川)으로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있으니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지하철 홍제역 인근에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인 홍제원이 있었다는 표지석이 서있다. 따라서 홍제교 구역부터 한강까지 7㎞를 홍제천이라고 제한해야겠다. 그런데 냇물이 동의해줄까? 1/3을 잘라내도 별다른 불만이 없을까. 그게 좀 염려스럽긴 하다.

 

[원철스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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