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국에서 한국으로 번지는‘제2의 일본’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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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19-09-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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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령화, 국가부채 급증, 수출 부진과 디플레이션에 따른 공급 과잉과 구조조정 불가피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21세기 들어 글로벌 경제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무엇일까?  흔히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을 꼽는다. 이로 인해 일본의 자존심이 구겨질 만큼 구겨졌다. 그 이후 2∼3위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경제적 힘이 막강해졌다. 반면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의 먹구름은 근자에 아베노믹스 효과로 수출이 회복되면서  걷히고 있다. 기업의 채산성이 호전되고 일자리가 남아돌 정도로 실업률이 현저하게 호전되고 있지만 장기불황의 여파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를 호령하던 일본 경제의 위력이 무너진 것은 삽시간이었다. 그 충격파는 3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생겨난 신조어가 ‘J의 공포(일본화: Japanification·일본식 장기불황)'이다. 지구상의 대부분 국가들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쓰라림과 후유증이 너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에 또 다른 두려움이 공습하고 있다. ‘R(Recession)의 공포’이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회복세를 보이던 10년 호황 사이클이 급격하게 꺾이고 있는 것이다. 주범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이다. 중국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주는가 싶더니 미국 경제에도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EU 탈퇴), 미·이란 갈등, 홍콩 반정부 시위, 한·일 무역 전쟁 등 동시다발적 악재가 터져 나온다. 점입가경이다.

과연 누가 ‘제2의 일본’이 될 것인가? 글로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중국 혹은 한국, 아니면 영국이나 다른 제3국이 될 것이라는 설이 돈다. ‘R의 공포’는 받을 수 있는 잔이지만 ‘J의 공포’는 쉽게 수용할 수 없는 독이 든 성배인 셈이다. 1990년 시작된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은 당시까지 계속된 장기 호황이 빌미를 제공한 거품 경제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 혹자는 1985년 일본과 미국 등 5개 선진국이 체결한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화 가치의 2배 절상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부동산 가격 하락, 산업의 공급 과잉, 국가부채의 급증(GDP 대비 240%로 증가), 저출산·고령화 등에 따른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불황 속 물가하락)이 심화되었다.

가정 먼저 주목된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의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면서 이제는 6%대 성장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이 정도 성장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실제 성장률은 3∼4%도 되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 시각이다. 1990년대 초의 일본과 현재의 중국 경제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 이를 부추긴다. 언제 거품이 꺼질지 모를 천정부지의 부동산 가격, 급증하고 있는 정부·기업·개인 부채, 자동차를 비롯하여 전 산업에 걸쳐 있는 공급 과잉, 고령화로 빠르게 늙어가는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일본과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중국의 내수 시장이 일본보다 크고, 수출이 여전히 크게 줄지 않고 있는 것을 이유로 든다.

고령화, 국가부채 급증, 수출 부진과 디플레이션에 따른 공급 과잉과 구조조정 불가피

중국이 의외로 강하게 버티면서 ‘제2의 일본’에 대한 불똥이 갑자기 한국으로 옮겨 붙었다. 우리가 일본식 경제 침체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경기 순환적이 아닌 구조적 장기 불황이라는 점에서다. 상당수 전문가들 사이에 한국이 이미 일본식 불황의 터널에 진입하였다는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그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빠른 속도의 고령화이다.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경제가 급격하게 시들해지고 있다. 둘은 국가부채의 급증이다. 비생산적 복지 증가나 국가 백년대계 없는 포퓰리즘이 남발된다. 셋은 수출 부진과 제조업의 붕괴이다. 디플레이션으로 연결되면서 산업 전반에 걸친 공급 과잉, 이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과 지역 경제의 소멸 등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문제는 우리가 일본식 장기 불황의 터널에 이미 진입하고 있다는 현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올라갈 때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상승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와 일본이 처한 입장은 현저히 다르다. 일본은 선진국, 그것도 제2의 경제대국 반열에 있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가고, 그 사이에 재기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과 유사한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을 맞으면 거의 끝장이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폭삭 주저앉을 확률이 높다. 향후 10년 내에 선진국 경제권에 들어가지 못하면 ‘중진국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제2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가 아닌, 일본화가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이렇듯 한국 경제가 가라앉고 있고, 기업은 침몰하고 있는데 어떠한 대책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부는 눈과 귀를 닫고 있는지 여전히 우리 경제가 잘 굴러가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재계에서는 우리 경제가 버려진 자식이 되었다고 울분을 토한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이 이미 도를 넘어선 지는 오래다. 생겨나지도 않아야 될 정치 이슈가 불거지면서 두 달 가까이 입에 담기도 싫은 불편한 이슈들이 전국을 달군다.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져 한쪽이 백기를 들어야만 사태가 끝날 것 같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불편할 때가 또 있었을까? 지금도 시간은 어김없이 미래를 향한다. 실시간으로 제2의 일본이 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호(號)’의 표류를 멈추게 할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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