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투자자보호’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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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입력 2019-09-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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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회장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장]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그리스 아티카 지역의 강도로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는데, 그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침대에 누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서 죽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끝이 나는데, 그를 잡아 침대에 누이고 똑같은 방법으로 머리와 다리를 잘라내어 처형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바로 이 신화에서 유래된 말로 자기 생각에 맞춰 남의 생각을 뜯어 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를 말한다.

2017년 9월 정부는 ‘투자자보호’를 내세워 ICO(가상화폐공개)를 금지했다. 그리고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21일 암호화폐 투자 사기로 무려 2조7000억원이나 되는 피해 금액이 발생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정부가 ICO 금지를 발표하고 어떠한 조치를 취했기에 그 짧은 기간에 2조7000억원이나 되는 투자 사기가 발생됐을까?

지난해 11월 서울대 출신들이 모여 만든 스타트업 ‘프레스코’가 정부의 ICO 금지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본안 심사를 통과한 이 소송이 본격 심의에 들어가자 금융위원회는 부랴부랴 ICO 금지에 직접 공권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공권력 행사 부존재’라는 궁색한 변명과 함께 암호화폐를 재산권으로 볼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반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암호자산이라는 상품을 가치 있는 재산으로 인정하고 거래를 한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암호자산을 부정할 게 아니라 암호자산 거래 과정에서의 불법, 편법, 사기 행위 등을 감시하고 견제해 선량한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며 의무다. 암호화폐가 재산이다 아니다는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ICO는 IPO(기업공개)와 달리 투자자보호 절차가 없다는 주장을 했는데, 투자자 보호 절차가 없다면 그런 절차를 만들어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며 의무다. 결국 ICO 금지 조치 후 2조7000억원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때까지 정부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공권력 행사 부존재’라는 답변을 통해 공식적으로 헌법재판소에 밝힌 것이다.

최근 은행의 권유로 독일 DLS에 투자하여 원금의 95%까지 손실을 보는 투자자들이 나타났다. 정부가 인가한 상품이고 정부가 관리하는 은행에서 판매한 상품이다. 정부는 과연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지켜봐야겠지만, 지난날 키코 사태나 저축은행 사태를 돌아볼 때, 투자자 보호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을 바라보면서 정부가 ‘프로크루스테스’로 보이고 ‘투자자보호’라는 단어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보이는 게 나 혼자만의 시각일까? 우리를 구해 줄 영웅 테세우스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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