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화된 초양극화··· 그 결말은?
영화가 악의 탄생을 구조화된 초양극화의 부산물로 정의한 것은 살인마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의도가 아니다. 지금의 사회구조가 지속되면, 악의 탄생은 필연적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양극화가 구조화됐다는 건 이미 경제학에서도 고전이다. 자본과 토지 등의 생산수단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지는 반면, 노동 생산성은 큰 변화가 없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는 건 이미 1800년대 칼 마르크스가 예견했다. 구조화됐다는 건 레일 위에 올랐다는 의미다. 출발한 열차가 도달할 목적지가 정해졌다는 뜻이다. 그것은 울분에 찬 조커들이 우글거리는 고담시다.
2090년이 되면 중산층은 화석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계층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대 공대 유기윤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90년이 되면 우리 사회는 0.003%의 플랫폼 소유주와 플랫폼 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99.997%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프레카리아트, 즉 불안한 계층으로 전락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가속화된 초양극화의 결과다. 생산성이 극대화된 AI(노동력)를 무한 생산할 수 있는 재벌만이 플랫폼 소유주가 될 수 있다.
노동자들 간의 소득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지난 국감 기간 중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0.1% 상위 소득자 1만8005명의 총소득은 하위 17%인 324만명의 총소득과 맞먹었다. 0.1% 고소득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8억871만원으로 중위 소득자의 31배를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가 정유정은 사이코패스를 다룬 소설 '종의 기원'을 쓴 이유를 "앞으로 이런 살인마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라고 했다.
◆조커의 대량생산, 막을 수 있을까?
조커의 탄생에 군중이 열광하는 바로 그 순간, 동시에 베트맨이 탄생했다. 성난 군중이 당긴 방아쇠에 쓰러진 토마스 웨인 부부 옆에서 통곡했던 유일한 생존자 브루스 웨인. 그가 바로 고담시를 구할 영웅 베트맨이 된다.
브루스 웨인은 불행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브루스 웨인과 아서 플렉의 가장 큰 차이는 막대한 상속 재산이었다. 브루스 웨인에겐 충직한 집사와 평생 먹고살 걱정 없는 유산이 있었다. 그냥 타고 다녀도 좋은 차를 굳이 막대한 돈을 들여 베트카로 튜닝하고, 방탄이 되고, 심지어 근거리는 날 수 있는 특수 의상도 제작할 만큼 충분한 돈이었다.
아서 플렉에겐 자신을 학대하는 계부와 그를 방치하는 엄마가 전부였다. 망상에 시달리는 엄마를 먹여살리기 위해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구두닦이 통을 메고 고담시 골목을 누비며 유년시절을 보냈을 게 뻔하다. 계부의 구타로 괴기하게 웃는 그에게 손님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거부와 부정, 좌절은 그의 삶에선 일상적인 일이었다. 토마스 웨인이 자신의 아버지일 수 있다는 기대는 엄마의 망상으로 밝혀지고, 코미디언이 될 것이란 꿈은 조롱거리가 됐다. "내 삶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미디였다"는 아서 플렉의 대사는 웃픈 그의 현실을 대변한다.
좌절의 반복으로 악은 결국 탄생한다. 실제 양극화는 범죄율·자살률·이혼율 등 대표적 사회갈등 지표를 악화시킨다. 한국은행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10만명당 범죄발생 건수는 1990년 2741건에서 2009년 4356건으로 1.6배 많아졌다. 같은 기간 살인건수는 1.8배가 늘었다. 이 기간 한국은 연평균 7%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뤘다.
국회 미래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2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다른 국가들은 갈수록 자살률이 줄어드는데 한국은 유독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 20~30대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미국의 3배, 일본의 2배가 넘는다. 자살 미수자들이 말하는 자살 시도 이유는 대부분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알 수 없어서"라고 한다.
허종호 연구위원은 "뒤르켐이 100년 전 '자살론'에서 이미 자살이 사회병리 현상임을 밝혔는데도, 한국은 아직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범죄자와 자살 시도자를 사회구조의 피해자로 보는 시각과 개인의 악행으로 보는 관점은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아서 플렉이 자신의 조커가 된 이유를 "사람들이 나에게 상냥하지 않아서"라고 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