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금융정책은 겉치레 사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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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
입력 2019-08-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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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  [사진=금융소비자원]

국내 경제가 어렵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국민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경제의 한 바퀴인 금융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정책은 상황에 따라 당초 목적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 땐 더더욱 그렇다. 다만 목적과 철학이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하더라도 현실적인 무리가 존재한다면, 정책 도입의 속도와 방법 및 강도 등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금융정책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먼저, 무리한 성과를 보여주려 하는 사례다. 인터넷전문은행 얘기다. 정부는 금융산업의 규제완화 성과를 내기 위해 지난 상반기 인터넷은행 2곳을 더 인가하려 했다. 하지만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정부는 각종 규제를 낮춰 연내 제3인터넷은행을 최대 2곳 더 인가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새 인터넷은행 인가까지 현실적 한계가 있는데도, 어떻게든 인가 신청만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첨단산업 국가 중 한 곳이지만,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인가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밀어붙이기만 한다.

다음으로,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의 정책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로페이’ 사례를 보자. 정부는 지난해 말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에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대폭 낮췄다. 이것도 모자라 정부는 제로페이라는 새로운 결제수단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카드수수료 제로(0)’를 통해 영세상인들의 수수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겠다는 의도다. 정부가 직접 시장의 업자로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제로페이는 정부가 추진해선 안 될 사업 영업이다. 정부가 뛰어드는 영역은 적자가 예상돼 뛰어드는 민간이 없는 경우다. 국내 지급결제시장은 민간의 활발한 경쟁을 통해 세계 최고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금융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시장에 직접 좌판을 깔았다.

그러다 보니 진행단계별로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제로페이 흥행은 사실상 실패했다. 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공무원의 발상과 기획, 영업으로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제 민간 금융회사에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한 기부금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융개혁의 기대는 사치에 불과해졌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의 상황에 맞는 정교한 기획 없이 어설픈 정책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금리상한형 대출상품이다.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자들의 미래 위험을 줄여준다는 목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청와대 업무보고와 언론에 열을 올리며 홍보한 서민을 위한 정책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예컨대 대출금리가 연 5%에서 10%로 오르는 상황이어야 한다.

현실은 반대다. 시중금리는 꾸준히 내리고 있었고 한국은행은 최근 예상보다 빠르게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시장에서 금리 인하는 예견된 일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대출금리가 급속하게 내려가고 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대출받은 차주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정책 기획 단계부터 검증이나 반론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금융정책은 포장과 명분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금융은 서민을 위한 지원사업이 아니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미래 산업이다. 이 같은 인식이 바탕이 될 때 국민은 금융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정부의 새로운 금융정책을 기대해 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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