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칼럼] 한.일 갈등, 명분 보다 실리 챙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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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전 공자위 민간위원장
입력 2019-07-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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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미국의 의결권은 16.52% 정도이고 일본이 6.15%, 중국이 6.09% 수준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요 의결 사항에 대한 의결정족수가 85%라는 점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를 다 합치면 83.48%이므로 미국이 반대하면 해당 사안은 의결정족수에 못 미쳐서 부결이 된다. 거부권이라는 말이 따로 없어도 미국이 사실상 거부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의결정족수는 과반수 혹은 3분의2 정도가 일반적이다. 85%라는 숫자는 순전히 미국에 거부권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숫자인데도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의결권을 15% 이하로 떨어뜨리거나 의결정족수를 하향조정하자는 얘기는 항상 나오지만 실현되지 않고 있다.

최근 중국이 출범시킨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상황은 비슷하다. 주요안건의 의결정족수가 75%이다. 그런데 설립을 주도한 중국의 투표권은 26% 수준이다. IMF와 판박이다. 다른 나라가 다 찬성하면 찬성률이 74% 정도인데 중국이 반대하면 정족수 75%에 미치지 못하므로 안건은 부결된다. 중국도 IMF와 비슷한 의결 구조를 통해 AIIB를 장악한 셈이다.

이처럼 국내에서라면 있기 힘든 일들이 국제무대에서는 종종 벌어진다. 글로벌 무대에서 애플의 갑질만 해도 그렇다. 애플은 스마트폰 생산을 아웃소싱을 통해 진행하면서 납품가 후려치기를 통해 하청업체의 마진을 최소수준으로 통제하고 있다. 하청업체와의 계약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거나 조기종료하는 등의 갑질도 빈번하다. 오죽하면 애플과 거래하는 것은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겠는가.

글로벌 무대는 이처럼 복잡하고 힘든 면이 존재한다. 글로벌 공정거래위도 없고 글로벌 동반성장위도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가난한 최빈국 수준에서 1인당 3만 달러 수준까지 성장한 것은 험한 글로벌 시장을 잘 개척한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돋보인다.

그런데 최근 그동안 잘 구축되어 온 국제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무역갈등 카드는 단순한 보호무역주의 수준의 조치가 아니다. 기존 패권국인 미국이 신흥 패권국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압박하기 위한 복합적 카드이다. 그동안 워싱턴의 많은 중국 경계론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하고 이를 구체화시킨 결과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갑자기 일본이 우리를 압박하면서 가장 아픈 곳을 골라서 때리고 있다. 세계 시장의 80% 가까이를 장악하면서 우리 경제의 수출과 경제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것을 보면서 글로벌 무대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다. 힘이 있더라도 그 힘을 자제하도록 하는 수단이 국내에는 그나마 존재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찾기 힘들다.

중국 압박을 위한 트럼프의 정책을 그대로 본떠서 한국 경제 압박을 위한 정책이 노골적으로 시행되는 모습을 보면 분노가 치밀지만 그럴수록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점을 잘 알면서 상대방에게 더 큰 피해를 안기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약육강식 구도 하에서는 어느 쪽 손실이 더 큰지 손실의 크기를 잘 계량하는 실리적인 접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위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IMF에서의 미국 의결권이나 AIIB에서의 중국 의결권을 줄이라는 요구와 비슷하다. 말은 맞는데 실현 가능성이 낮은 주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가 힘들어지고 상황이 악화될 조짐을 보이는 지금 명분만이 아닌 보다 실리적 접근을 통해 지나친 피해가 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대로 버티고 있지만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실물 쪽에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하고 이러한 위기가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가 주식시장으로 전이되면 주가 폭락이 발생하고 이러한 충격이 다시 실물시장으로 확산되면서 주요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이 이어지고 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부실대출 증가 등이 발생하면서 본격적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초기에 진화되지 못한 산불이 산 전체를 태우는 대형 산불로 확산이 되는 국면과 비슷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현명한 전략적 판단이 중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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